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 산부인과 (1998-2000)

2010.03.06 22:32

DJUNA 조회 수:4123

출연: 오지명, 선우용녀, 박미선, 박영규, 이태란, 김소연, 송혜교, 김성은, 권오중, 김찬우, 김성민, 이창훈, 이민호, 장정희, 허영란, 표인봉, 송선미

1.

미국식 시트콤이 한국에 유입되어 실험되기 시작한 것도 거의 10년이 넘어갑니다. 아니, 더 되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 기억엔 본격적으로 '시트콤'이라는 형식을 대문짝에 내건 작품은 [순풍 산부인과]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박사네 사람들]입니다.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봤던 것으로 기억해요. 요새처럼 케이블 재방이 보편화되었었다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 뒤 수많은 시리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떤 것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고, 어떤 것들은 [LA 아리랑], [남자 셋 여자 셋]처럼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작품들도 [순풍 산부인과]만큼의 질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요. 웬만큼 경험이 붙었을 요새만 해도 [순풍 산부인과]만큼 성공적인 작품은 없습니다.

2.

[순풍 산부인과]가 이렇게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순풍 산부인과]의 기본 설정에는 창의적인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몇 년 전에 했던 [오박사네 사람들]의 재주를 다시 한 번 부린 것에 불과하죠. 의사 집안 사람들이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이방저방을 오가며 다양한 해프닝을 벌인다는 것 말입니다.

몇몇 분석들이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주장은 [순풍 산부인과]가 해프닝 위주가 아닌 캐릭터 중심 코미디이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남자 셋 여자 셋]이나 [행진], [점프] 역시 캐릭터 중심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모든 시트콤은 캐릭터 중심일 수밖에 없죠. 그게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특성입니다. 고정된 캐릭터들의 충돌과 결합으로 해프닝을 창출해내는 것 말입니다. [순풍 산부인과]의 캐릭터들은 [점프]보다 훨씬 잘 짜여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시트콤들과 구별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때문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더 잘 만들었다는 소리를 다른 식으로 한 것에 불과하죠.

입으로 하는 코미디와 슬랩스틱의 결합이 성공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풍 산부인과]의 슬랩스틱이 그렇게 튀지는 않습니다.

모든 연령의 시청자들을 끌어안는 다양한 연령의 캐릭터들과 넓은 소재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비슷한 표적의 '가족 코미디'를 시도했던 초창기 [점프]는 왜 그렇게 맥을 못추었던 걸까요?

3.

[순풍 산부인과] 제작팀도 자기네 성공의 비밀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최근에 방영된 '파견근무' 에피소드는 그렇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선 다른 병원에서 순풍 산부인과로 파견된 의사가 [순풍 산부인과]의 캐릭터들을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의 결론은? '순풍 산부인과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다.' '내 평생 이런 사람들은 첨 봤다.'

그러나 그 의사의 논리와 근거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는 오원장의 성급함에 대해 놀랐고, 박영규의 눈치없음과 뻔뻔스러움에 놀랐으며, 선우용녀의 노골적인 아줌마 근성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것들이 '이상한' 것들입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우리 주변엔 박영규나 오원장처럼 성급하고 뻔뻔스러운 아저씨들과 선우용녀와 같은 주책바가지 아줌마들로 부글거립니다. 순풍 산부인과 사람들보다 덜 재미있고 덜 노골적이지만, 그들은 아주 흔한 부류입니다. 오히려 방귀 한 번 뀌지 않는 것처럼 내숭을 떨고 있던 그 의사네 가족이 더 드문 부류입니다.

그렇다면 그 의사 선생의 진단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순풍 산부인과 제작팀들이 자신들의 창조물에 대해 가진 생각이라면 그들 역시 틀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의사 선생의 잘못된 진단에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순풍 산부인과의 캐릭터들이 성공한 이유는 그들이 이상하고 유달리 개성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지요.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단지 그 평범한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움이 더 잘 드러나게 과장되었을 뿐이지요.

유머라는 것은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스꽝스러움을 위해서는 '현실'이라는 기반이 필수적이지요. [순풍 산부인과]의 코미디가 성공한 것은 바로 그 제대로 된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많은 코미디 작가들은 이런 사실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점프]에는 고수라는 괴짜 캐릭터가 있습니다. 군대도 아닌데 기상과 취침 나팔을 불어대고 전통 문화에만 몰두하는 대학생이지요. 고수의 이러한 특이한 성격은 희극적인 효과를 위해 삽입된 것이지만 박미선의 일상적인 수다 한 번 만큼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그건 고수가 허공에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캐릭터이며 여기엔 어떤 희극적 변형도 없습니다. [점프]의 작가들이 그가 웃기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가 보통 사람들과 아주 다르기 때문인데, 이런 코미디는 야비하기만 할 뿐 진짜 웃음을 끌어낼 수 없습니다.

[순풍 산부인과]에는 [점프]에는 없는 진짜 기반이 있습니다. 아까 뻔한 이야기라고 몰아붙였지만 [순풍 산부인과]가 캐릭터 중심이라는 것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단지 세부 사항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순풍 산부인과]의 캐릭터들은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좋은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삶에 직접 닿아있기 때문에 좋은 코미디를 만들어냅니다.

[순풍 산부인과]가 만들어내는 코미디는 우스꽝스러운 가상의 타자를 만들어 때려잡는 대신 우리 자신과 이웃의 모습에서 웃음을 찾아냅니다. 우린 박영규가 잔돈푼을 아끼려고 해대는 거창한 모험들을 보며 웃지만, 과연 우리들에겐 그런 모습이 없습니까? 우리는 미달이의 깡패짓을 보며 웃지만 우리 주변에 과연 그런 아이들이 없습니까?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순풍 산부인과]라는 코미디가 우리가 미처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들의 (또는 우리의) 희극적인 요소들을 끄집어 내기 때문에 웃습니다.

그 웃음은 [점프]나 [남자 셋 여자 셋]의 왕따형 웃음과는 달리 상당히 입체적입니다. 발견의 쾌락이 있고 공감이 있으며 복잡한 형태의 자기성찰까지 포함하고 있지요. 보통 우리는 '일상을 잘 살렸다'라는 평범한 말로 이 복잡미묘한 덩어리를 설명하려고 합니다만.

'독창적인 아이디어' 역시 같은 기반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순풍 산부인과]가 400편이 넘어가는 엄청난 분량을 때렸으면서도 아직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그렇게 많이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작가진이 아이디어 용 우물을 제대로 된 곳에서 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코미디형 플롯을 허공에서 만들어내는 대신 일상을 팝니다.

작은 것을 터무니없이 부풀리는 트릭은 [순풍 산부인과]만의 코미디 무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순풍 산부인과]는 올바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무작정 작은 것을 부풀리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작다고 여기지만 막상 닥치면 상당히 신경 쓰는 것들을 골라서 부풀려야 하는 거죠. 여기에도 나름대로 진실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로 신경쓰는 것들은 파괴된 오존층이나 부패한 정부같이 큰 것들이 아니라 점심값 떼어먹고 달아난 친구나 숙제하기 싫어하는 아이와 같이 작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에는 나름대로의 심각성이 있고 테크닉이 있으며 원칙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정확하게 확대한다면 그 웃음은 훨씬 입체적이 됩니다. 그리고 만들어내기도 쉽지요. 우리 주변에 걸리적 거리는 이런 작은 요소들은 무척 많기 때문입니다.

4.

[순풍 산부인과]는 한국식 가족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꽤 시야가 넓은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가 성의 고착화를 하고 있다거나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그건 '한국식 가족 코미디' 일반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으로는 먹힐지 몰라도 [순풍 산부인과]라는 개별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잘 맞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연출자의 의도가 어떻건, 이 시리즈가 품고 있는 가족상은 순진한 가부장제 옹호라고 간단히 넘기기엔 상당히 넓습니다. 현존하는 가부장적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순풍 산부인과]는 이런 가족의 꽤 다양한 역학관계를 보여줍니다. 무정부적 소동이 가부장의 권위 속에서 해결되는 에피소드는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작가진이 한참 정치 패러디에 재미를 붙였을 때, 오원장은 우리가 이미 지나친 옛 정치 독재자들의 상징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사나 휴가지 선택과 같은 가족 문제들 역시 미묘한 정치적 알력 속에서 벌어지지, 누구가의 손에 전권이 넘어가는 일은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헐랭이 오원장은 우리네 아버지 상을 당의없이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인물입니다. 그는 '독재적'이 될만큼 능력있거나 폭력적이지도 않고 '이상적인 가부장'이 될만큼 자상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우리는 그를 마구 다루면서 우리네 가족에 대해 상당히 많은 걸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풍 산부인과]는 비전형적인 가족 역시 상당한 무게로 다루고 있습니다. 엄마 없이 남자 둘이 남자 아이를 키우는 의찬이네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때문에 [순풍 산부인과]가 게이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확신은 못하겠군요.) 아내가 연상인 김 간호사와 표 간호사 커플 역시 한국 가부장제의 파워 게임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두 가족을 다루는 방식에 편견이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개입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정주부형인 오중이나 '연약한' 남자인 표 간호사를 종종 놀려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들이 부정적으로만 다루어지고 있는 걸까요?

5.

[순풍 산부인과]는 2년을 거쳐 오면서 꽤 많은 변화를 치렀습니다. 캐스트의 상당수가 교체되었고 그 때문에 인물의 역학 관계가 위태로워지기도 했지요. 소연과 찬우가 미국으로 떠났을 때는 애써 쌓아놓은 연애담들이 박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순풍 산부인과]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캐스트 교체의 결과는 대부분 상당히 긍정적이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내숭의 극치였던 소연보다야 털털하고 뜻밖에 맹한 구석도 있는 태란이 이 시리즈에 더 잘 맞지요. 송선미를 대신해 들어온 허영란도 전임자를 능가하는 막강한 개성을 과시했습니다. 심지어 꽤 염려가 되던 이창훈도 상당히 매끄럽게 시리즈에 합류한 편입니다.

시리즈의 질 역시 이런 부침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다소 진부했던 초창기에 비해 작가진들은 더 창의적이 되었으며 코미디 도구들을 활용하는 데도 더 능숙해졌습니다. 소재도 다양해졌고 테크닉의 폭도 넓어졌고요.

앞으로 얼마 동안 이 시리즈에 운이 따라줄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순풍 산부인과]가 흥미진진한 연구대상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 시리즈의 성공 비결에서 진짜 알맹이를 뽑아내어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코미디 장르는 상당한 질적 도약을 이룩할 수 있을 겁니다. (99/12/24)

기타등등

요샌 [순풍 산부인과]를 자그만치 세 방송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SBS에서 본 방송을 하고 있고, 드라마넷에서 캐스트 교체 이전의 옛 프로그램을 재방송하고 있으며, GTV에서는 교체 이후 분의 프로그램을 두 편씩 재방송하고 있지요. 마음만 먹으면 우린 하루에 [순풍 산부인과]를 두 시간이나 볼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한 프로그램에 집중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이라고 봐야겠죠. 우리의 문화적 기억상실증을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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