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환향녀 (2008)

2010.03.21 09:00

DJUNA 조회 수:4010

각본: 박영숙 연출: 이민홍 출연: 이진, 강성민, 정수영, 김홍표, 이지현, 진서연

[환향녀]는 박영숙/이민홍 콤비의 전작 [아가야 청산가자]와 함께 이번 [전설의 고향] 에피소드들 중 가장 전통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고전 소재의 리메이크인데[구미호]처럼 파격적인 해석은 피한 작품이지요.

이야기의 설정은 구미호 이야기들과 비슷합니다. 산 속 깊은 곳에 여자들만 모여사는 기방이 있는데, 그 기방에 들어간 양반 남자들은 모두 그 여자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합니다. 알고 봤더니 그 여자들은 구미호...가 아니라 고향에 돌아와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한 환향녀들의 원혼들이었던 거죠.

왜 이들이 남자들을 죽이느냐... 그게 좀 헛갈립니다. 각본은 끝까지 분명한 대답을 주지 않고 있어요. 주인공 수연과 올케 윤씨가 남자들을 죽여야 하는 건 수망초라는 독초를 먹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49일이 되기 전에 자신을 대신 할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영혼이 흩어져 구천을 떠돌게 되지요. 하지만 다른 여자들은? 다들 수망초를 먹은 걸까요? 그럴 리가요. 게다가 윤씨는 수연을 대신해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는 걸요. 그럼 윤씨와 수연만 사연이 있고 나머지 여자들은 그냥 양반 남자들을 죽이는 게 좋아서 죽였다? 그럴 수도 있고요. 하긴 저라도 그럴 테니.

이번에도 이야기는 불필요하게 복잡합니다. 이진이 연기한 수연은 그냥 가혹한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살한 게 아닙니다. 사악한 이복오빠 용수의 음모에 말려든 거죠. 그 때문에 같이 탈출했던 올케 윤씨도 같은 음모에 희생되어 죽고요. 그러다가 양반 남자들이 사라지는 사건을 해결하려고 암행어사가 된 수연의 남편 정율이 파견되는 거죠. 중간에 장황한 플래시백으로 수연의 과거를 늘어놓으며 이야기를 끊어놓기 때문에 그냥 산만해요.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에게 알리바이를 너무 많이 주고 있어요. 수연은 청나라에서도 '몸을 더럽히지' 않았고 기방에 들어온 뒤로도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애꿎은 윤씨가 대신해서 수연의 일까지 맡아서 하죠. (사극 역사상 가장 착한 올케가 아닐까 싶군요) 남자주인공 정율도 아내가 온갖 학대를 당하고 죽는 동안 편리하게 그 현장에서 물러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렇게 정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단지 정율의 마지막 행동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조선남자들 평균보다는 좀 낫습니다.

사방에서 피눈물이 터져나오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전 이 에피소드를 밍밍하게 봤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인 수연이 참 매력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지요. 양반 남자 죽이는 게 전문인 기방에 들어왔으면 열심히 남자들을 꼬셔 집으로 들어와 죽이는 게 일이잖아요. 싫다면 그냥 나가거나. 그런데 혼자 고고한 척 하면서 게으름을 피워요? 그렇다고 남자들이 안 죽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착한 올케 윤씨가 대신 죽여주니까요. 나중에 남편과 만났을 때도 참 한심해요. 수연은 착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유부단한 민폐 캐릭터예요.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모두가 피곤하죠.

드디어 8부작 시리즈가 끝났으니 이번 [전설의 고향]을 한 번 정리해보기로 하죠. 이번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도전정신이에요.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이전 시리즈에서는 하지 않았던 것을 하나 이상 하고 있지요. [구미호]처럼 역사의 디테일을 살리면서 한국 근대사에 대한 비판을 던지기도 하고, [귀서]처럼 궁중 야사와 추리물을 섞기도 했으며, [오구도령]에서처럼 현대 퇴마사 이야기를 이식하기도 했지요.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이 매서워지고 그것이 지금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도 지적할만 해요.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미진합니다. CG가 나쁘다기보다는 언제 CG를 써야할지 몰라요. 다들 야심이 커서 지나치게 많은 재료를 씹다가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무엇보다 HD 디지털 화면의 질감을 어떻게든 통제할 필요가 있어요. 이건 암만 봐도 [전설의 고향] 이미지가 아닙니다. 이전의 16밀리 (야외) 필름이 훨씬 그럴싸했어요.

이 시리즈에서 가장 이득을 본 사람들은? 소위 예쁜 귀신들을 연기한 여자배우들이 아니었나 싶군요. [구미호]의 박민영이야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이 시리즈의 진짜 깜짝 스타들은 송민지나 박하선, 한혜경과 같은 신인들이었어요. 너무 예뻐 공포 효과가 떨어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배부른 소리 같군요. 예쁜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냥 고맙게 봐줘야 하는 거예요. (08/09/03)

기타등등

전 이 시리즈가 (꼭 매년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납량특집으로 제작되길 바라지만, 그게 가능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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