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상나라 관리 진교의 형벌

2012.06.11 22:09

블루재즈 조회 수:1748

 

고대 중국 상나라 주왕(紂王) 때의 일이다.

주왕(紂王)이 희대의 요녀(妖女) 달기(妲己)와 어울러져 각종 음행(淫行)을 저지르고 있을 때 상(商)의 수도 은허(殷墟)의 관리 진교(陳矯)는 포악한 두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아래와 같은 형벌(刑罰)을 고안해내었다고 한다.

 

사형(死刑)을 선고받은 죄수들에게 독한 술을 잔뜩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죄수의 귀 속에 갓 부화된 새끼 바퀴벌레를 집어넣는다. 바퀴벌레를 집어넣은 뒤 초를 녹인 물로 귓구멍을 막아 벌레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해가 뜨고 밝은 빛이 온 천지를 비추게 되면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바퀴벌레들은 점점 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빛을 피해 귀 안으로 들어간 바퀴벌레는 어는 순간 뇌수를 탐하기 시작한다. 의식을 찾은 죄수의 머리 속에서는 사각사각 움직이는 바퀴벌레 소리가 들린다.

 

벌레는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죄수의 머리 안쪽을 파고든다. 어둡고 따뜻하고 습기가 가득한 뇌수는 벌레의 좋은 먹이가 되는 것이다. 두개골 속의 뇌수를 파먹으며 영양을 섭취한 벌레는 쑥쑥 자란다. 귓구멍의 좁은 틈으로 들어왔던 바퀴벌레들은 한 달 쯤 될 때면 엄지 손가락 한마디는 훌쩍 넘을 정도로 커진다. 그렇게 커진 벌레는, 묶인 채로 부들부들 떠는 죄수의 코로, 입으로, 때론 눈알 틈으로 기어나오곤 했다.

 

그렇게 죄수의 머리통을 파먹다가 바깥 세상으로 나온 바퀴벌레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벌레의 온몸에 묻은 인간의 피가 날개짓 할 때마다 공중으로 흩어진다. 죄수는 울부짖으나 묶여진 손발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입에 거품을 물고 발광을 하더니 눈과 귀, 코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죄수가 죽어 축 늘어진 뒤에도 죄수의 안면(顔面)은 꿈틀거린다. 수백, 수천의 벌레가 죄수의 안면(顔面) 피부 밑을 기어 다니는 것이다.

 

형장(刑場)에 묶여 있는 죄수 전부의 귀 속에 벌레를 넣은 것은 아니었으나 뇌가 파 먹히는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주변 죄수들의 고통스런 발광에, 벌레가 들어 있지 않은 소수의 죄수 역시도 자신의 머리 속에 존재하지도 않은 벌레의 환청(幻聽)과 환각(幻覺)을 느끼며 처절한 신음 끝에 죽어간다. 단지 촛농으로 귀를 막고 다른 죄수들을 마주보며 묶여 있을 뿐이나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지옥도(地獄圖)가 만들어내는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고통을 바라보며 고통을 상상하게 되는 것, 그것이 그들이 받는 형벌(刑罰)이었고 진교(陳矯)가 상상해낸 형벌(刑罰)이었다.

 

그 죽어가는 과정은 족히 한 달 동안이나 진행되었다.

그 지옥(地獄) 같은 형장(刑場)에서 한 달을 버텨내면 무죄(無罪)로 인정받아 밖으로 내보내진다고는 하지만, 행여 끝까지 살아남아 한 달 만에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머리 속을 기어다니는 벌레가 코로 입으로 눈으로 튀어나와 공중으로 날아가는 악몽(惡夢)으로 인해 이미 미쳐버린 상태였다고들 한다.

 

지금은 사라진 옛 문헌(文獻)에 따르면, 머리 속을 스물거리며 기어다니는 벌레의 환각(幻覺)에 한 달간 시달린 죄수는, 자유의 몸이 되자 머리 속을 돌아다니는 벌레를 없애겠노라고 쇠꼬쟁이를 자신의 귓구멍에 넣어 스스로의 머리통 속을 한참이나 휘저은 끝에 부들부들 떨며 죽어갔다고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때 이미 포락(炮烙)의 형벌을 보아버린 달기(妲己)와 주왕(紂王)에게 이토록 느리게 진행되는 진교(陳僑)의 형벌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달기가 주왕에게 청하매, 왕은 관리 진교(陳矯)를 독사와 전갈이 우글거리는 구덩이에 빠뜨리는 돈분형(躉盆刑)에 처하도록 명한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진교(陳矯)를 보며 달기(妲己)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예의 기묘한 웃음을 흘린다.

 

진교 본인이 형벌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서푼짜리 벼슬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관리 진교(陳矯)의 행동이 요녀(妖女) 달기(妲己)에겐 참을 수 없을 만큼 우스운 것이었다. 달기(妲己)의 웃음을 지켜본 주왕(紂王)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또 다른 관리를 부른다.

 

“자네는 어떤 형벌을 생각해냈는고? 괜찮은 형벌이라면 내 친히 자네의 관직을 올려주겠네. 뭐든 괜찮으니 어서 말해보게나.”

 

진교(陳矯)의 뒤를 이어 주왕(紂王)을 배알한 관리는 자신이 새로이 고안해낸 극악(極惡)한 형벌을 열심히 이야기했더랬다.

일신(一身)의 출세를 위하여, 고금(古今)에 없었고 있어서도 안 될 잔인한 형벌(刑罰)을 설명하고 있는 관리를 보며 주왕(紂王)과 달기는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지금 형벌(刑罰)을 얘기하고 있는 관리는 또 어떤 새로운 형벌(刑罰)로 죽게 될 것인가, 그때 저 관리는 어떤 억울한 표정, 어떤 끔찍한 비명을 지으며 죽어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으면 벌써부터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독사와 전갈을 구덩이에 풀어 넣고 그 구덩이 안에 죄수(罪囚)를 집어넣는다? 그것 참 괜찮은 형벌(刑罰)이로구나. 여봐라. 죄수들을 준비하여라.”

 

주왕(紂王)의 명(命)에 따라 새로운 형벌(刑罰), 이름 하여 돈분형(躉盆刑)에 처해질 죄수들이 사형장 한 가운데 대령된다.

두꺼운 포승줄에 묶인 채 봉두난발(蓬頭亂髮)이 된 죄수들 중엔 얼마 전까지 수도 은허(殷墟)의 관리였던 진교(陳矯)도 보인다.

진교가 고안해낸 한 달 동안의 긴 형벌(刑罰)로 인해 사각거리는 머리 속 벌레 소리를 들으며 죽어나간 죄수 중에는, 구리 기둥에 기름칠을 한 뒤 숯불 위에 그 기둥을 걸쳐놓고 죄수를 그 위로 걷게 만든 포락(炮烙)의 형을 고안해낸 관리가 속해있었더랬다. 지방의 하급 관리였었는데 형벌(刑罰) 하나로 중앙의 고급 관직을 얻어낸, 출세(出世)란 면에서만큼은 대단하다면 대단한 인물이었다. 중앙 관직에 올라 출세의 기쁨을 누린 시간보다 형장(刑場)에 묶여 지낸 시간이 더 길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뒤, 주(周)의 여상(呂尙), 훗날 강태공(姜太公)으로 더 잘알려진 인물이 이끄는 군대에 쫒기던 폭군 주왕(紂王)이 녹대(鹿臺)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목숨을 끊었다. 요녀(妖女) 달기(妲己) 역시도 검은 도끼 현월(玄鉞)에 목이 잘려 생을 마감하고 만다. 주(周)의 무왕(武王)은 상나라 또는 은(殷)으로 불리는 왕조(王朝)의 문헌(文獻)을 불태우도록 명한다. 약간의 갑골문자 외에는 은(殷)왕조의 문헌이란 문헌은 사그리 사라졌다. 구전(口傳)에 구전(口傳)을 거친 민담(民譚)만이 남아 사라진 옛 왕조의 끔찍한 일화들을 전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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