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스톱 (2000 - )

2010.03.20 19:31

DJUNA 조회 수:4069

출연: 양동근, 박경림, 김영준, 장나라, 조인성, 이민우, 이제니, 이재은, 정다빈, 김정화, 김영아, 김효진, 정원중, 최민용, 정태우, 조한선, 여욱환, 다나, 하하, 이진, 전혜빈

1.

1996년, MBC는 당시 한참 인기를 끌고 있던 NBC 시트콤 [프렌즈]의 형식을 모방한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시트콤을 출발시켰습니다. 인물 구도의 모방이 노골적이고 지금 보면 거의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유머와 세계관이 진부한 작품이지만 한동안 저녁 7시대가 '청춘 시트콤'이라는 신종 장르로 북적거렸던 게 이 작품의 성공 때문이라는 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99년 [남자 셋 여자 셋]이 종영된 이후로 MBC는 그 빈자리를 채우기 필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형편없었지요. 최불암을 주연으로 내세운 [점프]는 제작진들이 '최불암 시리즈'라는 현상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에 불과했으며 [가문의 영광]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기억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2000년 데뷔한 [논스톱]도 [점프]나 [가문의 영광]과 같은 운명을 걸었던 시리즈입니다. 지금 이 작품을 제대로 기억하시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기억한다고 믿는 분들은 대부분 [뉴 논스톱]을 [논스톱]으로 착각하고 있지요. [논스톱]은 침팬지라는 이벤트 회사와 포츠테라는 디자인 회사에 막 취직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이후에 나온 '속편'들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이 작품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MBC는 조금 엉뚱한 짓을 했습니다. 설정과 배우들을 교체한 뒤 [뉴 논스톱]이라는 속편 아닌 속편을 내놓은 것이죠. 문화대학 사회체육과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시리즈는 아무도 예상 못한 대성공을 거두었고 양동근, 장나라, 조인성과 같은 젊은 스타들을 배출했습니다. 이 작품의 인기는 배우들을 거의 교체한 속편 [논스톱 III]으로 넘어간 뒤에도 계속 이어졌는데, 이 시리즈도 마무리된 지금 MBC에서는 세번째 속편인 [논스톱 4]를 준비중입니다.

2.

[뉴 논스톱]은 [남자 셋 여자 셋]의 공식을 반복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첫 멤버인 이제니, 이잎새, 이재은, 이민우, 김영준, 양동근은 이전의 남자 셋, 여자 셋의 구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지요. 시리즈 초반의 무대였던 하숙집도 [남자 셋 여자 셋]과 거의 비슷한 가족적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이 기획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남자 셋 여자 셋 2]라고 놀려댔었지요.

그러나 이런 공식은 시리즈가 성장하면서 서서히 무너져 갔습니다. 의심나신다면 다음 지식들을 체크해보세요. 여러분들 중 양동근의 전공이 체조였다는 걸 기억하시는 분들이 몇 명이나 되나요? 효진과 재은이 자매 사이라는 건요? 효진과 재은의 엄마가 하숙집 주인이었다는 건? 이경규가 교수로 나왔다는 건? 정원관이 '센트럴 퍼크'식 카페의 주인으로 출연했다는 건? 이런 자질구레한 사실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건 초반에 설정으로 잡았던 것들이 더이상 이 시리즈의 성격을 정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리즈가 진짜로 자기만의 성격을 찾기 시작한 건 무대를 기숙사로 옮기고 박경림, 장나라, 조인성, 정다빈, 김정화와 같은 새 캐릭터들과 배우들이 이전 캐릭터들과 배우들을 교체한 뒤부터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논스톱] 시리즈의 유머와 캐릭터들이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논스톱] 시리즈에서 재미있는 것은 다른 시트콤들과는 달리 이 시리즈를 특징짓는 게 고정 캐릭터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뉴 논스톱]에서 [논스톱 III]로 이어지는 동안 끝까지 살아남았던 캐릭터는 기숙사 사감인 김효진밖에 없습니다. 시리즈는 수많은 스타들과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배출했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했던 건 특정 캐릭터들이 아니라 작가들이 캐릭터들을 빚어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 스타일만 고수된다면 누가 등장하건 상관없는 것이죠. 이 시리즈가 젊은 스타들의 산실로 기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논스톱] 시리즈는 새 배우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맞는 역할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종종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몇 달이 걸리는 때도 있었고 최종 성격이 처음 설정한 성격과 전혀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상관없었어요. 결국 먹혔으니까요.

3.

두 편의 [논스톱] 시리즈들을 분석하는 데에 가장 큰 난점은 이 시리즈들이 얄팍하기 짝이 없는 작품들이라는 것입니다.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로 이어지는 '오퇴르' 김병욱 PD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죠. 김병욱의 SBS 시트콤들은 '깊이'가 있습니다. 캐릭터들은 정확한 성격 묘사와 심리 묘사에 의해 그려지고 이들이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에는 인간 군상을 바라보는 개성적인 관점과 사유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김병욱의 작품들은 분석이 비교적 쉽습니다.

하지만 [논스톱]에는 그런 깊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논스톱] 시리즈들은 [남자 셋 여자 셋] 이후에 나온 '청춘 시트콤'들의 진부한 요소들을 모아 평평하게 펼쳐놓은 것 같았습니다. 만화 주인공들처럼 과장된 캐릭터들은 순전히 연기자들의 개성과 장기를 살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기숙사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소동들은 모두 커플들을 맺어주기를 위한 핑계고요. 결정적으로 이들에게 배경을 제공해주는 문화 대학은 실제 세계의 대학과 거의 닮은 데가 없는 환상적인 공간입니다. [논스톱]의 세계는 우리의 귀여운 대학생 주인공들이 부모의 간섭이나 사회 생활의 덫에 비교적 덜 말려들면서도 어른인 척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호막이었습니다.

그 비현실성이 [논스톱]의 성공요소였을까요? 뻔뻔스러운 특수 효과를 동원한 SF적 설정, 일부러 인위성을 강조하는 과장된 연기, 카메라와 스탭들의 존재를 폭로하는 연출과 같은 것들은 [논스톱] 시리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의도적인 비현실적인 공간이 그런 트릭들을 정당화시킨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논스톱] 시리즈만의 고유의 개성이라고 할 수는 없었죠. 순전히 이런 것들 때문에 [논스톱]이 성공작이 되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논스톱] 시리즈의 그 무개성적인 설정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성공여부를 평가할 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요.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남자 셋, 여자 셋]이 종영되고 [뉴 논스톱] 시리즈가 본 궤도로 오를 때까지 나왔던 어정쩡한 시리즈들은 모두 가치있는 시행착오였던 게 아닐까요? 그 시행착오 속에서 유머는 성장했고 시청자들과 작가들이 세상을 보는 눈도 나아졌다고 생각해보세요. 실패한 시리즈들을 통해 그들이 쌓은 경험은 그들이 가장 잘 다루는 세계로 돌아왔을 때 꽃피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몇 예를 들죠. [남자 셋 여자 셋]의 신동엽 캐릭터는 지금보면 굉장히 불쾌한 인물입니다. 동엽의 가장 거북스러운 면 중 하나는 남녀관계에 대한 이 친구의 보수적이며 부정직한 이중잣대였죠. 하지만 [논스톱]에서 가장 보수적인 인물이었고 또 자신이 그렇다는 걸 일부러 과시하는 최민용에게는 그런 불쾌한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건 민용이 그런 보수성을 겉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평가가 쉬웠고, 아무리 자신의 보수주의를 깃발처럼 흔들어도 동엽보다 훨씬 열려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치 체계의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됩니다. [논스톱] 시리즈의 여자 주인공들은 [남자 셋 여자 셋] 때보다는 훨씬 적극적이고 활달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의정이처럼 그런 생생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엽기성'을 동원할 필요를 느끼는 것도 아니고요.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활용한 것이었지만 종종 시리즈는 여성 캐릭터들의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부러 깨기도 했습니다. 이전 같았다면 '여자답지 못하고' 평범한 외모인 박경림은 조인성과 데이트를 진행시키기 위해 온갖 모욕적인 수난을 겪었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평등했고 경림은 캐릭터로서의 존엄성을 거의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변화된 여자들을 따라 남자들의 성격 역시 바뀌었습니다. 지저분하고 우스꽝스러운 동근과 주책바가지 하하도 귀여운 척하며 남자 주인공 행세를 하는 동엽보다 훨씬 멋있고 깊이있는 인물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보다 과장된 비현실성 역시 시청자들과 비평가들을 상대하는 방식이 더 세련되어졌다는 증거였습니다. 시리즈가 이런 비현실성 속에서 특유의 과장된 스타일을 구축하기도 했지만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설정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기대를 일찌감치 접고 시리즈의 현실도피적인 재미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요. [논스톱] 시리즈의 비평가들은 [남자 셋 여자 셋] 때 그랬던 것처럼 작가들에게 대학생활의 사실성과 현실세계의 고민을 요구하지 않았고 시리즈가 제공하는 얄팍한 웃음의 가치를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리해서 말한다면 [논스톱]은 발전한 형태의 얄팍한 오락이었습니다. 작가들과 배우들이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일주일에 다섯 편이라는 엄청난 양을 채우기 위해 피와 땀을 뽑는 동안 장르 안에서 급속하게 진화한 결과였지요. 여전히 이 작품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동안 이 시리즈가 거둔 질적 성장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성과입니다. (03/09/09)

기타등등

곧 [논스톱 4]가 방영됩니다. [뉴 논스톱]과 [논스톱 III]은 그래도 꽤 연결된 시리즈였지만 [논스톱 4]는 거의 독립적인 작품인 듯해요. 이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고 가수들이 부글거리는 캐스팅에 불만인 사람들도 많은데, 아직까지는 새 시리즈의 미래를 쉽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제목만 남기고 설정과 무대를 옮긴 건 [뉴 논스톱] 시리즈도 마찬가지였고 가수들이 부글거리는 건 [논스톱 III]도 마찬가지니까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