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미스터리는 논리적인가?

2010.01.31 18:21

DJUNA 조회 수:2264

1.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퍼즐 미스터리가 철저한 논리 덩어리라는 거죠. 마치 수학 문제와도 같아서 공식만 잘 따라하면 누구나 범인을 맞힐 수 있다, 못 맞춘 사람은 성의없이 읽었거나 아니면 머리가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거죠.

과연 그럴까? 미안하지만 단편에서라면 몰라도 장편에서는 아니라고 하고 싶네요. 저 역시 퍼즐 미스터리를 읽을 때는 종이와 연필을 준비하고 일일히 알리바이를 검토하며 읽어가는 타입이고 그런 식을 통해 범인을 맞춘 적도 꽤 많으니, 못 맞추는 사람의 시기심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엘러리 퀸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 친구( 앞으로 3인칭 단수를 쓰겠습니다. 저도 엘러리 퀸이 두 사람이란 것 정도는 알지만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게 낫겠군요)는 앞에 자기가 제시한 증거들만 모조리 따라가면 누구나 진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솔직히 엘러리 퀸은 좀 건방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툭하면 논리적 실수를 저지르는 주제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죠.그가 한 말이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은 퍼즐 미스터리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연구한 사람이라면 다 압니다.

왜 엘러리 퀸의 소설이 '모든 독자들에게' 공정하지 않은지 설명하겠습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퍼즐 미스터리에 대한 모든 오해를 풀 수 있는 문제니까요. 엘러리 퀸의 소설은 퍼즐 미스터리가 가질 수 있는 단점들을 모조리 가지고 있으므로 분석하기가 매우 용이합니다.

엘러리 퀸의 미스터리 소설의 논리를 지배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소거법이죠. 모든 있을 수 없는 요소들을 다 제거하면 진상만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하긴 이건 셜록 홈즈 때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죠.

뭐가 잘못되었냐고요? 말씀드리죠.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일곱 마리 검은 고양이의 모험]을 예로 들까요? 거기서 엘러리는 왜 실종된 할머니가 고양이를 일주일마다 한 마리씩 샀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가능성을 다 열거하면서 하나씩 제거하죠. 그런데 그가 그러는 중간에 커리 양이 끼어듭니다. "가죽을 벗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아하! 엘러리 퀸은 미처 그 생각을 못했네요! 우리의 탐정은 말도 안된다고 말하면서 그 가능성을 지우는데, 결국 드러난 진상은 그것 만큼 말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밖에 엘러리가 제거한 것들 중 몇몇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논리적으로 제거된 것들이 아니라 엘러리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제거된 것들입니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에서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요? 엘러리는, 범인이 상표가 없는 불투명한 옥도정기병에 든 옥도정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범인이 그 물건들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의 약품병들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 많은 경우 우리는 그 병 안에 무슨 약이 들어 있는지 그냥 알 수가 있죠. 주변에 상표가 붙어있는 멀쩡한 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지만, 바로 옆에 있는 물건을 찾지 못해서 헤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별로 타당한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아실 거예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 키보드 바로 옆에 놓여있는 물건을 찾아 온 방 안을 헤맸는 걸요.

그렇다면 엘러리의 추리가 타당하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점을 잘 기억해 두십시오. 나중에 한 번 더 써먹을 테니까요.

다시 한 번 정리해봅시다. 왜 우리들은 찌꺼기 생각들을 모두 제거해서 단 하나의 진상만을 얻을 수 없을까요? 첫째, 작가나 독자나 그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낼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 그 가능성들 중 단 하나만을 남기고 제거할 만큼 우리에게 많은 데이터가 주어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흠, 마땅히 반론이 제기되어야 합니다. 이건 실제의 인생이 아니라 소설이지 않은가? 그것도 고도로 정제된 상황이 제시되어지는 소설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것들만 잘 따라가면 사건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다 얻을 수가 있지 않을까?

매우 타당한 생각이군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추리 작가들의 대부분이 그 데이터를 다 주지 않고 있으니까요. 위에 예를 든 엘러리 퀸의 예들을 보십시오. 그건 백 퍼센트 완벽한 논리가 아니라 꽤 그럴 듯한 생각들입니다. 그럴 듯하기 때문에 범인이 드러나도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백 퍼센트 완벽한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허점은 있습니다. 엘러리 퀸의 아무 소설이나 꺼내서 한 번 다른 결말을 만들어 보세요. 놀랍게도 가능합니다. 특히 엘러리 퀸처럼 물적증거에만 매달리는 유물론자의 소설은 특히 쉽지요. 물론 꽤 어처구니없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원래 퍼즐 미스터리의 상황들이란 게 어처구니 없잖아요?

그렇다면 엘러리 퀸은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보너스를 다 제공하지 못한 셈이군요. 소비자 보호 센터에 고발해야겠습니다.

2.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의 진상을 거의 완벽하게 규명하고 의기 양양해있는 과거의 제가 항의를 하는군요. "그건 탁상공론이 아니니? 머리를 쓰면 진상을 알 수 있는 거 아냐? 무엇하러 그런 원론에 신경을 쓰니?"

답을 해야죠. 엘러리 퀸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탐정이 논리적인 방법을 엄격하게 사용해서 사건을 해결한다고 믿었던 거죠. 그런데 미안하군요.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체스터튼의 소설을 좀 더 잘 읽었다면 알았을 겁니다.

체스터튼의 [이즈레일 가우의 명예]을 읽어보신 적 있습니까? 브라운 신부는 거기서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일련의 물적 증거들과 마주칩니다. 경찰과 프랑보우가 쩔쩔매고 있는데, 우리의 신부님은 거기서 그럴 듯한 세 가지 가능성을 추론해내죠. 그래놓고 하는 소리가 중요합니다. "내가 지금과 같은 말을 한 것은 당신이 아무도 코담배와 시계, 그리고 양초와 보석을 납득할 수 있도록 연결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엉터리로 이야기하는 열 사람의 철학자들의 말도 우주에 꼭 들어맞습니다. 열 가지 엉터리 말도 그렌가일 성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있지요. 그런데 또 다른 증거품은 없습니까?"

기회만 주었다면 신부님은 스무 가지 정도 더 쓸만한 생각을 해냈을 겁니다.

우리들의 명탐정들이 하는 짓이 바로 이런 겁니다. 주어진 다양한 증거들을 손 안에 쥐고 어떻게 하면 이게 연결이 될까 고민하는 것이죠. 반 다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벤슨 살인사건]에서 파일로 번스는 매컴에게 가정부를 범인으로 만든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제시하죠. 그건 정말 그럴싸해 보입니다. 크리스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프와로가 무슨 논리적인 추론을 해서 범인을 해결하는 지 아십니까? 그는 증거들을 앞에 놓고 고민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증거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형성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이는 로르샤하 실험만큼이나 주관적입니다. 이게 코끼리로 보이는가 나비로 보이는가는 순전히 탐정 마음에 달린 거죠. 어느 게 더 그럴싸하게 보이는가가 진상에 이르는 길이지, 논리는...미안하지만 아닙니다.

그렇다면 탐정에게 필요한 것은 논리학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지식일 것입니다. 에르큘 프와로, 미스 마플과 파일로 번스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요.그렇다면 공정한 작가들이 해야할 일은 그럴싸한 논리적 그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인물들이 인간답게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러리 퀸은 반 다인이나 크리스티, 심지어 더실 해미트에 비해서도 그다지 공정한 작가가 아닙니다. 소거법에만 골치를 썩힌 탓 인지 그의 인물묘사는 엉망이니까요.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이런 동기로 살인을 할 수 있었단 말이지?'란 말을 수없이 하게 만드는 작가니 정말 어쩔 수 없죠. 불완전한 논리를 보충하기 위해 완충적인 묘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엘러리 퀸의 소설이 언제나 헐거운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과거의 제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퍼즐 미스터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논리적인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죠. 원론을 따진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3.

아, 정말 지금이 1930년대였으면 좋겠군요. 그때는 정말 이런 논쟁이 의미가 있었던 때였습니다. 퍼즐 미스터리의 독자들이 많았으니까요. 퍼즐 미스터리 속의 추상적 그물을 푸는데 순수한 만족을 느꼈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도 말했지만, 지금의 추리 소설들은 타락했습니다. 그와 함께 독자들도 타락했죠. 퍼즐 미스터리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와 함께 퍼즐 미스터리의 독자들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독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어떤 식으로 퍼즐 미스터리가 받아들여졌는지를 알아보려면 말입니다.

제임스 더버가 [알 수 없는 맥베드의 살인범]에 등장시킨 매력적인 중년 미국 여성이 아마 가장 소박한 퍼즐 미스터리 독자일 것입니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 범인을 추정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도망가는 사람은 범인이 아닙니다,그러므로 두 왕자들은 제외. 살인범은 항상 소설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나와야 해요, 그러므로 암살범들은 제외. 부부는 언제나 서로를 위해 범인인 척 합니다. 그러므로 맥베드 부부는 제외... " 아, 미스 마플, 당신의 수제자가 여기있습니다! 단지 마플이 실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미국 여성은 추리작가들의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게 유일한 차이죠. 하지만 추리소설의 범인을 맞추는 데는 우리의 존경할 만한 미국 부인이 훨씬 쓸모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러리 퀸이 그녀를 보았다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겠군요. "난 그런 식으로 대충 뜅겨 맞추라고 소설을 쓴 것이 아니오!" 그리고 자신의 팬 클럽 회원을 몇몇 데리고 와 이들이 어떻게 범인을 맞추는지 보라고 말했을 겁니다.

그러나 엘러리 퀸의 가장 헌신적인 독자도 알고보면 엘러리 퀸이 바라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잘 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들은 그럴 듯한 분석결과를 제출할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엘러리 퀸에 자신의 사고를 맞추고 있을테니까요. [도둑맞은 편지]의 홀짝놀이 챔피언처럼 말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범인을 맞추기가 힘들거든요.

저도 그렇답니다. 퍼즐 미스터리의 범인을 맞힐 때 전 어떻게 하는 지 아세요? 엘러리 퀸을 읽을 때는 동기와 성격, 상황의 일관성은 완전히 무시하고 엘러리가 제출한 제 1 차 물적증거에만 집착합니다. 크리스티의 경우, 프와로가 "사람들을 불러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했을 때 책을 덮고는 제시된 증거들이 이루는 모습 중 가장 그럴싸한 것이 어떤 것인지 골라냅니다. 딕슨 카의 소설을 읽은 때는 펠 박사의 요란한 농담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반 다인의 경우는 ... 이 사람이 가장 쉽죠. 가장 범인같은 친구 하나를 골라 그 사람에게 증거들을 끼워 맞추면 되니까. 이런 식으로 해서 각 작가들이 가장 선호할 것 같은 결말을 찾은 다음 거기에 논리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것. 이게 제가 하는 방법입니다. 또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결국 퍼즐 미스터리의 독자들은 작가의 취향과 싸우는 겁니다.

그렇다면 애당초부터 퍼즐 미스터리에 논리정연한 사고전개로 미스터리를 푸는 행위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로군요. 하긴 인간이란 원래 그런 동물이 아니죠.

언젠가 누군가가 퍼즐 미스터리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20세기의 과학사가들이 과학의 발전 과정이 그렇게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처럼, 우리가 만들어낸 가공의 사가도 퍼즐 미스터리의 해결 과정이 그다지 이성적인 것이 아님을 밝혀내겠죠. 그렇다면 그 작은 책은 이성에 대한 직감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또다른 증거로서 학문의 전당 안에 보존될 것이고, 왜 요즘 추리소설이 문학으로 도피하며 체면을 유지하려는지를 설명하는 유용한 단서가 될 것입니다. (94/02/1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