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미드와치 (1) - 깨어있는자들

2010.09.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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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와치 Mid-Watch


1. 깨어있는 자들


해군함정의 당직 체계는 3직제로 운영된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당직명령에 따라 1직은 오전/오후 12시에서 4시까지, 2직은 4시부터 8시, 3직은 8시부터 12시까지 당직에 배치되며 주간 4시간, 야간 4시간의 당직을 서게 된다. 이중 자정에서 새벽 4시까지 서는 1직 당직을 Mid(night) Watch라고 부른다. 가장 졸린 시간에 서는 당직이기에 Grave watch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게 된다.’


CIC(전투상황실)에 들어가기 전 현우는 손목시계를 보며 걸음을 멈추고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 누구의 말이었는지 기억해보려 애썼다. 자정까지는 아직 25분이 남아있었다. 사병식당에 내려가 커피와 담배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올까 하고 뒤돌아서려는데 전투 상황실 문이 열렸다.

“아, 깜짝이야. 병기선임하사. 함교당직이야?”

현우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더 큰 음탐관이 체격에 어울리지도 않는 놀란 표정이었다. 경례를 하기 위해 올리던 손을 엉거주춤 내리며 현우는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문관이 무슨 미도아찌(Mid Watch)?

중앙 통로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가는 음탐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전투 상황실에 들어선 현우는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해도 테이블을 중심으로 네 명의 당직자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작전관이 서있었다.

현우는 작전관을 향해 경례를 붙인 다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발밑을 조심하며 테이블 쪽으로 다가 갔다. 전탐사이며 현우에게는 세 기수 선배인 강문식 중사가 싱긋 웃으며 현우를 맞이 했다. 석달치 월세가 밀린 다음 집주인을 만났을 때 짓는 것과 같은 웃음이었다.

“현우 욕본다.”

그 욕 그대로 돌려 드릴까요? 라고 얼굴에 쓴 표정으로 해도 테이블로 다가간 현우는 전탐병이 주는 트레이싱지를 받아들었다.

“뭐, 있어요?”

강문식 중사는 모자를 벗어 짧은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조용하네. 트레싱지 올려놔봐.”

먼저 해도위에 올려져 있던 트레이싱지에는 연필과 붉은 플러스 펜으로 몇 개의 점과 선으로 그려진 도형들이 있었다. 강문식 중사는 새 트레이싱지를 올려놓고 현우에게 현재 전북함의 경비 구역과 위치, 코스와 스피드, 다음번 선회 지점을 설명해주었다.

현우는 연필로 그린 먹다 버린 고구마 모양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선군?”

강문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척 정도. 그리고 이쪽에 깃대 어망 조심하고.”

옆에서 듣던 작전관이 끼어들었다.

“당직사관한테 말해서 걔네들 잘 보라고 해. 아까 통신하니까 술에 제대로 꼴아 있더라.”

현우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술에 취해 NLL쪽으로 흘러가는 어선을 한밤중에 만나는 건 길거리에서 시비거는 취객을 만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 길거리의 취객은 파출소 정도면 문제 해결이지만, 술에 취해 북한으로 넘어가는 어선에게는 50년 전의 전쟁이 아직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임을 상기시켜줘야 한다.

강문식이 표시해준 새 트레이싱지에는 그 밑의 종이에서 빠진 표시가 있었다.

현우는 해도위의 트레이싱지를 가리켰다.

“이건 뭐에요? 선배?”

“아, 지정 도라지. 공해상에서 맴돌던 건데 중국 해양탐사선이야.”

현우는 트레이싱지를 다시 해도위에 올려놓고 위치와 침속을 표시 한 다음 전투상황실 안을 둘러보았다. 건조된 지 50년이 지난 전북함은 서해의 물살을 가르며 완만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두운 CIC 안은 레이더 모니터와 각종 장비들의 불빛만이 일렁였다. 현우로서는 태반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조차 짐작도 못할 것들이었다. 그 기계들은 전북함과 같은 나이를 먹었거나,(이후에 새롭게 들어 온 것들도 있었지만) 현우의 나이보다도 오래된 녀석들이리라. 트레이싱지를 손에 말아 쥐고 전투상황실을 나서려는 현우에게 강문식 중사가 말을 건냈다.

“현우야, 고맙다.”

“경훈선배한테 입항하면 단란이 쏘라고 그래요.”

현우는 함교로 가기위해 조타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조타실에 들어서자 파도소리와 바람 소리가 해치의 틈을 비집고 따뜻한 실내를 갈구 하며 안으로 들어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열 명 남짓한 당직병들이 조타실 곳곳에 디킨스 소설에나 나올법한 고아들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현우는 타수에게 다가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직사관 올라 오셨냐?”

타수는 한손으로 타를 잡은 채 다른 손으로 경례를 붙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전탐 넘버 투 몸살 나서 내가 대신 올라왔어. 조타실 당직자는 다 교대 한 거야?”

“네, 갑판 사관님도 좀 전에 올라오셨습니다.”

“몇도 잡고 있냐?”

“275도 잡고 양현 앞으로 하나입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함교로 통하는 좌현 윙브릿지 쪽의 출입문을 열었다.

해치는 밖에서 부는 바람의 풍압 때문에 여는 게 쉽지 않았다. 최대한 덜컹거리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 해치를 꼭 붙잡고 천천히 열자 바닷바람이 조타실 안으로 달려들어 왔다. 윙브릿지에서 바라보는 밤의 바다는 적막했다. 밤은 가을의 끝을 노래하는 찬바람을 머금고 있었다.

달빛은 얇은 장막과 같은 구름을 뚫고 수면에 내려 앉아 있었다. 수면은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흔들거리고 있었지만 그 속에 숨긴 작고 날카로운 하얀 이빨들만큼은 달빛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현우는 시야를 수평선을 향해 두어 보았지만 달리 보이는 불빛은 없었다.

머리 위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자 함교 위 견시갑판에서 견시당직을 서던 당직병이었다. 방한복의 후드를 머리끝까지 올린 당직병의 손에는 작고 빨간 불빛 하나가 보였다.

“담배 안 꺼, 새꺄?”

작은 기침 소리와 함께 ‘네‘라는 대답이 들려왔고 잠시 후 불빛은 팽그르르 춤추듯 하늘을 날아 좌현 쪽 바다로 날아갔다.

“이런 썩을 새끼들. 당직장 함교 보고 하라고 그래.”

현우는 대답을 듣지 않고 함교로 들어갔다.

함교 내부 역시 조타실과 마찬가지로 비좁고 어두웠다. 대함 레이더를 담당하는 당직병 하나와 당직사관인 갑판사관, 전 당직자인 최종길 중사와 현우 네 사람뿐인데도 움직이기 비좁을 정도로 꽉 차는 느낌이었다.

“당직교대가? 야, 입항하면 제대 할 놈이 고생 많데이.”

동기인 최종길 중사가 현우에게 인사대신 건넨 말은 현우를 더 화나게 했다.

“그걸 알면 당직 땜빵은 너희 분대에서 채워야지. 왜 민간인 될 사람을 함교로 올라오게 하냐고.”

“사람이 읎는 걸 우짜노?”

해도테이블의 스탠드 불빛을 가리기 위해 둘러놓은 검은 커튼에 상반신을 집어넣고 있던 갑판 사관이 몸을 빼내자 현우는 말싸움을 멈추고 경례를 붙였다.

“필승, 부직사관 당직교대 하겠습니다.”

갑판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선임하사.”

최종길 중사에게 쌍안경을 건네받은 현우는 전투상황실에서 가져온 트레이싱지를 해도위에 있던 것과 교체 하고 몇 가지 인계사항을 들은 뒤  현재 위치를 기점 하였다.

“지정 도라지는?”

최종길 중사는 현우를 대함 레이더 앞으로 데리고 가 다이얼을 조작하여 녹색으로 빛나는 점하나를 가리켰다.

“이기다. 285도.... 55마일. 한 30분전부터 멈춰있다. 잘 봐 두기라. 혹시 밀입국 선박이면 니 일계급 특진이데이.”

“말일에 제대할 놈이 특진해 뭐하냐?”

“혹시 아나? 전역 취소 시키뿔고, 진급 시키줄지. 니, CPO(상사,원사)실에 똥칠 할 때까지 전북함에 있어야지. 앵카가 어딜 간다고 설레발 치노?”

“4년 했으면 됐다. 앵카 너나 해라. 좁다. 당직 끝났으면 헛소리 말고 얼른 내려가라.”

최종길은 킥킥 대며 함교를 나섰다. 그가 함교를 나서는 것과 동시에 우현 윙브릿지로 통하는 출입문이 열렸다. 갑판 사관과 현우가 돌아보니 방한복을 입고 있는 모양새가 견시 당직병이었다. 갑판사관이 의아해 하며 현우를 돌아보자 현우는

“제가 불렀습니다.”

라며 당직병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 했다.

쭈뼛거리며 당직병이 현우 앞에 서자 갑판 사관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둘을 바라보았다.

현우는 큰소리를 내지 않으려 신경 쓰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까 견시 데크Deck에서 담배 피운 새끼, 누구야?”

대답 없이 침묵만 흘렀다. 현우는 어차피 누구인지 알아도 소용없다고 생각 했는지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당직 중에 담배 피우게 되어 있어? 야간에 등화관제는 전기세 아끼려고 하는 줄 알아? 당직장이란 새끼가 애들 통제 똑바로 못해?"

답변을 듣기 위한 목적이 아닌 질문들을 던진 현우는 곧이어 험한 말로 몇 가지 엄포를 놓았다. 핵심만 간추려 본다면 불시에 견시갑판을 순찰했을 때 견시 망원경 앞을 벗어나 신호용 기류 보관실에 짱박혀 자는 놈이 한 놈이라도 보이면 당직자 전원을 메인마스트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당직을 서게 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예정에도 없는 항해 당직에 부직사관의 심기가 몹시 불편한 상태임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 당직병은 현우가 가장 원했던 반응을 보인 뒤에야 겨우 풀려나 제 위치로 갈 수 있었다.

견시당직병이 나가고 난 다음 갑판 사관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현우에게 말했다.

“어......근데, 부직사관. 우리 메인마스트에 사람을 거꾸로 매달 수 있을까? 저번에 보니까 꽤 녹슬었던데. 안 무너질까?”

갑판사관의 말에 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번에 전자 선임하사 있잖습니까. 이계정 중사. 대함레이다에 그리스 주유하러 올라갔다가 요단강 건널 뻔했다고 그러던데요. 중간에 사다리 받침대 하나가 부러져서.”

현우와 갑판 사관은 한참을 자신들이 부임 때 받았던 전북함의 첫인상을 이야기하며 당직시간을 보내었다.

“저는 처음에 내무실 안내 받아서 갔을 때, 왜 다들 창고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 하고 생각 했어요. 그러다가 취침 준비한다고 했을 때 ‘어! 정말 여기서 자는 거야?!’했을 정도라니까요.”

현우가 부임 첫날침대가 모자라 바로 윗 기수 선임 둘이 전기 히터 끌어안고 병기 행정실의 책상위에서 잤다는 이야기를 하자 레이더를 보던 당직병은 자신도 처음 승조 하던 날 침대가 모자라 바닥에 매트 한 장당 세 명이서 끌어안고 잤다며 거들었다. 갑판사관은 장교이니만큼 잠자리 불평은 없었지만 다만 함장과 함께 하는 사관실에서의 식사가 가장 적응하기 힘든 일이라고 털어 놓았다.

“입에 음식 많이 넣는다고 뭐라고 하시니까……. 아니, 밥 한 숟가락 넣고 싱거우니까 반찬 먹고 그러다 좀 짜니까 밥 또 넣고 그러는 건데, 시골 어른이랑 같이 밥 먹는 거 같아. 그래도 중사실에서는 젓가락질 잘 못한다고 뭐라 그러는 사람 없을 거 아냐?”

“자기보다 밥 먼저 먹는다고 지랄하는 사람은 있어요.”

“누군데?”

현우가 침묵하자 갑판 사관은 자이로를 보며 함수각을 확인 한 뒤 전송관에 대고

“타수, 타 잘 잡아!”

라고 소리친 다음 말을 이었다.

“말해봐, 누가 독 피우는데? 어차피 문관인데 그런 거 말한다고 누가 뭐랄 군번도 아니잖아?”

함수쪽 수면을 바라보던 현우는 입을 떼려다 말고 급하게 전송관에 입을 대고 소리 쳤다.

“견시, 이 씨발놈들아. 접촉물 보고 똑바로 안 해?!”

“좌현 견시보고, 좌현 15도 거리 500, 접촉물... 드럼통...같습니다.”

“이미 늦었어! 새끼들아.”

갑판 사관은 빙긋이 웃으며 전송관에 대고 조타실에 지시를 내렸다.

“키 오른편 5도.”

드럼통 때문에 타각까지 바꿀 필요 있냐는 표정으로 현우가 갑판 사관을 바라보자 갑판사관이 말했다.

“CPO들 주무시는데 침실격벽에 저런 거 부딪히면 놀라서 깰거아냐. 됐어, 키 바로. 275도 잡아.”

“노인네들이라 잠이 없어 아직도 카드 돌리고 있을걸요.”

“몇 일전에 함장님이 CPO실에서 털리고 난 다음부터 밤에 카드 안한다던데.”

현우는 킥킥거리며 해도에 드럼통이 발견된 위치를 기점 한 다음 레이더 당직병에게 물었다.

“지정 도라지 방위, 거리?”

“280도 25마일입니다.”

해도를 보던 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로네? 투묘중인가? 좀 있으면 불빛이 보이겠는데요?”

“아닐 것 같은데?”

갑판사관을 들려다보던 쌍안경을 내리며 앞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현우는 갑판사관이 손끝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는 짧게 욕설을 내뱉은 뒤 전송관에 대고 소리쳤다.

“견시! 전방 똑바로 봐! 음력전화기 착용시켜서 두 명 함수로 보내.”

전북함의 앞에 펼쳐진 것은 흡사 칼로 잘라낸 듯 한 안개의 단층이었다.


 현우가 전북함을 처음 본 것은 부임 명령을 받고 인천의 전단 대기대에서 배가 들어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1994년의 겨울날 저녁이었다. 날이 저물자 오늘은 안 오겠지 싶어 세면도구를 챙겨들고 세면장으로 향하던 현우는 같이 전북함에 부임 할 동기가 부르는 소리에 발을 돌렸다.

동기는 멀리 있는 5부두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배가 들어왔다고 했다. 녀석의 표정은 화생방 훈련장에 처음 들어가던 훈련소에서의 어느 날과 같은 얼굴이었다. 현우는 옷을 갈아입으러 대기대로 돌아갈 생각도 안하고 잠시 그대로서서 부두를 바라보았다.

전북함을 처음 본 현우의 머릿속에는 한 단어만이 떠올랐다.

‘폐허’

그렇다. 현우의 눈에 비친 전북함은 마치 삭풍에 닳아 사라졌어야 할 폐허가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 같았다.

노을 속 전북함의 실루엣은 바다위에 떠있는 어셔가의 대저택처럼 느껴졌다.

 불길한 잿빛의 금속덩어리가 현우에게 주는 위압감은 묘한 흥분을 안겨주었다. 동기와 선배들이 부임할 전북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꼭 빼놓지 않던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유령선’이었다. 50년의 세월을 거친 이 노쇠한 살인 병기는 몸 곳곳에 명백한 적의와 살상의지를 주장하는 금속체들로 치장하고 있었는데 이 낡은 군함에게 참으로 적절한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최소 1년은 저 고철을 타고 바다위에 나가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현우는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냥 육군 갈걸......’

 현우는 안개를 바라보며 등줄기가 뻣뻣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항해 중에 어느 한쪽감각이 박탈당하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야간의 항해에 짙은 해무까지 더한다면 시야는 극단적으로 좁아진다. 한낮의 해무도 마찬가지지만 한밤중 해무는 더 위험하다. 야간에 다른 배나 어망 등의 장애물을 구분 할 불빛을 안개가 가리는 것이다. 농밀한 안개가 뻗은 손길은 전북함을 감싸기 시작했다. 현우는 좀 더 자세히 안개의 농도와 시정을 확인하기 위해  우현 윙브릿지로 나갔다. 축축한 공기가 목덜미와 옷깃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현우는 그 불쾌함에 잠시 몸을 떨었다. 안개는 희미한 비린내를 품고 있었다. 해무에 이런 느낌이 있었나? 현우는 윙브릿지 난간을 잡았다. 난간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 차갑고 불쾌한 느낌에 현우는 잠시 몸을 떨었다. 그는 손에 묻은 물기를 점퍼에 문질러 닦아 내며 함교위의 견시갑판 쪽을 올려다보았다.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견시당직병들은 보이지 않았다. 갑판 위로 뭔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작게 억누른 목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 같았지만 뭔가에 막혀버려 다 내지르지 못한 듯 한 짧은 비명이었다. 웅성거림이 일어났고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견시 갑판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다급하게-그리고 약간의 짜증과 함께-뛰어 올라갔다. 간혹 견시당직자들 끼리 군기 잡는답시고 벌이는 얼차려라 여긴 것 이다. 갑판위에 올라서며 내심 위엄 있게 고함이라도 한번 치려 마음먹었지만 고함은 지르지 못했다.

예상했던 얼차려장면이 아니라 실망해서가 아니었다. 엉겨 붙은 두 명의 수병을 제외 하고 나머지 당직병들은 모두 소리도 못 지르고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현우조차도 달리 아는 바가 없었다.

수병 한 명이 마치 흘레붙는 개 마냥 다른 수병하나를 뒤에서 올라타고는 귀를 물어뜯고 있었다. 귀를 물어뜯긴 수병은 이미 코와 왼쪽 볼의 살점이 나가 떨어질 정도로 물린 상태였다.

“이 새끼들이 짬밥 처먹고 돌았나?”

현우가 달려가 물어뜯긴 수병의 등 뒤로 올라탄 수병을 발로 걷어찼지만 소용이 없었다.

“뭐해, 이 새끼들아. 뜯어내!”

현우의 고함 소리에 그제야 다른 견시당직병들이 둘을 떼어 놓기 시작했다.

물어뜯긴 수병은 갑판병 일병이었고, 그를 야식거리로 삼으려 했던 수병은 아까 함교로 내려와 현우의 주의를 받고 돌아간 당직 장이었다. 무료한 항해기간 중 틈틈이 기발한 얼차려를 개발 해내는 게 수병들의 여가활동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야참거리로 삼으려 한다는 건 현우로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두 명의 수병에게 양 팔을 붙잡힌 당직장은 여전히 몸부림치며 그르렁 거리고 있었다.

‘대체 저녁에 애들한테 뭘 먹인 거야?’

현우는 내일 아침 조리장에게 던질 질문들을 생각 하며 숨을 골랐다. 견시갑판 위의 다른 수병들도 현우와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운 얼굴로 당직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직장의 입가에 묻은 핏자국과 그르렁 거리며 드러낸 이빨 사이에 낀 피를 보다 현우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수병들에게 소리쳤다.

“야, 한 새끼 정도는 앞을 보고 있어야 할 것 아냐?! 이 새끼 묶을 것 좀 찾아봐. 손발 다 묶어놔!”

현우는 함교로 통하는 전송관에 대고 당직사관에게 갑판 위의 소동에 대해 짤막하게 보고 한 다음 다친 수병을 데리고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몸부림치는 당직장의 손발을 다 묶고 입에 재갈 까지 물린 다음에야 현우는 다친 수병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코와 뺨 주변 뿐 아니라 목 근처의 살점 까지 떨어져 나가 있었다. 혈관을 다친 것인지 출혈은 심각 한 수준이었다. 기류보관실의 깃발 몇 개를 꺼내어 지혈을 하는 동안 현우는 수병에게 계속 말을 시켜 보려고 하였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던 수병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현우는 주변의 다른 수병하나를 지목했다.

“한 놈은 얼른 군의관 깨워서 이리로 모시고와. 그리고 너. 상문이. 어떻게 된 건지 본 대로 들은 대로 말해.”

“저도 자세하게 못 봤습니다. 김지훈 수병이 잠깐 기류보관실에서 눈 좀 붙이고 온다고 그래서, 해무가 짙어서……. 부직사관님 올라오실까봐 현수보고 가서 깨우라고 한 건데…….”

“깨웠더니 이렇게 되었다?”

꼭 그렇게 결론지을 순 없지만 대충 그런 상황인 것 같다는 추측에 동의하며 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드와치 당직 중에 누리는 토막잠은 세상 어느 것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것이긴 하지만 그걸 방해했다고 깨운 이를 먹어 치우려 했다는 건 공감하기 어려웠다. 물론 현우도 하사시절 선임자를 깨우다가 재떨이로 얻어맞은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재떨이를 집어던진 것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상황에 현우는 잠시 혼란을 느끼며 갑판 위를 둘러보았다.

안개는 전북함을 완전히 감싸 안았고, 눈앞은 흐렸다. 보고 들은 일 조차도 어찌 된 일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당직시간이 끝나고 어서 빨리 침실로 돌아가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피 흘리고 있는 현수의 눈꺼풀이 무겁게 쳐지는 듯 보였다. 현우는 의식을 잃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현수의 몸을 흔들며 계속 말을 걸었다. 지혈대를 대신하는 깃발은 머금을 수 있는 피를 모두 마신듯 끝자락으로 핏방울을 토해내고 있었다.

“군의관 부르러 간 새끼는 왜 안와?!”

현우는 역정을 내며 현수를 들쳐 업으려 했다.

“어쩌시려는 겁니까?”

상문이 물었다.

“통신실로 옮기자. 군의관님도 그쪽으로 모셔. 애새끼 찬 바닥에 놔두면 멀쩡해도 골로 가겠다.”

상문이 재빨리 새 깃발을 가져와 현수의 목을 묶었다. 따뜻한 피가 현수를 업은 현우의 어깨위로 흘러내렸다. 목덜미를 타고 흘러든 끈적이는 피의 느낌에 현우는 몸서리 칠 새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 거렸다. 70 킬로그램이 넘는 몸을 업는 건 별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계단에 첫발을 내딛은 현우는 미끈거리는 바닥 때문에 하마터면 현수와 함께 앞으로 구를 뻔했다. 그러나 상문이 뒤에서 잡아준 덕에 간신히 균형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윙브릿지로 내려온 현우는 현수를 업은 채 잠시 머릿속으로 함교 갑판의 출입구 위치를 기억해 내려 애썼다. 통신실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조타실 출입문으로 들어갈까? 아냐, 거긴 애들이 많아서 잘못하면 동요할지도 몰라. 함교는? 너무 좁고 거쳐야 할 문이 하나 더 늘어난다. 현우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조타실 해치를 발로 걷어찼다.

해치 문이 열리면서 당혹한 수병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현우는 현수를 업고 뛰어 들어가며 외쳤다.

“군의관이든 의무병이든 아무나 빨리 통신실로 끌고 와!”


“역시 라면은 불 맛이다.”

휴대용 버너의 가스통을 교체하며 최종길 중사는 중얼거렸다.

“전기쿠커는 라면을 끓이는 게 아니라 불리지 말입니다. 뽀글이랑 다를 게 없지 말입니다.”

옆에서 라면 봉지를 뜯고 있던 통신병이 맞장구를 쳤다.

“니 뭘 좀 아네? 참치 남은 거 있나?”

“참치는 잘못 넣으면 비리지 말입니다. 스팸 있지 말입니다.”

“니, 그 말투 우찌 몬하나? ”

그때, 갑자기 통신실문이 부서져라 열리자 놀란 종길은 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다.

종길은 뛰어 들어온 현우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카키색 점퍼는 피로 흥건하게 젖은 상태였고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은 뭐라 소리 치고 있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얘 뉘일 곳!”

두 번째 고함을 질렀을 때야 종길은 비로서 현우의 등에 업힌 현수에게 눈길이 갔다.

“뭐꼬? 뭐꼬!”

통신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현수의 핏방울을 보고 종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우에게 다가가 현수를 통신 실 바닥에 눕히는 걸 도왔다.

“이기 뭔 난리가?”

“지혈 할 것 좀 찾아봐라”

불도 끄지 않은 버너를 한편으로 밀어 넣은 통신병이 옷걸이에 걸려있던 트레이닝복을 걷어가지고 왔다. 현우는 트레이닝복 바지를 찢으려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욕설을 지르며 바지를 그대로 현수의 목에 감고 상처를 눌렀다.

“죽지마라, 죽지 마, 내 눈 봐, 씨발놈아! 눈 감지 마! 씨발, 군의관 불러 오라니까!!!”

현우의 절규를 들었는지 현수는 잠시 눈을 뜨고 현우를 바라보았다.

핏발 선 눈으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뒤섞여 있는 눈을 보던 현수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도 못낸 채 입술만 움직였기에 그것이 무슨 말인지 현우는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다시 듣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를 누르던 현우의 손에 들어간 힘이 빠지는 것과 같은 속도로 현우의 몸에서 숨이 빠져 나갔다. 현우는 상처를 감은 깃발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맥을 짚어 보았다. 뛰지 않았다. 짧게 욕설을 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은 현우는 멍한 눈으로 종길을 바라보았다. 종길은 자신을 바라보는 현우의 표정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 낯선 얼굴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무렵 현우의 얼굴이 다시 익숙한 표정으로 되돌아 왔다.


“종길아, 뭐 타는 냄새 안 나냐?”

현우가 물었다.



“우현 견시보고. 접촉물. 빠르게 점멸하는 불빛입니다.”

함내 전화기로 군의관 침실을 연결 하려던 갑판사관은 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몇 번을 전화해도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부직사관이 부상당한 수병을 데리고 내려오느라 함교를 비운 이상 전북함의 조함은 갑판사관 홀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자리를 비울수도, 상황을 알아 볼 수도 없었다. 이 정도 소동이 났으면 누군가는 함교로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는 전화가 와야 하는데, 오히려 전화를 걸어도 받는 곳이 없었다. 부상자가 발생한 이상 함장과 부장에게도 알려야 했기에 전화를 걸어보려 했지만 일단은 전송관을 통해 들려온 견시의 보고가 더 신경 쓰였다.

‘빠르게 점멸하는 불빛?’

갑판사관은 쌍안경을 들어 안개로 흐릿한 전방을 바라보았다. 불빛은 견시의 보고대로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항해등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만약 저것이 선박이라면 충돌 침로다. 갑판사관은 다급하게 무중경고 신호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연돌에서 뿜어져 나온 네 번의 기적 소리가 안개를 찢을 듯 한 기세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는 전북함안의 잠들어 있던 자들을 모두 깨울 만큼 큰 소리였다.


 강두는 바닥에 흐르는 피를 보며 누구의 피 일까 궁금했다. 그러다 곧 그것이 자신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일 거라고 생각했다. 흐릿해지는 의식 때문에 고통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죽기 직전에는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정말이었구나.’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강두는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밤이었기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도 그 연장선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적어도 의자에 뒤통수를 맞아 머리가 깨져 죽는 것이니 자살로 처리 하진 않겠지?’라는 기대도 하면서. 부모님에게 군대 간 아들이 자살 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 보다는 살해당했다는 쪽이 더 낫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꺼져가는 강두의 의식 속으로 전화벨 소리가 파고 들어왔다. 전화를 받기위해 몸을 일으키려던 강두의 입에서 갑자기 웃음이 흘러나왔다.

 ‘머리가 터져 죽어 가는데도 전화를 받겠다니. 받아서 뭐라고 그러지? 필승 통신보안 일병 박강두. 군의관님 깨우러 왔다가 의자로 얻어맞고 대가리가 터졌습니다. 군의관님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깨우러 오실 때는 하이바 쓰고 오십쇼.’

간신히 군의관의 책상 앞까지 몸을 일으킨 강두는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강두의 입에서 맨 처음 터져 나온 말은 생각과는 달랐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전화는 끊어져있었다. 책상 밑의 공간으로 쓰러진 강두는 어둠속에 서있는 군의관을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간 거 아니었나?’

군의관의 얼굴은 어두워 또렷이 볼 수 없었지만 중얼거리는 소리는 잘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욕설 같기도 하고 무언가에 화가 난 사람의 말 같았지만 어차피 무슨 말인지 이해 할 수는 없었다. 강두는 모든 걸 포기 하고  빨리 죽음의 순간이 오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군의관이 치켜든 저 철제 의자의 다리에 배가 뚫리는 고통을 느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소리가 함 내에 가득하게 울려 퍼졌다. 강두는 세 번째 기적소리는 듣지 못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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