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2010.03.14 21:47

DJUNA 조회 수:2048

종종 저는 에드가 앨런 포우의 아내가 되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린 아이에서 간신히 벗어난 나이에 친척 오빠에게 시집 와서 한참 호르몬이 끓고 꿈도 컸을 틴에이저 시절을 난방도 제대로 되지않는 방 안에서 고양이를 끌어안고 추위를 견디다 20대 초반에 병으로 죽었으니, 결코 꿈꾸고 싶은 삶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포우의 어린 아내 버지니아 클램을 기억합니다. 진짜 버지니아 클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포우가 그의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끝도 없이 많은 시와 단편들에서 아내의 흔적을 각인시켰습니다. 그의 시와 소설에 한없이 등장하는 요절한 여자 주인공들을 떠올려보세요. 심지어 아내가 죽기도 전에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런 작품들을 써댔으니 아마 포우도 버지니아 클램의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로맨틱하게 들릴지도 모르고, 또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상당히 로맨틱한 인생 경험으로 느껴졌겠지만, 사실 포우는 매우 가차없고 실리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가 생산에 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은 문학 작품들이었는데, 그걸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로맨틱한 시인이었던 그는 옆에서 고양이를 안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틴에이저 소녀에게서 그 재료를 찾았습니다. 한마디로 버지니아 클램은 문학작품이라는 빵을 만들기 위해 포우가 준비한 밀가루였던 셈입니다.

물론 로맨틱한 시인들은 이보다 고상한 표현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재료용 사람들을 뮤즈라고 부릅니다.

뮤즈의 어원은 바람둥이 주신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 태어난 9명의 '무사 Musa'라는 그리스 여신들에서 유래합니다. 보통 떼로 몰려다니기 때문에 Musa라는 단수보다는 Musai라는 복수로 쓰일 때가 많죠. 이들은 학예의 신으로 예전에는 천문학이나 역사까지 꽤 넓은 범위를 관장했습니다.

왜 그리스 사람들은 이들을 만들었을까요?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들 역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멋대로 덧붙인 도구들이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에게 창작 행위라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게 느껴졌을지 생각해보세요. 특히 예상도 하지 못했던 순간에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은 얼마나 기적적으로 느껴졌을까요? 무사이 여신들은 마치 외부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많은 그리스 신의 이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역시 영어 단어 뮤즈로 옮겨가면서 살짝 변질이 되었습니다. 이제 뮤즈는 창작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창작자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뮤즈들을 알고 있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그런 주고 받음의 관계를 애정표현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숨기지 않고 동네방네 떠들어대거든요. 그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후대의 수다스러운 전기 작가들이 다 밝혀주기 마련이고요.

누구를 먼저 예로 들면 좋을까요? 요새 같으면 페도파일 스토커로 감옥에 들어갔을 게 뻔한 단테와 그의 뮤즈 베아트리체가 있습니다. 비슷한 부류지만 비교적 얌전했던 루이스 캐롤과 앨리스 리델은 어떨까요? 빅토르 위고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줄리엣 드루에한테서 [레 미제라블]의 코제트 이미지를 훔쳐왔습니다.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라파엘 전파 예술가들의 공식 뮤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들 여자들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 지난 몇 천 년 동안 창작 행위는 남자들에 의해 독점되어왔습니다. 둘. 남자들은 그런 뮤즈 역할을 그렇게까지 잘하지 못합니다. 문화적 관성 때문인지, 아니면 여성적 이미지에 뮤즈의 역할이 내재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종종 뮤즈들은 여성 창작자들에게도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아까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이야기를 했는데, 오빠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와 오빠의 친구들이 크리스티나의 병약한 아름다움에서 로맨틱한 환영을 읽는 동안, 로제티 자신은 자기처럼 병약하고 로맨틱한 여자들의 죽음에 관한 시를 썼습니다. 로제티 시 어딜 봐도 영감을 준 남자 따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자급자족의 효율적인 생산체계를 이룩한 셈이죠. 다른 작가들도 이런 방식을 익혔다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귀찮은 시인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편하게 살았을까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메이 사튼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그 사람이 쓴 소설인 [스티븐스 부인은 인어의 노래를 듣는다]는 평생 여자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여성 문학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사튼은 동성애 경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이 점은 고려해야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무시할 만한 경향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뮤즈는 여자들의 독점물일까요? 그럴 리가요. 이런 걸 지나치게 일반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이성애자 남자들의 문화 독점에 의한 결과니까요. 아이작 디네센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쓰기 위해서는 데니스 핀치 해튼의 존재가 필요했을 겁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언젠가 책에서 데니스 핀치 해튼의 사진을 보고 무지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판의 로버트 레드포드와는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던 거예요. 그는 그냥 평범한 대머리 아저씨였어요.) 결정적으로 지금도 인터넷 어디에서 끝도 없이 호모에로틱한 팬픽을 올리고 있을 HOT 팬픽 작가들에게 HOT는 뮤즈가 분명합니다.

언제나 예술가들이 이런 식으로 남의 이미지를 울궈먹는 일이 없어질까요? 작가는 아이디어를 얻어서 좋고 뮤즈는 명성과 이미지를 떨치니까 좋은 게 아니냐고요? 결코 좋기만 한 일이 아닙니다. 종종 예술가들은 흡혈귀처럼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쥐어짜 진액을 마십니다. 한스 베르너 헨쩨의 오페라 [젊은 연인들을 위한 비가]를 보면 미친 여자를 바라보며 영감을 얻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완쾌하자, 옆에서 잘나가는 커플을 질투해 그들을 일부러 죽게 방치한 뒤 그들을 위한 시를 쓰는 시인이 나옵니다. 이 오페라의 대본을 쓴 사람은 시인 W.H. 오든이었으니, 아마 그 사람도 자신에게 이렇게 고약한 증상이 있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죠.

제가 아무리 뮤즈의 인권을 부르짖고, 예술 행위의 방식이 변해도 예술가와 뮤즈의 고약한 관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과거 사람들의 인권보다는 과거 예술가들의 작품에 더 관대하기 때문이죠. 죽은 사람이야 그것으로 끝이지만 잘 만들어진 예술 작품은 영원하며...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훨씬 유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인권을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짓입니다. (0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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