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Alfred Hitchcock 출연: Barbara Bel Geddes, Allan Lane, Harold J. Stone, Otto Waldis, Ken Clarke, Thomas Wild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은 가장 유명한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 에피소드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최대 공로자가 감독인 알프레드 히치콕이라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히치콕의 터치가 느껴지긴 하지만 직접 각색에 참여한 로알드 달의 개성이 더 강하거든요.

영화는 한마디로 완전범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혼을 요구하는 경관 남편을 홧김에 죽여버린 임산부가 그 범죄를 커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요. 어떻게 했냐고요? 주인공은 요리하려고 냉동실에서 막 꺼낸 얼린 양뒷다리로 남편을 때려죽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요리해서 수사하러 온 형사들에게 밤참으로 먹이지요.

단순하지만 은근히 다루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독자나 시청자를 깜짝 놀래키는 엄청난 반전이 아니에요. 대부분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요. 이야기가 노리는 건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독특한 향취의 유머입니다.

거의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로알드 달의 단편과 히치콕의 에피소드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할 수는 없어요. 원작과 각색물 모두 매체에 충실했을 뿐이니까요.

일단 형식의 차이입니다. 히치콕의 단편은 에피소드 앞뒤와 중간에 광고가 들어가는 20여분 짜리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광고 때문에 이야기가 중간에 끊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조절할 수밖에 없죠. 그 때문에 각색물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후반부가 원작보다 조금 더 깁니다. 짧은 이야기를 살짝 늘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다른 하나는 서스펜스의 강화입니다. 달의 원작은 서스펜스를 그렇게까지 강조한 편은 아닙니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긴 했지만, 주인공 메리는 굉장히 노련한 범죄자예요. 범행도 단순해서 특별히 감출 것도 없고요. 그냥 대담하고 냉정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기만 해도 성공하는 범죄고요. 한마디로 들통날 위험이 별로 없는 겁니다. 하지만 히치콕 버전에서 주인공은 더 불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주인공은 현장을 필요 이상으로 조작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원작에서보다 덜 살갑게 굴고 더 똑똑한 형사들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채지요. 비교적 편안하게 원작을 읽었던 독자들도 히치콕 버전을 볼 때는 약간 긴장하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형사가 흉기의 정체를 알아차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지요.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완전범죄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히치콕은 이야기가 끝나자 메리가 두 번째 남편에게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려다 실패했다고 에필로그를 답니다. 그럴싸한 농담을 첨가하긴 했지만, 자기 자신도 조금 짜증이 났을 거예요. (07/11/29)

기타등등

1. 이 에피소드는 바바라 벨 게데스가 조연으로 출연한 [현기증]이 개봉되기 한 달 전쯤에 방영되었습니다. 벨 게데스는 총 네 편의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에 출연했고 이 작품은 이보다 한 달 전에 방영된 [Foghorn]에 이은 두 번째 작품입니다.

2. 말없이 앉아있는 살인범의 무표정한 얼굴로 클로즈업해 들어가는 라스트신은 [싸이코]의 전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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