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신은 여우 Fox in Socks (1965)

2010.03.14 21:45

DJUNA 조회 수:7325

Dr. Seuss (글/그림)

[양말 신은 여우]는 가장 사랑 받는 닥터 수스 그림책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언젠가 우리나라말로 번역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사실 이 작품이 다른 나라말로 번역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합니다. 번역되면 책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게 되니까요.

[양말 신은 여우]는 제대로 된 줄거리가 없는 책입니다. 조금 얄미운 빨강 여우가 녹스라는 닥터 수스 풍의 괴물을 놀려댄다는 게 내용이라면 내용이겠지만, 그것도 일련의 시들을 열거하기 위한 핑계입니다.

여우가 열거하는 시야 말로 이 작품의 진짜 핵심입니다. 철저하게 부조리한 내용으로 범벅이 된 여우의 시는 독자들의 혀를 꽈배기처럼 비트는 걸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지요. 일부를 인용할테니 한 번 소리내서 읽어보세요.

Through three cheese trees 
three free fleas flew.
While these fleas flew,
freezy breeze blew.
Freezy breeze made
these three trees freeze.
Freezy trees made
these trees' cheese freeze.
That's what made these
three free fleas sneeze.

[양말 신은 여우]는 문학작품보다는 발성 훈련 테스트 북에 가깝습니다. 예술적인 측면을 살펴봐도 문학보다는 음악에 더 가깝고요. Fox, Socks, Box, Knox...와 같은 간단한 각운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복잡하고 정신나간 혀비틀기로 발전해가는 과정은 미치광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카덴짜 연주처럼 느껴집니다.

수스 박사의 단순하고 정감넘치는 그림도 책에 색다른 매력을 불어 넣습니다. 그는 순전히 운율만 따라가느라 부조리해진 시의 내용에 맞게 성실하게 그림을 그려넣는데, 그 때문에 시의 말도 안되는 느낌이 더 강조되는 것이죠.

하여간 신나는 책입니다. 읽다보면 독자들의 혀가 고무처럼 늘어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만요. 어른들도 그 모양인데, 이 책의 진짜 독자층인 5살박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겠어요. (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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