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라 해리슨의 등장

2010.03.14 21:54

DJUNA 조회 수:2262

얼마 전에 방영된 [엑스 파일] 에피소드 [Alone]에서 우린 출산 휴가를 낸 스컬리를 대신하기 위해 엑스 파일 부서에 파견된 레일라 해리슨이라는 신참 요원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엑스 파일의 출장 장부를 관리했던 해리슨 요원은 몇 개월 동안 엑스 파일에서 일했던 도겟 요원보다 스컬리와 멀더의 모험담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있습니다. 도겟과 해리슨의 짧은 모험이 이어지는 동안 해리슨은 끝도 없이 엑스 파일의 과거 사건들에 대해 읊어댑니다.

레일라 해리슨 요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아마 열성 엑스 파일 팬들은 이전에도 레일라 해리슨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겁니다. 그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팬픽션 작가였으니까요. 엑스 파일 팬픽션 관련 사이트들을 조금만 둘러봐도 레일라 해리슨의 이름은 나옵니다. 슬프게도 이 사람은 [Alone] 에피소드가 나오기 몇 달 전에 흑색종으로 죽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Alone] 에피소드에 레일라 해리슨이라는 신참 요원을 등장시킨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레일라 해리슨의 죽음을 애도하고, 전형적인 엑스 파일 팬들처럼 행동하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지금까지 충실하게 따라왔던 팬들에게 윙크를 하는 것 말입니다.

[엑스 파일]은 때맞추어 성장하고 있던 인터넷을 통해 팬들을 끌어모은 최초의 시리즈입니다. [엑스 파일]의 컬트 열풍도 인터넷에서부터 시작되었지요. 채팅과 게시판을 통해 에피소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팬픽션을 쓰고, 온라인을 통해 제작진과 직접 접촉하는 일들은 모두 [엑스 파일] 이전에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었습니다.

여기서 우린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시대의 인터액티브 기능에 주목하고 여러 예술적 실험을 했습니다. 장래에는 이런 식의 적극적인 참여 오락이 그냥 화면만 노려볼 수밖에 없는 텔레비전을 몰아낼 거라고 믿으면서요.

하지만 인터액티브 문학이나 영화의 실험은 곧 쭈그러들었습니다. 실제로 별다른 발전 가능성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물론 게임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만, 그것도 인터액티브 예술의 주창자들이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텔레비전과 인터넷은 전혀 다른 예상하지 못했던 식으로 결합했습니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화면만 노려볼 수밖에 없는 오락을 제공했지만 인터넷과 연결된 팬들은 결코 이전과 같은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죠. 인터넷은 이들에게 적극적인 참여의 기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제 팬픽션을 통해 그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꾸려갈 수 있었고, 공식 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제작진에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정보 얻기도 보다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버피]나 [ER]과 같은 인기 시리즈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려면 공식 매체보다는 팬페이지나 게시판을 방문하는 쪽이 훨씬 빠르고 정보량도 많습니다. 가짜 스포일러도 그만큼이나 많긴 하지만 어느 정도 돌아다니다 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능력이 생기게 되지요.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건 매체의 발전이 결코 디지털 시대의 예언자들이나 실험가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십년 동안 모습을 바꾸지 않았던 것들은 대부분 그 뒤에도 그 모습 그대로 남습니다. 그게 최선이니까요. 톨스토이의 소설을 인터액티브로 고친다고 작품의 질이 더 나아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바뀌는 것은 발전 가능성이 있고 아직 미개발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텔레비전 세계에서는 그것은 바로 시청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텔레비전 세계가 지금 모습을 고집하며 불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텔레비전 시리즈가 고유의 모습을 하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한 듯 하군요. 재미없다고요? 지금까지 나왔던 인터액티브 시리즈의 밋밋한 실험들과 인터넷 팬덤의 부글거리는 드라마들을 비교해보세요. 어느 게 더 재미있나요? (0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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