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윙 The West Wing (1999 - 2006)

2010.03.16 23:46

DJUNA 조회 수:2743

출연: John Spencer, Bradley Whitford, Richard Schiff, Allison Janney, Rob Lowe, Moira Kelly, Elisabeth Moss, Stockard Channing, Dule Hill, Martin Sheen

1.

정치판을 무대로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쉽습니다. 그만큼 소재가 철철 넘쳐 흐르는 곳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소재를 텔레비전 시리즈로 끌어 오는 건 어떨까요? 이 행성에서 가장 힘센 나라의 최고 권력자와 그의 스탭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드라마 소재가 아닐까요?

최고 권력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텔레비전물은 상당히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훌륭한 영국 텔레비전 코미디인 [Yes, Minister!]의 후반 시리즈인 [Yes, Prime Minister!]겠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숫자만 바꾸며 계속 이어진 [제... 공화국] 시리즈들이 있었고요. 얼마 전에는 부시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That's My Bush!]라는 코미디 시리즈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실화물이나 코미디는 비교적 다루기 쉽습니다. 실화물은 역사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고, 코미디는 사실적인 묘사가 필수적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가상의 등장인물들을 내세운 진지한 드라마는 사정이 다릅니다. 최고권력자는 나라의 모습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특히 미국과 같은 나라는 세상을 바꾼다고도 할 수 있죠. (부시 정권 이후 세상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보세요.) 우리 세계와 대충 호흡을 맞추면서도 자기만의 스토리를 끌어가야하는 드라마는 생각보다 만들기 힘듭니다. 단순한 아이디어였지만 꽤 용기있는 시도이기도 했던 것이죠.

2.

[웨스트 윙]의 주인공들은 제드 바틀렛이라는 경제학 교수 출신의 민주당 대통령과 그의 백악관 스탭들입니다. 기본적인 시리즈 성격은 이 시리즈의 공동 제작자인 존 웰즈가 역시 공동 제작을 하고 있는 [ER]과 같습니다. 신경 말리는 직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직업상 다양한 극적 사건들에 말려들며 만들어내는 앙상블 드라마인 거죠. 여기엔 크리에이터인 아론 소킨의 개성도 녹아 있습니다. 전에 그는 [대통령의 연인]이라는 비슷한 성격의 영화 각본을 쓴 적 있으니까요.

드라마로서 [웨스트 윙]은 꽤 높은 수준입니다. 웰즈가 [ER]을 꾸려가며 익혔던 앙상블 드라마의 감각과 아론 소킨의 대사 구사력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결과가 아닐까 싶군요. 마틴 쉰에서 앨리슨 재니에 이르는 주연 배우들 역시 자기 역할을 하고 있고요.

꽤 적극적인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대통령과 백악관을 다룬 다른 할리우드 작품들과는 달리 이 시리즈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매주 적절한 정치적 소재를 끄집어내 이슈화시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러나 [웨스트 윙]은 그렇게까지 깊이있는 시리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훨씬 작은 세계를 다루고 있는 [ER]과 비교해도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가벼운 느낌의 일부는 의식적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국내/국제 정세가 아니라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이 시리즈에서는 그들의 사생활 역시 국제 정세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들이 평범한 사생활의 고민을 안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죠.

그러나 그렇게 보더라도 [웨스트 윙]은 가볍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냥 호감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케리 위버가 없는 1시즌 [ER]을 연상시켜요. 덕택에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은 [ER]에 비해 훨씬 약합니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시리즈 설정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워싱턴의 정치가들이 시리즈의 웨스트 윙 스탭들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모두 그들보다 복잡하고 도덕적으로도 모호한 사람들이겠지요. 그게 정치판이고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까요.

덕택에 이들이 묘사하는 워싱턴 정계의 역학 관계는 무척 단순해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바틀렛 스탭은 '좋은 편'이고 그들과 대립하는 모든 사람들(주로 공화당입니다)은 '잘못된 편'입니다. 물론 세상 일이 그렇게까지 단순할 수만은 없어서 바틀렛 스탭들도 딜레마에 빠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에피소드가 끝나면 쉽게 잊혀집니다. 국내 문제건 국제 문제건, 이들의 두목인 바틀렛 대통령의 가부장적 권위 아래에서 대부분이 해결되거든요.

결국 [웨스트 윙]은 어느 선부터 아론 소킨이 소속되어 있는 할리우드 민주당원들의 정치적 선전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웨스트 윙]은 할리우드 민주당원들이 자기네들만의 백악관을 짓고 하는 소꿉놀이인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저같은 외국인 시청자들은 쉽게 냉소적이 됩니다. 인도 파키스탄 문제가 시리즈에서처럼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오죽 좋겠습니까?

[웨스트 윙]은 잘 만든 시리즈지만 드라마의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한 작품은 아닙니다. 결국 만든 사람들의 한계겠지요.

3.

앞으로 [웨스트 윙]이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갈지 전 정말 모르겠군요. 시리즈의 바틀렛 정권과 현실 세계의 부시 정권의 차이는 점점 넓어만 가고 있습니다. 3시즌 직전에 발생한 9.11 사태와 아프간 전쟁의 영향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테러 사건이 일어나자 아론 소킨은 허겁지겁 0번 에피소드를 만들어 그 사태를 다루었지만 고등학교 사회 선생 같은 단순한 설교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02/03/05)

기타등등

우리나라에서는 HBO 채널을 통해 1시즌이 방영되었습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