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아가야 청산가자 (2008)

2010.03.21 07:57

DJUNA 조회 수:4689

각본: 박영숙 연출: 이인홍 출연: 왕희지, 고정민, 조은숙, 안석환, 조양자, 박형재, 감소현

[아가야 청산가자]는 끔찍한 딜레마로 시작됩니다. 윤씨의 딸 연화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당 당골네 말이, 연화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린아이의 간을 먹이는 거랍니다. 당골네는 양갓집에 입양한다고 속여 가난한 김씨의 아기를 데려와 죽이고 그 와중에 뒤늦게 찾아온 김씨도 사고로 죽고 맙니다. 아기의 간을 먹은 연화는 완쾌되지만, 김씨의 원귀가 이승으로 돌아옵니다. 누가 더 미울까요? 자길 속이고 아길 죽인 당골네? 아니면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자기 아기 간으로 딸을 살려낸 윤씨?

이 모든 건 지극히 정통적인 [전설의 고향] 스타일입니다. 피끓는 모정, 샤머니즘, 조선시대 계급사회의 갈등과 같은 익숙한 주제들이 원한 품은 긴머리 여자귀신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죠. 1편 [구미호]처럼 야심적이지는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시청자들에겐 잘 먹힐 법한 작품입니다. 만드는 사람들에게나, 보는 사람들에게나 익숙한 게임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이 에피소드가 역사적 진공상태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무당과 굿에 대해 부정적인 유학자 한진사 캐릭터와 윤씨의 대립과 같은 것들은 조금 더 깊이 다루었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로서 [아가야 청산가자]는 [구미호]와는 달리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줍니다. 자신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복잡한 게임을 했던 [구미호]와는 달리 [아기야 청산가자]는 관객들을 반응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감정을 끌고 나와 정면에서 휘둘려대지요. 시청자들이 울컥하는 건 당연합니다. 단지 후반부는 지나치게 길고 다소 감상적인 에필로그는 바로 앞까지 진행된 드라마와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막판에 화해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여기서는 그 화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고 편리해요.

호러물의 테크닉적인 면에서 보면 가장 좋은 부분은 죽은 김씨가 처음으로 나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장면입니다. 특별히 과장된 특수 효과는 없지만 절실하고 소름끼치며 시적입니다. 하지만 김씨가 전통적인 긴머리 여자귀신으로 분장한 뒤에는 공포가 많이 죽습니다. 지나치게 관습적이라 오히려 뻣뻣해 보이고 귀신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요. 하지만 적당히 싸구려 냄새가 나고 유치한 이 느낌은 오히려 [전설의 고향]의 전통에 충실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몇몇 몰핑 장면 같은 건 없는 게 나을 것 같지만요. 원래 유령 이야기는 특수효과를 많이 쓸수록 분위기가 죽거든요. (08/08/13)

기타등등

김씨의 목에 난 정도의 상처로는 즉사할 수 없을 겁니다. 피가 좀 더 필요해요. KBS의 자체 검열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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