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엘리아 카잔의 평생 공로상 수상이었습니다. 카잔이 위대한 감독이란 건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매카시 열풍 당시 공산주의자였던 동료의 이름들을 의회 청문회에 밝혔다는 전력 때문에 '밀고자'라는 낙인이 찍힌 터였죠.

시상식은 그래서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시상식장 밖에서는 카잔의 반대파와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고 시상식장 안에서도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과 팔짱끼고 앉아만 있는 사람들로 패가 나뉘어 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뭔가 확 터지길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을 겁니다. 식장 안에서 대단한 소란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소동에 비해 그 결과는 얌전한 편이었어요. 카잔 소동의 앙금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거예요.

어째야 했을까요? 아카데미가 카잔에게 상을 준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요?

그게 답하기가 그렇게 쉽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러나 이 시상 자체가 좀 껄끄러운 건 사실입니다. 그의 주장이 어땠고 생각이 어땠는지야 저 알 바가 아니지만, 배반은 어느 문화권에서도 최악의 범죄로 여겨지는 행위니까요.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쉽게 빠져 나갈 수는 없어요.

강한섭 교수도 말했듯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무리의 규율과 자체 법규가 중심이죠. 카잔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가 공산주의자를 밀고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동료들을 밀고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를 비난하고 있는 겁니다.

전 사실 카잔의 행위를 그렇게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행위는 아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다치기도 했고요. 카잔의 리스트 때문에 고초를 치른 에이브럼 폴론스키 같은 사람들이 "누군가 그를 사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떠들고 다니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용감한 자를 찬양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우리가 나약한 사람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불공평한 기준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나약한 사람들입니다. 그 때문에 용감한 행동들이 더 존중을 받는 거죠.

카잔의 행동은 나약함의 표출이었습니다. 그의 나약함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외국인이었던 그가 헐리웃에서 결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생각해보세요. 헐리웃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에 전생애를 거는 사람에게 계속 입다물고 있으면 추방해 버린다는 협박이 끊임없이 날아든다면? 더실 해미트나 험프리 보가트 같은 사람들은 위에서 아무리 을러대도 잃을 게 별로 없었습니다. 보가트 같은 스타를 건드릴 사람은 없고 해미트 같은 작가야 어디서건 글을 쓸 수 있지요. 하지만 카잔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조셉 로지나 찰리 채플린처럼 달아날 수도 있지 않았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채플린이나 로지의 선택도 결코 쉬운 건 아니었을 겁니다. 카잔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당시는 어려운 선택을 요구하는 시대였습니다. 카잔은 거기에서 별로 아름답지 못하게 걸려 넘어졌던 겁니다.

카잔의 진짜 실수는 배신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배신 행위를 지금까지 정당화해왔다는 데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과거에 걸려 꼼짝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이 역시 이해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가 자기 잘못을 시인했다면 이런 소동까지는 없었을 겁니다.

시상식 때 몇몇 사람들은 카잔의 공로상이 그에게 사죄할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긴 그렇게 했다면 결과는 꽤 감동적이었을 거예요. 카잔도 동정을 더 얻었을 거고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긴 일어날 리도 없었지요. 반세기 동안 자기 행동을 정당화해온 사람에게 그런 일은 정말 힘들 겁니다. 오래 전부터 자신의 변명을 믿고 있는지도 모르죠. 시상식 당시의 어정쩡한 안티 클라이맥스는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99/03/2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