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라는 것 My So-Called Life (1994-1995)

2010.03.17 11:17

DJUNA 조회 수:4820

출연: Bess Armstrong, Wilson Cruz, Claire Danes, Devon Gummersall, A.J. Langer, Jared Leto, Devon Odessa, Lisa Wilhoit, Tom Irwin

1.

30대 여피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룬 87년도작 텔레비전 시리즈 [thirtysomething]이 성공을 거두자, ABC에서는 이 시리즈의 공동 제작자인 마샬 허쇼위츠 & 에드워드 즈윅 콤비와 다섯 편의 파일럿 계약을 채결했습니다. 이후로 그들은 ABC에 세 편의 텔레비전 시리즈들을 선보였습니다. [내 인생이라는 것 My So-Called Life (1994)]이 먼저 나왔고 [사랑을 위하여 Relativity (1996)]가 뒤를 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나온 작품이 [Once and Again (1999)]이었죠.

세 작품 모두 기본 골격은 같았습니다. 주인공들은 대도시의 교외에 사는 중산층 백인 가족 구성원들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들 중 한 명이 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어떤 사람들과 갑작스러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순식간에 그들의 우주는 두배로 증폭되고 그 결과 복잡한 인간 관계의 태피스트리가 짜여집니다.

차이점은 이들이 타겟으로 삼는 대상이었습니다. [내 인생이라는 것 (앞으로 [MSCL]라고 씁니다)]의 중심 캐릭터들은 십대였습니다. [사랑을 위하여]의 중심 주인공들은 20대였고요. [Once and Again]의 중심 주인공들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시리즈가 꼭 중심 주인공들의 세대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지만요.

이 작품들에 대한 반응은 모두 비슷했습니다. 비평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고 종종 열성 컬트 팬들을 끌어모았지만, 시청률은 늘 그저 그랬지요. [MSCL]과 [사랑을 위하여]는 한 시즌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탈락했고, [Once and Again]은 끝도 없이 시간대를 옮겨가며 3시즌을 끌다가 결국 종영되었습니다.

시청률과 에피소드 수만 계산한다면 이들 중 가장 성공작은 [Once and Again]이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우린 어쩔 수 없이 [MSCL]을 앞으로 끌어오게 됩니다. [MSCL]은 정말 이상한 시리즈입니다. 19회를 간신히 채우고 종영한 작품답지 않게 여전히 장르에 유령과도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요.

2.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MSCL]은 허쇼위츠 & 즈윅 콤비의 대표작들 중 하나이고 그들이 이 작품의 탄생에 깊이 관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작품의 진짜 크리에이터는 전직 시인 겸 극작가이고 지금은 허쇼위츠 & 즈윅 사단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위니 홀츠먼입니다. 홀츠먼은 이들의 이후 작품인 [Once and Again]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니 허쇼위츠 & 즈윅의 개성으로 여겨지는 것들 중 상당수는 홀츠먼의 것일 수도 있겠어요.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군요. 하지만 [MSCL]을 허쇼위츠 & 즈윅 콤비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시키는 그 고유의 느낌은 홀츠먼의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MSCL]의 무대는 피츠버그 교외에 위치한 스리 리버즈라는 주택가입니다. 주인공은 앤젤라 체이스라는 15살짜리 고등학생이고요. 시리즈가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호르몬이 치솟았는지, 지금까지 멀끔한 모범생으로 잘 지내온 이 친구는 자기 나름대로 반항을 시작합니다. 그 반항이라는 건 머리를 빨강으로 염색하고, 학교 불량아인 레이앤 그라프와 히스페닉 동성애자 소년인 리키 바스케스를 새 친구로 맞아들인 뒤, 늘 멋진 자세로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남학생 조던 카탈라노와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앤젤라 덕택에 체이스 가족과 앤젤라의 이전 친구들이 상대할 사람들은 순식간에 두 배로 늘어나고... 네, 전형적인 허쇼위츠 & 즈윅식 설정이 만들어집니다. 이 시리즈에서 레이앤의 엄마 앰버는 커트 보니거트 주니어의 [고양이 요람]에서 인용한 karass라는 단어로 이를 설명하고 있지요. ("Karass is a group of people who kind of get mixed up in each other's lives in order to do God's will.")

많은 비평가들이 주목한 [MSCL]의 장점은 그 사실성이었습니다. [MSCL]은 고등학교 시절을 멜로드라마틱하게 과장하지도 않았고 등장인물들을 필요 이상으로 미화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이 묘사하는 캐릭터들은 보통 이상으로 영리하고 예민한 아이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도슨의 청춘일기] 주인공들처럼 어른스러운 연설들을 뽑아내지도 않았습니다. 앤젤라와 친구들의 독백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 회상하면 창피해서 귀까지 빨개질 법한 그 나이 또래 특유의 순진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인공 앤젤라를 연기한 클레어 데인즈는 바로 그런 시리즈의 성격 자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외모이고 우리가 주인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I'm ugly, okay? Just face it.'이라는 주인공의 외침이 거짓처럼 들리지 않을만큼 현실적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바로 그런 느낌이 시청자들을 몰아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타겟으로 잡은 십대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에서까지 그런 사실적인 삶을 접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MSCL]은 그렇게까지 간단하게 설명되는 작품은 아닙니다. [MSCL]의 세계는 사실 당시 십대들이 진짜로 접했던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사실성을 칭찬했지만, 시리즈 전체의 분위기는 오히려 몽환적인 편입니다. 심지어 시리즈는 종종 예고 없이 초현실적인 세계로 빠지기도 합니다. 무대가 되는 리버티 고등학교에는 아직도 몇십 년 전에 죽은 소년의 유령이 살고 있고 스리 리버스의 크리스마스 거리엔 등에 기타를 짊어진 천사가 돌아다니니까요. 앤젤라가 비교적 사실적인 고민과 대면할 때도 시리즈는 열병과도 같은 붕 뜬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MSCL]의 캐릭터들도 사실적인 것과는 약간 거리가 멀었습니다. 우린 그들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감정들과 고통들은 앤젤라의 연대기를 따라가는 동안 몇 배로 부풀어 연구 대상이 되었고, 스토리 안에서 분석된 뒤, 앤젤라 체이스의 유명한 잠언들에 따라 분류되었습니다.

[MSCL]가 컬트 시리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당시 십대 시청자들이 맘 속에 품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부글거리는 감정들을 감각과 언어를 통해 정확히 기술했고 구체적인 이름들을 붙여주었으며 적극적인 의사 소통을 위해 쿨한 언어까지 제공해주었습니다. 해결책을 제공해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전투를 위한 무장은 해주었던 것이죠.

3.

앤젤라 체이스는 한마디로 말없는 수다쟁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머리 속으로는 할 말이 엄청많은데, 수줍음과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그걸 쉽게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인물이죠. 덕택에 앤젤라의 생각은 대충 두 가지 우회로를 통해 표출됩니다.

하나는 배우인 클레어 데인즈를 이용한 표정 연기입니다. [MSCL]는 클레어 데인즈 얼굴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 같아요. 뭔가 앤젤라의 맘을 건드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럼 클레어 데인즈는 클로즈업되는 자리에 서서 기가 막힌 표정을 짓죠. 그러면 이야기는 앤젤라를 건드릴만한 다른 설정으로 넘어가고 앤젤라는 거기에 또다른 표정으로 반응하는 거죠. 하긴 한창 사춘기였던 클레어 데인즈를 카메라 앞에 몇 번 세워놓은 뒤에도 이런 버릇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거예요.

다른 하나는 독백입니다. 허쇼위츠 & 즈윅 콤비의 작품들은 현실적인 세계를 다루면서도 주인공들이 자신의 내면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탈출구를 하나 만들어놓는데, [MSCL]의 경우 이건 독백이었던 거죠. 독백의 기회는 앤젤라의 친구인 브라이언이나 앤젤라의 동생인 대니엘과 같은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잠시 양도되긴 하지만, 거의 전적으로 앤젤라의 몫입니다. 앤젤라는 미국 텔레비전 버전 햄릿이었고 [MSCL]의 가장 중요한 액션들은 수줍고 말없는 15살 소녀가 허공에다 질러대는 외침이었습니다.

앤젤라는 잠언 작가의 경향이 강한 친구여서,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수많은 잠언들을 잔뜩 생산해냈습니다. 대충 이런 것들이죠.

"My parents keep asking how school was. It's like saying, 'How was that drive-by shooting?' You don't care how it was, you're lucky to get out alive."

"People are always saying you should be yourself, like yourself is this definite thing, like a toaster. Like you know what it is even. But every so often I'll have, like, a moment, where just being myself in my life right where I am is, like, enough."

"Sometimes I think if my mother wasn't so good at pretending to be happy she might be better at actually being happy."

"My dad and I used to be pretty tight. The sad truth is, my breasts have come between us. ."

그리고 가장 유명한...

"School is a battlefield... for your heart.."

앤젤라 체이스 잠언집의 공통된 특징은 컴컴한 아이러니입니다. 실제 세상이 자기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고 자기 자신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걸 안 십대 소녀가 눈에 걸리는 모든 것들을 잡고 뒤집어 보는 것이죠. 많은 선배 잠언 작가들처럼, 앤젤라도 이런 아이러니가 더 진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딱하게도, 이 예리한 눈을 가진 친구는 그 통찰력을 자기에까지 돌리지는 못합니다. 앤젤라는 자기가 찔러대는 주변 사람들처럼 한심한 망집과 기만의 함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특히 이 친구의 연애담은... 이건 아래에서 다루기로 하죠.

4.

[MSCL]의 가장 재미있는 아이러니는, 우리의 주인공 앤젤라 체이스가 마치 세상 상처를 다 끌어안은 피해자처럼 굴고 있지만 사실 이 시리즈의 가장 가혹한 가해자이고 시리즈 안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삼각관계들의 꼭지점이라는 것입니다. [MSCL]의 뼈대 자체가 앤젤라를 중심으로 한 두 개의 삼각관계로 구성되어 있는 걸요.

시리즈가 가장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조던 카탈라노에 대한 앤젤라 체이스의 집착입니다. 시리즈의 절반이 대충 그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죠. 앤젤라가 조던을 짝사랑하며 쫓다가 결국 보일러실에서 몰래 키스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다시 헤어졌다가 재결합할 뻔했다가... 앤젤라의 이웃집에 살고 있는 어린 시절 친구 브라이언 크라코우가 앤젤라를 짝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한방향으로 흘러가는 삼각 관계로 시작됩니다.

흥미로운 건 시리즈가 조던 카탈라노라는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입니다. 이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공허합니다. 내면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조던은 이런 장르가 지정한 쿨한 반항아의 기본 행동들을 따라하고 있지만 그게 이 친구의 전부입니다. 조던이 시리즈 전체를 통해 하는 대사들을 한 번 들어보세요. 모두 다음과 같은 간단한 대사들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너 누구니?", "나 키스 하고 싶어", "나 너네 엄마 아빠 만나기 싫어", "왜 넌 나랑 섹스 안하니?" 이 친구의 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언이 앤젤라 뺨치는 풍부한 감수성과 어휘를 지닌 친구이기 때문에 조던의 단순함은 더욱 노골적이 됩니다. 작가들은 조던을 난독증 환자로 설정했는데, 앤젤라는 이걸 고통스럽고 심각한 장애로 보았지만, 제 눈엔 캐릭터의 소통 불능성에 대한 잔인한 농담같습니다.

그 결과 조던에 대한 앤젤라의 집착은 일종의 독무가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착각과 자기 기만으로 짜여져 있다고 해도 될 거예요. 앤젤라가 조던의 밴드 'Frozen Embryos'의 리허설을 듣는 장면을 보세요. 앤젤라는 조던이 부르는 노래 [레드]에서 '레드'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황홀해하지만 사실 그 '레드'는 조던이 타고다니는 빨강 차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게 조던의 역할입니다. 조던의 공허함은 앤젤라의 상상력을 반영하는 거울인 셈입니다. 사실 조던은 공허할수록 좋습니다. 조던의 예쁘장한 껍질 속에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뭔가가 존재한다면 앤젤라의 환상은 중간에 무너질테니까요. 조던과 앤젤라의 이야기는 앤젤라 나이 또래 아이들의 열병과도 같은 사랑이 얼마나 공허한 기반에 놓여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정보 차단과 왜곡된 사고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무기로도 기능한다는 것입니다. 브라이언이 바로 그 피해자입니다. 앤젤라는 조던의 텅빈 거울 속에 자신의 판타지를 투영하는 데 바쁜 나머지 조용히 옆에서 애정을 바치는 브라이언의 감정을 무시합니다. 그러는 동안 브라이언은 끝없이 앤젤라의 무의식적 이용 대상이 되죠. 그 와중에 브라이언은 잠시 자기가 앤젤라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귀려고 했던 딜리아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박해의 사슬이라고 할까요.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 'In Dreams Begin Responsibilities'에서 이런 악순환은 어느 정도 깨어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앤젤라는 브라이언이 대필한 조던의 러브 레터에서 드디어 브라이언의 진짜 감정을 읽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시리즈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끝나 버렸습니다.

5.

[MSCL]에서 조던-앤젤라-브라이언의 삼각관계 만큼이나 중요한 건 레이앤-앤젤라-샤론의 삼각관계입니다. 앤젤라가 레이앤 그라프와 리키 바스케스를 새 단짝 친구들로 맞아들이면서 앤젤라와 앤젤라의 옛 친구 샤론 처스키의 관계는 소원해집니다.

앤젤라와 조던의 관계가 순수한 호르몬 분출의 결과라면, 레이앤과의 관계는 비교적 의식적 선택입니다. ("So I started hanging out with Rayanne Graff. Just for fun. Just cause it seemed like if I didn't, I would die or something. Things were getting to me. Just how people are. How they always expect you to be a certain way, even your best friend.") 앤젤라에게 레이앤 그라프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가능성을 체크하기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문입니다.

이런 관계가 시작되면서부터 앤젤라는 샤론에 대해 가해자가 됩니다. 샤론은 정말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샤론에 대한 앤젤라의 죄의식과 레이앤에 대한 샤론의 질투심은 거의 시리즈 끝까지 갑니다.

앤젤라는 레이앤에 대해서도 가해자가 됩니다. 그건 이들의 관계가 불평등한 조건 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얼핏보면 닳을 대로 닳은 바람둥이 알콜중독자인 불량 소녀 레이앤과 결백하기 짝이 없는 앤젤라의 관계는 정반대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앤젤라에게 레이앤은 어느 정도 기능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앤젤라에 대한 레이앤의 감정은 순수하고 격렬합니다. 레이앤의 세계에서 앤젤라는 사랑할 만한 가치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입니다. 세번째 에피소드인 'Guns and Gossip'에서 앰버는 레이앤의 감정을 설명하는 상당히 효율적인 은유를 제공해줍니다. "No, don't you remember there would be like this one person who had like perfect hair, or perfect breasts, or they were just so funny, and-and you just wanted to eat them up. Just-just live in their bed. Just be them. Like everybody else was in black and white and that person was in color. Well, Rayanne thinks Angela is in color. Major color."

시리즈의 후반은 레이앤-앤젤라-조던의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레이앤의 여정은 조던에게 관심을 빼앗긴 앤젤라의 우정을 되찾기 위한 서툰 시도의 연속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레이앤이 앤젤라와 헤어진 조던을 유혹하는 통에 그 모든 시도들은 붕괴되어 버렸지만요. (이 역시 앤젤라가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진짜로 심각하게 다친 건 다른 사람인 케이스입니다.) 그 후 앤젤라의 애정을 되찾으려는 레이앤의 모든 노력은 시리즈 종영과 함께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시리즈는 종영되기 전에 흥미로운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레이앤과 샤론이 앤젤라를 가운데 놓고 툭탁거리는 동안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죠. 앤젤라를 잃고 기가 죽은 레이앤에게 샤론이 더듬거리며 접근하는 장면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So you do...have a friend. I mean, maybe not the one you want, but...") 모르겠어요. 이런 식으로 두 세계의 구성원들을 결합시키는 게 앤젤라의 진짜 존재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6.

허쇼비츠와 즈윅의 시리즈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꼭 등장합니다. 하나는 보통 중부 유럽계인 유태계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동성애자들이죠. 종종 둘은 겹치기도 합니다. [사랑을 위하여]의 론다처럼요. 첫번째는 두 사람이 모두 유태계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고, 두번째는... 글쎄요.

[MSCL]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시리즈에서 브라이언은 유태인이고 앤젤라의 친구 리키 바스케스는 동성애자입니다. 여기서 브라이언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지만(이들의 작품들에서 유태인이라는 주제는 늘 가족사와 연결되는데 브라이언의 가족은 목소리로만 존재하거든요) 리키의 성정체성은 [MSCL]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리키는 자신을 바이라고 소개하는 여성적인 히스페닉 소년으로 첫 등장합니다. 튀는 헤어스타일에 커다란 귀고리를 단 이 캐릭터는 늘 여자 화장실에서 여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죠. 처음에 이 캐릭터는 '여자 친구와 같은 남자 친구'라는 기능적 역할이 강했습니다.

비교적 가볍게 시작된 이 캐릭터의 여정은 에피소드가 늘어나면서 점점 무게를 띠기 시작합니다. 첫사랑의 좌절, 증오 폭력, 가정 폭력으로 이어지는 리키의 수난은 역시 동성애자인 영어 교사 카팀스키 선생을 만나면서 안정을 찾게 됩니다. 열린 결말 속에 버려진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리키의 여정은 어느 정도 마침표를 찍은 편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리키는 장식처럼 붙이고 다니던 '바이' 딱지를 떼고, 자기에게 끌린 딜리아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Yeah, I'm gay. I just don't usually say it like that." 리키에게 괜찮은 남자 친구를 하나 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모든 걸 다 얻을 수는 없죠. 페그 해그 친구 하나 달아준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리키 바스케스는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깊이 있게 다루어진 최초의 십대 게이 캐릭터였습니다. 그 뒤로 같은 소재를 다룬 많은 텔레비전 시리즈들이 나왔지만 리키만큼 훌륭하게 묘사된 인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역시 같은 콤비가 만든 [Once and Again]의 제시 새믈러가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겠지요.

7.

[MSCL]에서 성인들의 대표는 앤젤라의 부모인 패티와 그레이엄입니다. 체이스 부부는 패티의 아버지가 세운 인쇄소를 운영하는데, 아내 밑에서 취미도 없는 일을 십 여년 동안 하던 그레이엄은 나중에 요리사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둘로 나뉘어집니다. 우선 그들은 앤젤라에게 부모 노릇을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들은 선량하고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좋은 부모지만, 그렇다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사춘기 딸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Lately, I can't even look at my mother without wanting to stab her repeatedly.") 갑작스럽게 어른이 되는 중간 단계로 뛰어오른 딸과 복잡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그들은 딸과 마찬가지로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집니다. 종종 이들과 아이들의 관계는 그들의 부모들이 등장하면서 이중적인 의미를 띠기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어떤 면에서 가해자라는 주제는 [MSCL]에서 끝도 없이 반복됩니다.)

이들에게는 자기만의 고민도 있습니다. 특히 중년의 위기를 겪는 그레이엄의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선량하지만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이 중년 남자는 어떻게 보면 제2의 사춘기를 겪는 셈입니다. 패티는 남편에게도 엄마 노릇을 하는 셈이죠. 이 끊임없는 성장의 고통은 체이스 부부 나이 또래의 어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겁니다.

8.

[MSCL]는 미완성 시리즈입니다. 우린 앤젤라와 조던, 브라이언의 삼각 관계가 어떻게 끝났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린 레이앤과 앤젤라가 과연 화해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린 레이앤이 에밀리로 출연하는 [우리 마을]의 공연도 보지 못했고, 그레이엄과 동업자 할리와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릅니다.

분명 손실입니다. [MSCL]은 느긋하게 이야기의 실을 풀어가는 시리즈였으니까요. [Once and Again] 정도만 끌었어도 이야기는 훨씬 입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앤젤라 체이스가 보다 깊이 있는 인물로 성장하는 걸 지켜볼 수도 있었을 거고, 리키의 남자 친구를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늘 가족들에게 조금씩 외면을 당하던 대니엘도 자기만의 스토리를 더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명한 시리즈라는 사실 자체가 [MSCL]에 특별한 아우라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시리즈의 열린 결말이 마치 깨진 중국 도자기의 편린과도 같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기기도 했고요. 그런 미완성의 모습 때문에 시청자들의 상상력이 더 부풀기도 했어요.

시리즈의 영향력은 ABC에서 종영된 이후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MTV가 [MSCL]의 마라톤을 정기적으로 방영하면서, 이 작품은 당시 십대 문화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앤젤라의 빨강 머리에서부터 W.G. 스너피 월든의 유명한 주제곡까지, [MSCL]의 수많은 조각들은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조금씩 흩어져 그들의 심미관과 비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후에 나온 수많은 십대 대상 텔레비전물들은 대부분 [MSCL]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도슨의 청춘 일기]나 [펠리시티]에 드러나는 [MSCL]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명명백백합니다. 심지어 이들의 영향력은 SF나 환상물로도 뻗어갔습니다. [MSCL]의 스토리 에디터인 제이슨 카팀스가 만든 [로스웰]을 한 번 보세요. 초능력이 있는 외계인 이야기지만 [MSCL]의 독백과 고민들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나요? [버피]는 어떻습니까? 'I Only Have Eyes For You'는 [MSCL]의 'Halloween'을 버피식으로 변형한 버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윌로우의 마법 중독 스토리 라인과 레이앤의 알콜 중독 스토리 라인이 비슷한 게 우연일까요?

[MSCL]의 미완성 조각들은 허쇼위츠 & 즈윅 콤비의 [Once and Again]에서 다시 재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일단 릴리의 딸인 그레이스는 척 보기만 해도 '앤젤라 체이스 2세'를 의도한 캐릭터입니다. 결국 공연되지 못한 [우리 마을]은 [Once and Again] 3시즌의 [뜻대로 하세요] 공연으로 이어졌고, 조던의 난독증은 릭의 아들 일라이에게로 옮겨갔지요. 릭의 딸 제시의 삶을 뒤흔든 케이티 생어는 레이앤 그라프의 레즈비언 버전일 수도 있겠군요. 아니, 어느 정도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레이앤-앤젤라-샤론의 삼각 관계가 사라-케이티-제시의 삼각 관계로 변형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사라와 샤론은 하는 대사까지 비슷한 걸요.

[MSCL]는 단명한 시리즈였고 그 여정도 결코 평탄하지 못했지만 그 짧은 인생은 당시 경쟁했던 수많은 '성공작'들보다 가치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와서 보면 'Pilot' 에피소드에 나오는 앤젤라와 레이앤의 마지막 대사들만큼 이 사연 많았던 시리즈의 묘비명으로 적합한 건 없는 것 같아요.

RAYANNE 
I am telling you, we had a time. Didn't we? Didn't we have a time?

ANGELA 
We did. We had a time. (0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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