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하우스

2010.03.21 07:39

DJUNA 조회 수:2780

아, 오늘 [옥션 하우스]를 하지 않는군요. 무슨 야구 때문인가 봅니다. 정규 프로그램 두 개가 그것 때문에 날아갔고 남은 짜투리 시간엔 [달콤 살벌한 연인]이 들어가네요. 지금 최강희가 막 죽인 남자 시체를 담을 김치 냉장고를 샀습니다. 으윽, 식칼로 시체의 손가락을 자르네요.

이 틈을 이용해 [옥션 하우스]에 대해 몇 마디 하고 싶군요. 비교적 좋은 이야기로요. 얼마 전에 다른 매체에서 [옥션하우스]의 몇몇 연출에 대해 비꼬는 글을 썼기 때문에 그걸 만회하고 싶기고 하고. 그 이야기는 사실 [옥션 하우스]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었지요. 툭하면 클로즈업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멀게 만드는 [왕과 나]가 더 어울렸죠. 하지만 전 [왕과 나]는 채널 돌아가는 사이에 가끔만 보고 [옥션 하우스]는 매 회마다 봅니다. 잘 보는 시리즈를 예로 드는 건 당연하죠.

음, 하지만 [옥션 하우스]는 놀려대기 참 좋은 작품이긴 합니다. 연출자들이나 작가들이나 배우들이나, 모두 자기 능력 이상의 일을 벌이고 있어요. 배우들은 틈만 나면 잘 하지도 못하는 외국어와 과하게 폼 잡는 전문 용어들을 씹어대야 하고, 연출자들과 작가들은 역시 별로 해보지도 못한 액션 장면과 낯선 장르를 어색한 손으로 다루느라 진땀을 빼고요. 이들이 다루는 이야기들은 모두 심각할 정도로 흉내처럼 보이며 일관성 없이 삽입된 과장된 스타일은 종종 도를 넘어섭니다. 그 때문에 한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전 마구 그것들을 놀려대고 싶어요. 만든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전 과연 이 시리즈가 진지해질 필요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들이 정말 그런 진지함을 원했고 정말 심각하게 캐릭터들과 설정을 디자인했다고 해도요. [옥션 하우스]는 진지하지 않아요. 심지어 심각하게 캐릭터 파기를 시도했던 [언더비터의 가을] 에피소드에서도 그들이 그린 캐릭터들은 주체보다는 유희의 도구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거창한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만들어주어도 캐릭터들은 언제나 용도 전환가능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도구의 상태로 남아 있어요. 특히 언제나 밝고 씩씩하기만 한 주인공 연수와 괴짜 전문가라는 핑계로 거리낄 것 없이 뭐든지 하는 윤재는요.

그런데 전 그게 좋아요. 어차피 이들은 아주 세련된 ‘미드’ 스타일의 전문가 드라마를 만들 수가 없어요. 그럴만한 경험도 부족하고 테크닉도, 지식도 딸리죠. 지금은 배우고 익혀야 할 때이지 완성작을 낼 때가 아닙니다. 이럴 때는 신나게 노는 것만큼 좋은 교육과 경험은 없어요. 그리고 [옥션 하우스]에서는 만드는 사람들이 별다른 제약 없이 신나게 놀고 있는 게 보여요. 배우들은 최소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캐릭터의 얇은 껍질 안에서 뭐든지 하고, 작가들은 미스터리, 액션, 로맨스, 심지어 초자연적인 호러까지 멋대로 다루고 있지요. 이런 자유는 거의 [하이킥] 수준인데, 처음부터 시트콤인 [하이킥]보다 [옥션 하우스]가 더 도전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완성도와 상관없이 재미있기도 해요.

야구 때문에 한 주 늦추어졌지만 [옥션 하우스] 1시즌도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과연 이 시리즈가 계획대로 2시즌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전 정말 2시즌이 나오길 바라요. 하지만 그들이 자기만의 진지한 스타일을 찾아 성숙한 시리즈로 ‘정착’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지금 필사적으로 도식적인 멜로드라마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그 어떤 것에도 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 [옥션 하우스]가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모든 게임을 제공하는 하나의 커다란 놀이터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놀이터가 제대로 기능을 한다면 그를 통해 배운 사람들이 보다 성숙하고 보기도 그럴싸한 진짜 전문가 시리즈를 낼 수 있겠죠.

하지만 저를 제외한 다른 시청자들이 과연 그런 시리즈를 원하는지는 모르겠군요. (0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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