한낮의 햇빛이 내려쬐는 하비성 백문루(白門樓),

목에 줄이 묶여 늘어 뜨려진 여포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외마디 호통을 치니 그 위엄인즉 천계(天界)의 군신(軍神)이 하계(下界)로 내려와 만군(萬軍) 위에 군림하는 듯하다.

“잔적(殘賊)!”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따가운 햇볕 때문인지 여포의 외마디 호통의 위엄 때문인지 조조의 군사들 중에서는 고개를 쳐들고 죽어가는 여포 봉선(奉先)의 마지막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가 없었다. 그 중 오직 한 명, 여포의 기병장수였던 장료(張遼)만은 예외였다.

 

동탁이 죽은 뒤 주군의 복수를 하겠노라고 동탁을 모시던 이곽과 각사 같은 무리들이 성(城)으로 몰려오자 왕윤은 그 양녀 초선에게 한 자락의 비단끈을 건네주었다.

두 손으로 비단끈을 받든 초선에게 아비 왕윤이 ‘혼자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다.

초선이 혼자 하지 못하겠노라고 말을 한다면 왕윤이 검을 들어 직접 초선을 찌르려고 하던 차에 비단끈을 받은 초선이 나직이 입을 연다.

 

“아닙니다. 소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다만 남은 봉선(奉先)이 걱정될 뿐이지요.”

“봉선(奉先)은... 포악한 사내였다.”

“그래도 그 분은 제 낭군이었습니다.”

 

대월지(大月氏) 출신으로 한(漢)의 관료 왕윤 밑에서 자랐던 초선(貂蟬)은 비단끈으로 목을 매어 자진하였다.

성(城)이 함락되기 직전 여포가 다급히 왕윤에게 다가와 초선의 행방을 묻는다.

여포의 애마(愛馬) 적토마가 힘이 남다르다보니 여인 하나쯤은 뒤에 태워도 거뜬히 천릿길을 달릴 수 있노라고, 지금 적토마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는 여포에게 왕윤이 차분한 어조로 달래듯 얘기한다.

“걱정 마시게나. 초선은 내가 먼저 보냈소이다.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걸세.”

 

성은 함락되었다. 불타오르는 누각(樓閣)을 보며 왕윤 역시도 초선의 뒤를 따르듯 자결한다.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은 주군을 시해한 왕윤의 시체를 토막 내어 저자 거리에 효수하였다고 한다.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숨어있던 왕윤의 아들딸도 끌려나와 모진 고문 끝에 효수되었다.

아마 초선이 그들 군사의 손에 잡혔더라면 왕윤의 아들딸에 비할 수 없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을 겪었을 것이리라.

 

성이 함락되기 직전 초선이 목을 매고 자진하자 초선의 시체마저 능욕될까 두려워한 왕윤은 초선의 시체에 기름을 붓고 태웠다.

한참을 그렇게 태우자 남은 것은 하얀 재와 생전에 여포가 초선에게 선물했던 옥(玉) 반지 하나였다.

청옥(靑玉), 여포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옥(玉)반지였다. 여포의 누이 원(媛)의 유품(遺品)이라고 하였던가.

눈에 들어간 재가 매워서인지 가혹한 운명이 미워서인지 왕윤은 칠십 평생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흘렸다.

 

초선(貂蟬)이 죽은 지 몇 해나 지났는데도 여포는 초선을 잊지 못하였다. 아니 초선을 향한 마음은 더하여만 갔다.

초선을 먼저 보냈다고 했던 왕윤의 말,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된 걸이라는 왕윤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원소의 자객(刺客)을 피해 달아나는 가운데서도 여포는 초선을 떠올렸다. 원소의 정예 군사들을 상대로, 무사(武士)답게 한바탕 싸움으로 생(生)을 마감해볼까도 싶었으나 초선을 다시 만나기 위해선 구차한 목숨이나마 이어가야 된다 싶어 그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하내 태수 장양(張楊)에게 몸을 숙이고 그 밑의 객장(客將)으로 들어간 것도, 이후 몇 번의 비루한 행각을 이어나간 것도 초선을 다시 만나기 위한 여포의 몸부림이었다.

오명(汚名)이든 악명(惡名)이든 이름을 떨쳐야 여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초선이 알 것이 아닌가.

여포의 부하 장수 장료(張遼)가 충심으로 간언을 하였으나 여포는 듣지 아니하였다. 비록 변방이긴 하여도 여포의 고향땅인 병주(幷州) 오원군(五原郡)으로 가지 않는 것이 장료로선 이상하였다. 하다못해 서촉 땅으로 들어가기만 해도 지금 가진 여포의 기병으로 훗날을 쉬이 도모할 수 있을 것이건만 군웅(群雄)들이 저마다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지극히 위험한 이 서주(徐州) 땅에서 원소, 원술, 조조, 유비를 상대로 칼과 창을 맞대고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하는 여포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장료였다.

 

“주군(主君). 술은, 이제 그만 드십시오.”

“무어라?”

“잊으십시오. 초선(貂蟬)은 죽었습니다.”

“문원(文遠), 네깐 놈이 무얼 안다고 그러느냐!”

 

술에 취한 여포가 장료를 향해 고함을 친다. 진등의 아비 진규가 유심히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좋은 술이 있다고 여포에게 갖다 바친 진규는 초선(貂蟬)의 소식을 들었다고 여포에게 전했으니 그로인해 초선을 향한 여포의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 상태였다.

태산(泰山)의 비액(泌液)으로 담은 귀한 명주(名酒)을 가지고 있거니와 그 술보다 더욱 좋은 소식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포에게 다가간 진규는 장안과 서주, 서촉과 하비를 오가는 상인으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청옥(靑玉)반지를 꺼내 보인다.

 

반지를 본 여포는 기뻐한다.

원(媛)의 어미에게서 여포의 누이 원(媛)으로, 여포에게서 초선(貂蟬)으로 주인이 바뀌었던, 대월지(大月氏) 특유의 문양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바로 그 반지였다.

그 해 적토마를 타고 성 밖으로 빠져나간 뒤로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환한 미소가 여포의 얼굴에 떠오른다.

곧 초선을 데려오겠노라고 진규가 얘기하자 여포는 진규의 두 손을 얼싸쥔다. 금과 비단을 챙겨주며 초선을 고이 데려올 것을 부탁하는 여포였다.

 

오늘 내일이면 초선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 여포가 잔뜩 기대하고 있는 상황인줄 모르고 ‘초선은 이미 죽었노라’고 매정히 말하는 장료가 여포로선 여간 밉지 않았다.

여포는 자신의 바로 밑 직급이었던 기병(騎兵) 책임자 장료를 두 직급이나 낮춰 버린다.

장료가 그동안 쌓아왔던 충의(忠義)와 인덕(仁德) 때문에 차마 형틀에 묶어 매질을 할 순 없었지만 진규의 감언(甘言)에 넘어간 여포로선 장료를 곁에 두고 부리기만큼은 적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규의 아들 진등이, 초선(貂蟬)이라면서 대월지 피가 섞인 듯 피부색이 가무잡잡한 소녀 하나를 여포의 군문(軍門)으로 데리고 왔다.

여포가 보낸 비단으로 고운 옷을 해입은 소녀는 동탁의 시녀였던 초선(貂蟬)을 닮긴 닮았다.

험악한 인상의 장정들의 얼굴을 본 소녀는 겁에 질려 울고 만다.

소녀의 눈물을 본 여포는 동탁과 초야(初夜)를 보낸 뒤 흐느껴 울고 있던 초선(貂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날 초선을 본 여포는 금기(禁忌)의 문을 넘고 말았었다. 그것은 여포의 운명(運命)이었다.

초선(貂蟬)인가? 초선(貂蟬)의 환생(還生)인가? 여포는 군사들을 도열시켜 초선을 맞이하게 한다.

행여 초선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까 싶어 병사들은 그 옛날 동탁의 군사로 있을 때의 복장으로 서있게 하였다.

군사들은, 여포 자신이 찔러 죽인 동탁(董卓)의 동(董)자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초선을 맞이한다.

강등되어 일반 병사들과 함께 도열한 장료로서는 주군(主君)인 여포의 모습이 실망스럽기만 하다.

 

밤을 새며 급하게 복장과 깃발을 만든 것 자체도 힘든 일이거니와 한낮의 땡볕이 가득한 성 안에서 도열해있자니 피곤과 더위를 못 견뎌 쓰러지는 병사가 있다.

병사들이 쓰러지거나 말거나 여포는, 그 옛날 동탁의 어린 시녀 초선(貂蟬)과 자신 사이에서 생겨난 딸 자식과 이번에 새로 찾은 초선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여포는 청옥(靑玉)의 반지를 초선의 손에 끼워주었다. 반지는 손가락에 꼭 들어맞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그때 그 동탁의 시녀 초선(貂蟬)의 손가락과 닮았다. 아니 그때 그 초선이었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마시게’라며 초선에게 다짐시키는 여포였지만 이제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는 것은 오히려 여포 그 자신이었다.

새로 찾은 초선은 옛 연인(戀人)의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가락에 끼여진 옥(玉)반지만 마냥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여포는 초선이 기억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찾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는 행동 자체가 그 나이 또래에 비하면 떨어져 보였다.

좋은 술이 있다고 서촉의 비주(泌酒)를 가져온 진규에게 초선의 일을 물어보니 성에서 탈출할 때 머리를 다쳐 그렇다고 한다.

얼굴이 조금 달라져 보이는 것도 그때 다쳐서 그런 것이라고 하니 이각과 곽사 따위의 잡군으로부터 성(城)을 지키지 못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다치게 만든 여포의 마음은 점점 더 괴로워진다. 그런 여포에게 기억을 되찾게 하는 오래된 비책(秘策)이 있노라고 진규가 진언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기억을 되찾게 하기 위해선, 두 남녀가 나란히 비약(泌藥)을 장복해야 한다는 진규의 말에, 환(丸)으로 만들어진 이름 모를 약을 여포와 초선이 나란히 복용하였다. 독한 술과 함께 먹은 환(丸)은 그 자체가 색정(色情)을 돋우는 미약(媚藥)이었다.

여포는 초선을 끌어안았다. 초선을 처음 안았을 때와 같은 뜨거운 밤이 이어졌다. 다시는 동탁에게 뺐기지 않으리라. 이각과 곽사의 군대를 피해 도망치지도 않으리라.

며칠 밤, 며칠 낮, 미약에 들뜬 남녀는 열정을 불태웠다. 몸이 달아오를 때의 독특한 체취(體臭)도 초선(貂蟬)의 그것과 같았다.

절정에 도달할 때 외치는 신음소리도 초선과 같은 대월지(大月氏)의 언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환(丸)과 독한 술만이 여포와 초선과 함께 했다.

조조와 유비가 노리고 있는 성(城)도, 변해버린 주군의 모습에 실망한 군졸들도 여포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초선(貂蟬), 초선의 나신(裸身) 뿐이었다.

 

여포가 여자와 술에 빠져 미쳐버렸다는 얘기가 군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요녀(妖女) 초선에 홀려 폐인이 되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포가 양아비 동탁을 찌른 것도 요녀(妖女) 초선과 왕윤이 파놓은 미인계에 빠져 그랬다는 말도 나왔다.

술과 미약에 취해 방천화극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다는 믿지 못할 얘기마저 나왔다.

장료는 병사들의 동요를 막으려 했지만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다. 장료는 여포에게 간언(諫言)할 기회만 기다렸다.

 

그즈음 소패성에서 관우가 왔다.

일전에 원술 휘하 맹장 기령 앞에서 보여준 여포의 빼어난 활솜씨로 인해 큰 전투를 피할 수 있었던 유비가 보낸 선물을 가지고 온 것이다.

우방(友邦)이면서 적장(敵將)인 유비가 가장 아끼고 믿는 관우인지라 여포도 나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백 보(步)였던가 백 오십 보(步)였던가 먼 거리에 창을 세워놓고는 화살로 창 중심을 맞춰 원술과 유비 사이의 싸움을 말렸다는, 천하에 소문이 자자한 무공을 보여줬던 그때 그 여포와 달리 눈 밑이 시꺼먼, 총기를 잃은 사내가 관우를 맞이한다.

그 옛날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창칼을 한 몸으로 버텨내던 만부부당(萬夫不當) 인중여포(人中呂布)가 지금 발걸음조차 휘청거리면서 관우를 맞이한다.

 

‘진규, 진등 부자가 말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비겁하달까 잔인하달까 이런 방식은 무사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관우에겐 썩 내키지 않는 방식이었다.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관우에게 여포가 검무(劍舞)를 보여주겠노라고 한다.

여포의 무사들 중에서 검술이 대단한 자들을 고르고 골라 검무(劍舞)를 보여주는데 여포의 손짓 한 번이면 검무(劍舞)를 구경하던 객장(客將)의 목이 달아나기도 하는 무대였다. 검무가 시작되었다. 손을 떨며 연신 술잔을 비우는 여포를 관우가 말없이 지켜본다.

그 옛날 홍문연(鴻門宴)에서 그러했듯 자신의 생사(生死)가 여포의 손짓 한 번에 달려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공포는커녕 여포에 대한 측은함만을 느끼는 관우였다.

 

여포의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눈빛은 흐려졌고 식은땀이 계속 난다.

이제 막 손을 들어 잔을 던지면 여포의 옆자리에 있는 관우의 목이 달아날 것이다.

그때였다. 검무를 추던, 가면을 쓴 무사가 여포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은 것은.

어느새 가면을 벗은 무사는 목숨을 걸고 여포에게 간언(諫言)한다.

장료, 문원(文遠) 장료였다.

분노한 여포가 잔을 들어 장료에게 집어 던지려하는데 그런 여포의 팔을 관우가 잡는다.

 

“원술의 기령으로부터 저희 형님을 구해주신 여(呂) 대인님.”

관우가 여포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그리고 충직한 장료를 살려줄 것을 애원한다.

그 도도하던 관우가 자존심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으니 여포로서는 내심 흐뭇한 일이었다.

동탁의 밑에서 한참 무명(武名)을 떨칠 때 유비, 관우, 장비 세 놈들로부터 협공을 받아 도망쳐왔던 것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 있는 여포였다.

여포와 칼과 창을 직접 맞대었던 놈들 중에서 살아남은 놈은 그 세 놈이 다였다.

그 중에서 관우의 창이 가장 매서웠다. 창끝이 매서운만큼 자존심도 드높았던 관우가 고개를 숙이고 청원을 하니 여포는 웃으며 장료를 살려준다.

 

“저 사람의 무예가 저와 같으니 이대로 죽이기에는 필시 아까운 인재임이 틀림없습니다. 비록 예(禮)에 어긋나긴 하지만 그 충의(忠義)만큼은 갸륵하옵니다. 저를 보시어 부디 저 무사(武士)를 살려두시옵소서.”

“여봐라, 문원(文遠)이 연회의 흥을 깨었으니 당분간 옥에 가두어라.”

 

여포의 명령은 이것이 다였다. 옥에 갇힌 장료는 얼마 못 가 옥에서 풀려났으나 여포에 대한 충성(忠誠)의 맹세는 거둬진 뒤였다.

옥에 가둔 장료가 풀려났는지 어땠는지 여포는 곧 잊어버렸다. 여포의 눈에는 초선만 그리고 초선의 딸만 보였다.

약과 술, 여자에 빠진 여포는 화살 하나로 기령과 유비를 말리던 그때 그 여포가 아니었다.

이젠 예전처럼 군사들을 도열시킨 뒤 우렁차게 지휘를 하기는커녕 제 자리에 일어서서 창을 휘두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동탁 휘하에 있을 때부터 장료를 따르던 군사들이 장료를 찾아가 여포를 제거하고 조조에게 귀순할 것을 종용하였다.

 예전 같으면 ‘어찌하여 나 장료 문원(文遠)의 충의(忠義)를 시험하려 드느냐’면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을 장료였건만 이번에는 잠자코 듣기만 한다.

 

이후 하비성이 조조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기병 장수로 이름났던 장료도 여포, 진궁과 함께 묶였다.

조조는 장료에게 투항할 것을 권유한다. 백문루(白門樓) 그 서슬퍼런 조조의 맹장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장료가 말한다.

 

“승상, 청컨대 조건이 하나 있소이다.”

“문원(文遠), 말해보시오. 내 그대의 청이라면 들어주리다.”

“앞으로, 제가 살려달라고 청하는 장수는 반드시 살려주십시오. 제가 후대하라고 하는 장수는 반드시 후대하시옵소서. 그 장수가 어떤 조건을 달더라도 그 장수를 받아주시옵소서. 그 장수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살려주십시오. 설령 그 장수가 승상 곁을 떠나려 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 조건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가 승상 곁을 떠나겠사옵니다.”

“알았소. 문원(文遠).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외다.”

 

훗날 관우가 조조 군(軍)에게 포위되었을 때 장료는 관우를 살려줄 것을 조조에게 청하였다.

관우를 살려주고, 받아주고, 후대할 것을 청하였다. 조조의 허락을 받은 장료는 관우에게 다가갔다.

관우는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고 관우가 내건 세 가지 조건을 조조는 모두 허락하였다.

그 얼마 후 관우가 그 형 유비를 찾아 조조의 진영을 떠나갔지만 조조는 붙잡지 아니하였다.

관우는 조조 곁을 떠나갔지만 장료 문원(文遠)은 죽는 그날까지 조조에게 충성(忠誠)을 다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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