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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13:37

DJUNA 조회 수:6889

리처드 론크레인의 용감무쌍한 셰익스피어 영화 [리처드 3세]가 국내 개봉되었을 때, 놀랄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평하면서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언급했다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입니다. 리얼리즘 연극이란 것이 태어나지도 않았고 방백이 아주 자연스러운 극적 수단이던 시대에 쓰여진 작품의 영화판을 보면서, 순전히 주인공이 카메라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브레히트를 끌어들였다니 매우 피에르 메나르 적이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뮬란]을 보고 나서 동양에 대한 서구인들의 무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서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 하지 않을까요? 셰익스피어와 같은 거물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마저도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다면 그래볼 만도 하죠.

하긴 셰익스피어를 읽는 사람들은 예상외로 적습니다. 그렇게 많은 번역본이 나와있지만 대부분의 스노브들은 셰익스피어 대신 셰익스피어에 대한 책을 읽습니다. 그게 더 소화 흡수가 빠르니 더 경제적인 선택인거죠. 따라서 저런 메나르들의 등장은 꽤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몰라요.

본론으로 돌아가죠. 아무 영화나 몇 편 골라서 과연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지 봅시다... 흠, 팀 버튼의 영화는 어때요? 포스트 모더니즘이 한창 인기였을 때 버튼의 영화는 참 써먹기 쉬운 텍스트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의 정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물론 그의 작품에는 인간 일반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커다란 덩어리가 있고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미국을 넘어선 세계의 관객들에게 먹힙니다.

그러나 그를 섬세하게 파헤치기 위해서는 그런 이해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그를 먹여키운 그 문화 환경에 대해 좀 더 알고 있어야 하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예전에 좋아했던 [비벌리 힐빌리 The Beverly Hillbillies(많은 국내 잡지들이 [비벌리 힐즈 아이들 Beverly Hills 90210]로 착각하고 있는)]같은 옛 연속극도 몇 편 보아야 하겠고 빈센트 프라이스가 나오는 호러 영화도 몇 편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합니까? 프라이스 주연의 호러 영화들은 그 높은 질과 장르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영화 매니아들의 리스트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슬래셔 무비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 버튼의 영화를 이해하려고 [비벌리 힐빌리] 따위의 구닥다리 코미디까지 애써 찾아 봐야 할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앓느니 죽지.

그러나 그 결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1. 그 동네 비평가들에게 의존하거나, 2. 내용을 제한하거나, 3. 오독하거나, 셋 중 하나죠.

[카사블랑카]처럼 순수한 드라마라면 별 상관이 없지만, 인용이 많은 영화들일 경우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코엔 형제의 [허드서커 대리인]이나 스티븐 프리어즈의 [리틀 빅 히어로]와 같은 영화들은 모두 프랭크 카프라의 [미트 존 도 Meet John Doe]에 아주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특히 코엔 형제의 영화는 [미트 존 도]를 모르고는 제대로 이해를 할 수도 없을 정도죠. 그러나 이 영화들이 국내에 개봉되었을 때, 이 영화를 언급한 평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꽤 유명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명작 리스트'에도 올라있지 않아서, EBS에서 방영하기 전까지 본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지요. 고로 [허드서커 대리인]과 [리틀 빅 히어로]를 보면서 평을 했던 사람들은 아주 기초적인 인용과 오리지널리티의 구별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복거일은 [월간중앙] 92년 5월호에 저와 같은 SF 팬들을 꿈과 희망에 가득 차게 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멋대로 편집해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외국 과학소설 작품들이 충분히 소개된다면 우리 문학도 좋은 과학소설 작품들을 얻게 될 것이다 (당연하신 말씀.) 정통소설에 비하면 과학소설은 양에서 아주 적다. 그리고 과학소설의 하위장르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역시 당연하신 말씀.)" 그러므로 진짜 읽을 만한 작품을 한 백 여편 정도만 골라 번역하기만 해도 창작 작품의 씨앗과 비평가들의 선입견 개선용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죠. 정말 가슴 벅찬 이야기가 아닙니까? 복거일이 이 글을 썼던 90년대 초만 해도 SF 번역이 꽤 활발해서 정말 그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슬프게도 SF 열기는 곧 시들해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게 지속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우리가 도착했을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한 문화의 풍토를 구성하는 것들은 걸작들 뿐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시한 작품들도 그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걸작 혼자만 설 수는 없습니다. 많은 걸작들이 시시한 선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죠. '걸작 리스트'가 생명력이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고로 걸작 리스트에 대한 책만 잽싸게 읽는 것으로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외국의 쓰레기까지 다 찾아다니며 구하고 봐야 하나요? 뭣하러요? 그렇게 시간이 넘쳐 흐릅니까? 하지만 안 그러자니 앞에서 언급했던 세 가지 함정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벌여놓았으니 마땅히 이쯤해서 시원스런 해답이 따라야 하겠지요. 하지만 전 이번에도 그런 건 모릅니다.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한 주제 파악일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는 주변국입니다. 심지어 국지적으로라도 문화 중심에 서 있다면 이런 고민 따윈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것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테니까요. (0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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