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기방괴담 (2008)

2010.03.21 08:45

DJUNA 조회 수:4023

각본: 유은하 연출: 김정민 출연: 이덕화, 이민우, 유혜정, 김규철, 윤주희, 민지영, 장채우, 반소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방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범인은 물론 긴머리 여자귀신. 아무래도 그 귀신은 얼마 전에 낙향한 김대감의 수청을 들고 나서 실종된 소월이라는 기생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효랑이라는 화원이 들어와 기방에 머물면서 자꾸 귀신 이야기를 캐묻고 다닙니다.

에피소드에 다 끝나고 성우가 밝힙니다만, [기방괴담]에는 원전이 있습니다. 나중에 암행어사로 돌아온 소월의 남자친구로 밝혀지는 효랑은 인조시대 실존인물인 성이성(成以性)에 바탕을 두고 있고, 성이성은 [춘향전] 이몽룡의 모델로 추정되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성우의 나레이션 이전에 그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암행어사와 기생이라는 기본 키워드를 제외하면, 원본이 심하게 왜곡되었기 때문이지요.

스토리텔링의 문제점을 지적해야겠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귀신이 나오는 추리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춘향전] 재탕을 찍을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주어진 러닝타임 안에 다루기엔 이야기가 지나치게 복잡해요. 설명용 플래시백이 너무 많으며 중반까지 계속 스토리가 분산되는 통에 집중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상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구석구석 빈틈도 보이고. 예를 들어 왜 김대감과 사또는 살인사건을 비밀로 숨기려 했답니까? 척 봐도 정당방위인데? 그리고 소월의 시체는 어디로 갔지요?

호러물로서 [기방괴담]은 신경질적으로 코믹합니다. 식칼을 휘두르며 돌아다니는 미친 기생은 인상적이지만 무섭다기보다는 희극적이죠. 뒤에서 긴머리 귀신이 얼굴을 만지려는데 휙 걸어나가는 효랑이나(만화가라면 귀신 옆 얼굴에 커다란 땀방울을 서넛 그려넣었을 것 같습니다), 은장도를 휘두르는 가냘픈 기생한테서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달아나는 김대감도 마찬가지입니다. 딱 하나 제대로 먹힌 호러 장면이 있는데, 그건 사또가 긴머리 여자귀신에게 살해당할 때 목이 부러지면서 나는 '뚝'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장면은 스턴트도 좋아요.

이번에도 여자 귀신은 예쁩니다. 하지만 윤주희는 긴머리 귀신으로 나올 때는 효과가 좀 떨어지는군요. 죄인이 되어 아빠와 함께 끌려갈 때가 가장 예뻤던 것 같습니다. 이민우는 비밀을 감춘 복수자의 역할을 하기엔 인상이 너무 순합니다. 이덕화는 부패한 늙은 탐관오리 역에 딱인데, 요새 분위기에선 그게 칭찬같이 들리지가 않죠. (0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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