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카데미 시상식은 쇼입니다. 그냥 쇼가 아니라 지상 최대의 쇼죠. 사람들이 시상식 결과만큼이나 그 오락적인 요소에 신경을 쓰는 것도 당연합니다. 각 아카데미 상 시상식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수상작의 질만이 아닙니다. 호스트의 자질이나 삽입되는 막간쇼, 심지어 후보자들의 드레스까지도 주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아카데미의 점수는 어떻게 매겨야 할까요? 반응을 살펴보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2.

가장 많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4시간이 훌쩍 넘는 방영 시간입니다. 늘 예정 시각을 초과하는 아카데미의 행사 운영은 매년 불평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만 이번은 좀 심했습니다. 4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거든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사상 가장 긴 시상식이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요? 일단 상이 늘어난데다가 지난 1년 동안 죽은 '위대한 고인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죠. 스탠리 큐브릭, 프랭크 시내트러, 로이 로저스 같은 양반들의 추모 특집이 그 주 원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탓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헐리웃 영화인들의 결속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입니다. 이번 추모 행사는 그런 존재 이유를 정당화시키는 도구였습니다. 로이 로저스야 저희에게 별로 안 닿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로저스가 미국 대중에게 미친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큐브릭 정도야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도 될 가치가 있는 사람 아닙니까?

게다가 이 시상식 길이의 주 원인이 수많은 기술부분 상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긴 행사 시간을 비판할 생각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늘 스크린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오래간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몇 안되는 기회인데 이런 자리마저 줄여야 한다는 건 말도 안돼죠. 그 동네 시청자들은 참고 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빌린 턱시도를 입고 어색하게 상 받으러 걸어나오는 바로 그 사람들이야말로 그 동네 영화를 지탱하는 진짜 기둥이니까 말입니다.

3.

누가 뭐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덩어리는 수상 자체입니다. 그리고 시상식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도 '누가 상을 받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주는 서스펜스죠.

그렇다면 이번 시상식의 오락성은 배가 되었어야 합니다.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누가 상을 받을 지 예측할 수 없는 혼전이 계속 되었으니까요. 사실 전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반대였습니다. 일요일 방영이라는 무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예상보다 낮았습니다. 왜였을까요?

그건 그들이 '스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대한 영화 하나가 상이란 상들은 모두 확 쓸어가기를 바랍니다. 그게 더 극적이며 더 '헐리웃' 적입니다. 뻔한 스토리의 블록버스터가 예측불허의 저예산 영화보다 더 장사가 잘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박스 오피스의 규칙이 영화상 중계의 시청률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겁니다.

4.

우피 골드버그의 기용이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데엔 다들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골드버그의 시사성 있는 농담에 불편해 했고 골드버그는 미적지근한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런 반응에 대한 골드버그의 일차 반응은 자기 격하였는데 그런 자기 격하는 꼬리를 물고 빙빙 돌며 악순환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민감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골드버그는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진 시스켈을 위해 엄지를 치켜드는 제스쳐는 훌륭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을 흉내내는 등장도 좋았습니다. 자신감을 잃지 않고 그냥 밀고 나갔더라면 더 나았을 걸 그랬어요.

다음 시상식의 사회는 누가 보게 될까요? 많이들 짐 캐리를 언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긴 그 사람이 그날 벌인 아카데미 농담은 적절했고 강렬했습니다. 그가 정말로 원한다면 빌리 크리스탈의 뒤를 잇는 아카데미 맨이 될 수도 있겠지요. (9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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