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샘 The Fountains of Paradise (1979)

2010.03.06 22:45

DJUNA 조회 수:2727

Arthur C. Clarke (글)

우린 어떻게 하면 우주에 나갈 수 있을까요? 로켓을 타고 가면 되겠죠. 우리가 지금까지 실용화시킨 유일한 방법이 그것밖에 당연한 답이겠지만, 사정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로켓은 꽤 문제가 많거든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고, 위험하고, 터무니없이 많은 물자가 낭비되고,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의심난다면 아폴로 11호를 한 번 보세요. 마천루 높이만한 새턴 5호를 쏘아 올렸지만 돌아온 건 텐트만한 깡통 하나뿐이었어요. 스페이스 셔틀이 있지 않느냐고요? 셔틀 역시 비싸고 위험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챌린저 호 사고를 보세요. 앞으로 우주선 제작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기본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로켓은 여전히 비싸고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고 세계가 좁아질수록 우주로 쏘아 올려야 할 물건들과 사람들은 늘어만 갑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1960년대에 유리 아르슈타노프라는 러시아의 엔지니어가 궤도 엘리베이터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냈습니다. 말 그대로 우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거죠! 정지 위성을 하나 만들어 케이블을 늘어뜨리고 그것을 이용해 우주로 가는 탑을 쌓습니다. 물론 무게 중심이 정지 궤도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반대쪽에도 그 정도 무게의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고요.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드는 대계획이지만 일단 만들어놓고 나면 결과는 근사합니다. 엘리베이터는 우주선보다 훨씬 돈이 적게 들고 안전하고 환경 오염물질을 방출하지도 않으며 로켓이 날려버리는 위치 에너지를 재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게 가능할까요? 지금은 어렵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재료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머릿속으로 사고 실험을 하고 상상할 자유는 있습니다. 그리고 2, 3백년 안에 반중력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그 안에 어떤 미친 건축가가 이런 구조물의 설계도를 들고 돈줄을 찾아 돌아다닐 거예요. 건축가들이란 늘 거대 지향적인 구석이 있어서 기회만 주어진다면 닥치는 대로 아무 거나 높이 쌓아대는 동물이기 때문이죠. 그들의 몸에는 피라미드와 바벨탑, 스톤헨지를 쌓아올린 고대인들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아서 C. 클라크의 1979년작 [낙원의 샘]은 바로 그런 미친 건축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바니바 모건은 지중해 횡단 철도를 건설한 교량건축가로, 이번에는 그의 숙원 사업인 궤도 엘리베이터를 현실화시키려 합니다. 궤도 엘리베이터를 쌓아올리기 가장 좋은 곳은 태평양 적도 바로 아래에 위치한 섬나라 타프로바니의 최고봉 스리간다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좋나요. 그 위엔 영봉을 사수하는 불교 사원이 떡 버티고 있으니.

[낙원의 샘]은 멋진 하드 SF지만 결코 건조하게 수치만 늘어놓는 작품은 아닙니다. 클라크의 많은 소설들이 그렇지만 이 작품에는 사람을 압도하는 어떤 면이 있습니다. 일부는 모건이 건설하는 그 거대한 구조물의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소설 속에서 모건은 끝끝내 그 구조물의 완성을 보지 못하니까요.

이 소설에는 모건의 궤도 엘리베이터보다 더 거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클라크의 비전입니다.

얼핏 보기에 그 비전의 기둥은 무척 19세기 적입니다.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거대한 기계와 건축물을 쌓아올렸던 당시의 사람들,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엔지니어 영웅 브루넬을 생각해보세요.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에 집착하는 모건은 템즈강 밑에 터널을 뚫고 세계에서 가장 큰 기선을 만들어내던 이샴버드 킹덤 브루넬의 22세기 버전입니다.

그러나 클라크에게 궤도 엘리베이터는 과대망상증적인 건물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로 가는 길입니다.

여기서부터 클라크의 비전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단순히 거대한 건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소설에 외계에서 온 외로운 인공 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들여 저 먼 별들에 부글거리는 수많은 지적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인간을 우주로 끌어올리고 저 거대한 생명과 지성의 잔치 속으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우주 전체에 비하면 궤도 엘리베이터는 작디작은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겨우 지구와 달 사이의 3분의 1 길이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막대기가 아닌가요?

그의 비전은 이쯤해서 거의 영적으로 변합니다. 모건은 미친 건축가가 아니라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끄는 모세인 거예요. 궤도 엘리베이터를 세우기 위해 스리간다 사원의 마하 테로 선사와 그가 벌이는 논쟁은 종교와 과학의 대결보다는 두 종교 사이의 대화처럼 보입니다. 모건의 종교는 이성입니다. 그리고 그 종교가 우리를 이끄는 곳은 우리의 진화입니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면 우리는 천국의 맛을 살짝 맛볼 수 있습니다. 수천 년 뒤, 지구의 적도에는 거대한 링으로 연결된 수많은 탑들이 솟아 있고 지구인들은 '물러나고 돌아오는 때를 알 만큼' 성숙해있습니다. 클라크가 하려는 말은 간단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어느 정신 나간 건축가가 우리의 관심을 하늘로 돌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죠. (0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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