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모두가 행복한 순간

2011.12.08 14:12

블루재즈 조회 수:1269

전투는 86일간 계속되었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었는지 얼마나 오랜기간 계속될지 이 전장(戰場)의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식량은 떨어졌다. 식량 지원을 바란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무전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연락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상부(上部)에서 딱히 할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도시는 고립되었고 추위는 혹독하였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계속 죽어갔다.
손가락 발가락이 동상으로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부상자들의 신음은 공포와 절망을 가져왔다.

군인들은 크게 숨쉬는 법을 잊어갔다. 아주 가늘게 숨을 쉬었다. 그 숨마저 끊어지면 죽는 것이었다.
퀭한 눈의 군인들은 죽는 날만 기다렸다. 눈알마저 얼어붙으면 그땐 영락없이 죽음이 온 것이리라.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 불현듯 다가왔다.

거부하는 사람도 환영하는 사람도 없었다. 말없는, 동의(同意)의 침묵만 흘렀다.
한 곳을 지켜보던 병사들의 숨이 한순간 깊게 내쉬어졌다. 그 순간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반짝였다.

살아있는 자는 당분간은 살아있을 수 있기에 행복해했고
죽어가는 자는 살아있는 고통을 끝낼 수 있어서 행복해했다.

비감(悲感)도 환희(歡喜)도 없었다. 오직 그때껏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행복감(幸福感)만이 있었다. 
스탈린그라드. 동토(冬土)의 밤하늘 아래, 병사(兵士)들의 온기가 남은 스튜 냄비는 그렇게 비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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