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옮기기

2010.03.05 09:57

DJUNA 조회 수:21554

영화가 태어난 초창기에, 사람들은 영화가 연극을 필름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연극과 영화를 가장 가까운 친척쯤으로 생각하죠. 하긴 둘 다 배우가 대사를 읊으며 연기하는 것은 같습니다. 시나리오와 연극 대본은 생긴 것도 비슷하죠.

종종 희곡은 원작 그대로 영화에 옮겨지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케네스 브래나의 [햄릿]. 70밀리로 찍은 이 장중한 영화는 셰익스피어가 쓴 대사 하나도 자르지 않았죠.

그러나 연극은 생각만큼 영화화하기 쉽지 않은 장르입니다. 비슷한 외양에 속지 마세요. 연극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은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위에서 예를 든 [햄릿]도 필사적으로 연극을 영화 장르에 쑤셔넣은 듯한 느낌이 강하니까요.

가장 큰 이유는 연극이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사실주의적인 연극은 대부분 고정된 세트 안에서 일어나며 대사 위주입니다. 이런 성격은 영화라는 장르와는 잘 맞지 않습니다. 영화는 언어보다는 이미지 위주의 장르이며 좁은 공간에 갇혀 있기를 싫어합니다. 종종 연극을 영화로 그대로 옮기면 동의어 반복이 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주인공이 손가락으로 막 등장하는 배우를 가리키며 '저기 그녀가 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죠. 연극에서는 당연합니다. 관객들의 주의를 그런 식으로라도 환기시켜 주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새로 등장하는 그녀를 그냥 카메라로 비추어주면 끝이 납니다. 거기에 '그녀가 옵니다.'라고 말을 붙여주는 건 쓸데 없는 일입니다.

연극을 영화로 연기할 때 사람들이 택하는 손쉬운 선택은 '통풍'을 시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종종 상연되는 히트 연극인 [리타 길들이기]나 [하나를 위한 이중주]와 같은 작품을 보죠. 두 작품 모두 고정된 무대 위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목이 쉬어라 떠들어대는 내용입니다. [리타 길들이기]에서는 주정뱅이 교수와 미용사, [하나를 위한 이중주]는 불치병에 걸린 바이올리니스트와 분석의라는 인물 설정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 모양은 같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도 비슷했습니다. 일단 이들이 그 닫힌 사무실에 들어오기 이전과 이후, 중간 이야기가 잔뜩 추가됩니다. 두 명밖에 없었던 등장인물들은 토끼처럼 불어나고요. 대부분 원작에서는 주인공들의 대사를 통해 언급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전체적으로 두 영화 모두 극도로 산만해졌습니다. 마이클 케인이나 줄리 앤드루스와 같은 좋은 배우들이 없었다면 영화는 더 형편없어졌을 겁니다. 원작의 장점은 모두 극도의 압축미였습니다. 하지만 영화화 되는 동안 사방팔방으로 이야기가 흩어질 수밖에 없었죠. 반복과 삭제 역시 심각해졌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원작에서는 대사로 처리했던 남편의 불륜이나 계급 차별의 경험과 같은 것들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는 그 대사를 그대로 보여주어야 할까요? 자른다면 또 어떻게 잘라야 할까요?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런 경험을 들려주는 대사들이 원작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런 연극들은 무대 대본을 고치지 않고 가져오는 편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다이얼 M을 돌려라]와 [어두워질 때까지]를 보죠. 두 작품 모두 프레드릭 노트의 서스펜스 연극이 무대인데, 다들 특별히 원작을 고칠 필요가 없다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히치콕은 [다이얼 M을 돌려라]를 각색하면서 약간의 법정 장면과 야외 장면을 덧붙였을 뿐 거의 원작 그대로 찍었습니다. [어두워질 때까지]에서도 살인범들의 음모에 말려든 오드리 헵번은 무대가 되는 반 지하 아파트를 벗어나지 않고요. 결과적으로 두 작품 모두 강렬한 서스펜스를 과시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갑갑하지 않냐고요? 영화의 갑갑함은 갑갑한 연출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갑갑한 공간에 기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연극들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에비타]나 [레미제라블]과 같은 뮤지컬들을 보세요. 다들 특수 효과와 회전 무대를 이용해 장면을 굉장히 빨리 전환시킵니다. 이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효과이지 사실주의는 아닙니다.

장면 전환이 빠르다보니 영화로 만드는 게 아주 쉬워졌습니다. [에비타]의 원작에서 에비타가 서서히 출세해가는 과정을 그린 장면을 보세요. 이 장면은 원작에서 아주 양식적으로 짜여졌습니다. 에비타는 같은 무대에서 계속 남자를 바꾸어가고 뒤에서는 합창단이 그리스 코러스라도 되는 것처럼 냉정한 주석을 달죠.

그런 작품 그대로 사실적인 스타일로 옮긴 앨런 파커의 영화는 그 때문에 조금 심심해져 버렸습니다. 남자들이 바뀌는 장면들은 전통적인 영화의 편집 기법이 대신했습니다. 연극에서는 그 비현실적인 느낌과 양식 때문에 아주 흥미진진했던 장면이 영화에서는 튀지 않는 평범한 이미지가 대신했던 것이죠. 전체적인 힘도 약화되어 버렸습니다. 이 시퀀스의 힘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한 무대에서 밀접하게 연결되며 시선을 교환하는 설정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연극을 영화화하는 최선의 방법은 원작을 그대로 살리는 것일까요? 무대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성공적인 연극이라면 답은 '예스'인 듯 합니다. 물론 창의적인 감독이라면 영화적 스타일을 대입하면서도 성공적인 영화를 만들어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비교적 통풍에 성공한 [아마데우스]와 같은 영화도 원작인 피터 셰퍼의 연극과 비교하면 힘이 떨어지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얼마 전에 체호프의 [갈매기]를 성공적으로 연출한 마이크 니콜스는 그 작품을 영화화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답니다. 니콜스는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체호프는 영화가 불가능해요. 관객들이 모든 장면에서 무대에 있는 사람들 전부를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0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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