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기절해있던 민아가 깨어납니다. 크게 확대된 민아의 눈동자에 방문한 사람들의 얼굴이 반사됩니다. 처음엔 양호교사, 다음엔 지원과 아직도 효신이를 용서 못하는 연안, 여전히 효신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캐물으려 하는 고형석 그리고 일기가 어디있냐고 묻는 시은. 이 '눈부처들'은 스펙트럼 버전 DVD에선 잘 안보이는군요. 프랑스판에서 훨씬 깨끗하게 잘 보여요.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현실성은 파괴됩니다. 아마 이 이후부터는 민아의 악몽일지도 몰라요. 이후의 스토리는 현실의 논리보다는 꿈의 논리에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듀나 양호실에서 일어난 민아는 화장실로 갑니다. 세수하는 민아의 등뒤에서 효신이 쾅하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이 유령은 앞에 나온 효신의 피투성이 얼굴이나 저속촬영 유령보다 효과적이에요. 간결하지만 훨씬 설득력있고 무섭죠.

파프리카 민아는 천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끼익하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 문 하나가 닫힙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두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건 즐겁게 웃고 있는 과거의 효신과 시은입니다. 동복 차림이군요. 시간은 여기서도 뒤섞이고 있어요.

민아는 화장실에서 달아납니다. 복도에서 민아 옆으로 꼭 효신을 닮은 누군가가 지나갑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책을 읽고 있던 효신이 민아를 바라보고 미소를 짓다가 사라지네요. 민아는 그 유령의 뒤를 쫓습니다. 아까와 같이 중앙홀의 기둥들은 이번에도 과거의 창이 됩니다. 달리는 효신 뿐만 아니라 손잡고 달리는 효신과 시은의 모습도 보이는걸요.

듀나 민아는 그들을 따라 체육관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는 중창단 학생들이 내일 공연을 연습하고 있었지요.

효신의 유령이 없자 민아는 음악실로 갑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민아는 소리가 나지 않은 건반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뚜껑을 엽니다. 피아노 안은 효신이 지난 한 달 동안 공을 들여 작업한 장식들로 가득하지요. 민아가 피아노 안을 탐색하는 동안 수상쩍은 부감숏이 민아에게 다가옵니다.

파프리카 드디어 민아는 해독제를 찾아냅니다. 민아는 약을 먹어요. 그 알약이 소화제건 청산가리건 중요하지는 않아요. 민아에게 중요한 건 효신이 그 약을 해독제라고 명명했다는 것입니다.

듀나 그러는 동안 사물함을 훑으며 시은이 다가오고 있지요.

파프리카 한편 연안이 퍼트린 소문은 학교에 쫙 퍼졌습니다. 삭제된 장면에 따르면 고형석을 비난하는 낙서까지 돌고있어요. 캠코더를 찾으러 교무실에 온 지원은 고형석에게 소문에 대해 묻습니다. 지원은 고형석에게 당하지 말고 진실을 밝히라고 외칩니다. 고형석은 한동안 무덤덤하게 반응하다가 "선생님은 이중인격자예요!"라는 비난까지 올라가자 지원의 따귀를 후려치지요. 이 갑작스러운 반응은 지원과 고형석 모두에게 대단한 충격입니다.

듀나 시은이 음악실로 들어옵니다. 민아는 피아노 장식을 시은에게 보여줍니다. 이제 민아는 효신의 영매입니다. 물론 시은은 그런 민아를 받아들일 수 없죠. 일단 어색하고 죄책감이 느껴지니까요. 시은은 모든 걸 기계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일단 민아의 생일 축하 인사를 거부하고 피아노 속으로 뛰어드는 거죠. 도대체 약이 어디있지?

파프리카 화장실에서 지원이 우는 동안 드디어 본격적인 폴터가이스트현상이 시작됩니다. 화장실문이 저절로 열렸다 닫히고, 물이 안나오고...

그러는 동안 민아는 구토하기 시작합니다. 둘만의 세계에 들어온 벌을 받는 거죠. 사실 삭제 장면에 보면 보다 구체적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약을 먹은 뒤에도 몸이 아파 다시 피아노로 달려가 그 '해독제'가 든 병을 꺼낸 민아는 병 뚜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는 리본이 말려져 있는 걸 발견하거든요. "경고. 니가 시은이가 아니라면 이 해독약은 널 죽일 거야." 이 글을 읽는 순간 아까까지만 해도 해독제이던 것이 독약이 됩니다. 아, 이름의 힘이란!

듀나 리본에 글씨써서 만든 부비트랩이네요.

시은은 일기장을 보고 있습니다. 어디서 났냐고요? 삭제된 장면에서는 어린 효신이 가져다 주었지요. 감독 설명에 따르면 거북 소녀가 가져다준 것이고요. 최종편집본에 따르면 그냥 나타난 거예요.

파프리카 일기장이 펼쳐짐과 동시에 이야기는 다시 과거로 흘러갑니다.

듀나 연안은 지금 효신에게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너한테 이상한 냄새 나. 무슨 레즈비언 냄새 같은데?"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쓰이는군요. 그런데 이 단어는 어느 언어에서건 조금 거북스럽고 인위적으로 들리지 않나요?

파프리카 이 장면에서 연안은 얼굴없는 집단의 일부로서 효신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효신의 매서운 반응이 돌아오지요. "너한테선 더 이상한 냄새가 나. 무슨 생선비린내 같은 건데, 역겨워." 여기서부터 효신에 대한 연안의 감정은 개인적이 됩니다. 자신이 먼저 공격한 것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을 거예요.

연안은 중창단 반장인 승연에게 하소연을 하고 승연은 연안의 편을 들며 효신을 따집니다. 그러다 싸움이 일어나고 효신은 연안에게 우유를 집어던집니다. 순식간에 효신은 승연과 연안의 공격을 받습니다.

듀나 이 승연이란 애 말이에요. 전 언제나 이 친구의 그 흐릿한 행동이 재미있었답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보아하니, 승연은 아마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권위를 인정받은 위치에 있는 아이일 겁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단 한 번도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적도 없고 인간적인 통찰력도 없습니다. 그저 생각없이 집단사고와 피상적인 상식에 몸과 머리를 맡기는 것뿐이지요. 이 장면에서 효신을 매섭게 공격하던 승연이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으면서 효신을 위한 추모공연을 준비하는 걸 보세요. 차라리 연안은 일관성이라도 있었지요.

파프리카 효신은 바닥에 쓰려지고 하필 그 때 고형석이 들어옵니다. 고형석은 아이들을 나무라고 효신을 안고 나갑니다. 애들이 얼마나 밥맛이었겠어요! 모두들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 걸요. "우리가 아니라 쟤가 잘못했어요! 쟤는 지금 쇼하는 거예요! 진짜 재수없는 애는 우리가 아니라 쟤라고요!"

듀나 다음 장면은 육상부실입니다. 텅빈 육상부실에서 효신이 시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툭 튀어나오는 효신의 얼굴은 효신의 유령보다 더 무섭습니다.

이 장면에서 효신은 이전의 쿨함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남은 건 의심과 질투 뿐이에요. 효신은 시은이 어디에 있었는지 캐묻고 자기를 못봤다고 하는 시은에게 외칩니다. "내가 안보여? 내가 개미야? 내가 안보이긴 왜 안보여?"

파프리카 근데 저는 쿨한 효신보다 시은이 자기한테서 떠날까봐 겁에 질린 이 장면의 효신이 더 좋답니다. 이 장면에서 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겁에 질린 어린아이에요. 연안에게 매정한 '생선비린내' 욕설을 던진 직후라 그 무장해제의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어요.

듀나 다시 무대는 옥상서고로 올라갑니다. 효신의 마음은 이 둘만의 공간 안에서 조금 평온해졌습니다. 친구를 위로할 의무감을 느낀 시은은 아주 치명적인 실언을 합니다. "니가 못 믿겠다면 내가 증명해 줄게. 우리 공개적으로 확인하자."

파프리카 아, 책임질 말은 가려서 해야 하는 법이지요. 그런데 효신은 시은의 이 말을 얼마나 믿었던 걸까요?

듀나 누가 알겠어요? 그리고 다음 일어날 사건은 그렇게 치밀한 계획을 따른 게 아니었잖아요.

파프리카 효신네 반. 이전까지만 해도 동복이었지만 이들은 이제 하복을 입고 있습니다. 효신과 시은이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 교사 앞에서 야단을 맞고 있습니다. 삭제된 앞 장면에서 둘은 교환일기를 보며 놀고 있었는데, 아이들한테 빼앗겼었지요.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일기의 일부를 읽습니다. 둘만을 위한 천국이었던 일기장의 세계가 이제는 아이들과 선생의 조롱감의 대상이 되었지요. 시은의 표정은 굳어집니다.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옆에서는 아직도 자기의 손을 잡고있는 효신이 있습니다. 시은은 효신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짓습니다.

한참 설교를 하던 교사는 아이들이 자기 말을 전혀 듣지않고 히죽히죽 웃자 그만 시은의 뺨을 때립니다. 시은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와요.

듀나 이 영화에서 교사의 물리적 폭력이 등장하는 몇 안되는 장면이지요. 사실 삭제된 장면들에는 조금 더 많았지요? 가장 노골적인 장면은 학생들의 투고에 열받은 육상부 코치의 체벌이겠지만요.

파프리카 선생의 폭력에 효신의 인내심은 임계점을 넘어섭니다. 효신은 선생에게서 일기장을 빼앗고 시은의 손을 잡고 걸어나갑니다. 시은은 멈추어서고 효신은 그런 시은의 손을 털어낸 뒤 교실 밖으로 나가요. 남들이 보면 남의 교실에 들어온 애인 줄 알겠네요.

시은은 우두커니 효신네 교실에 서서 효신이 나간 문을 바라봅니다. 잠시 뒤 효신은 다시 교실로 뛰어들어와 시은에게 키스합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잠시 우두커니 서서 응하던 시은은 필사적으로 효신을 떼어내려합니다. 효신은 그런 시은에게 계속 매달리고요. 여기서 시은을 자세히 보세요. 효신의 몸에 힘없이 팔을 감고 이 아이를 안아야 할지 떼어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지요. 여기서 시은은 3원칙에 갇혀 빙빙 도는 로봇 같지 않나요? 키스는 좋아요. 하지만 시선은 무서워요. 하지만 그렇다고 효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지금 이 감정과 감각은 너무 무서워요. 그렇다고 떼어내자니...

마침내 승연과 아이들이 효신을 시은에게서 떼어냅니다. 그러기 전에 파란 노트를 둘에게 집어던지고 퇴장하는 엑스트라는 실제로 기독교 신자라 화가 나서 던진거라더군요!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사건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1993년 모 여자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이지요. 학교에서는 키스를 주도했던 한 아이를 퇴학시켰고, 피해자처럼 알려졌던 나머지 한 아이는 아이들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자퇴했다고 해요. 세상 참 무서워요.

듀나 효신네 집 욕조입니다. 효신은 욕조 안에서 울고 있습니다. 슬프기도 하겠지만 배신감에 화가 목까지 차 있는 것 같아요.

원래 효신네 집 욕조 장면이 몇 개 더 있었지요. 욕조는 옥상서고처럼 효신과 시은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천상의 피조물들]의 영향을 조금 받지 않았나 생각해봐요. 이 장면들은 대부분 잘려나갔는데, 너무 추상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이 떨어져서 사실 다른 장면들과 잘 어울리지 않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오는 욕실 장면만 갑자기 등장하면 엉뚱해보이긴 해요.

파프리카 양손에 우유팩을 든 효신이 복도를 걸어옵니다. 효신이 죽을 때 민아가 보았던 바로 그 시간이지요.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효신의 표정이 상당히 밝아서 감정선의 불연속성이 느껴지는데, 아마 그 동안 열심히 시은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던 모양이지요. 아직 시은은 최악의 배신을 저지르지는 않았어요. 효신을 떼어낸 건 승연과 아이들이지, 시은 자신이 아니었으니까요.

듀나 음... 그건 이 최종편집본에서나 그렇죠. 원래는 키스 사건 이후 둘이 민아네반 선생과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중간에 있었지요? 그 때도 시은은 효신을 베드로처럼 부인해요. 거기서 이미 배신은 저질러졌죠.

파프리카 그래도 마지막 배신을 여기에 하나 크게 두는 게 더 적절한 선택 같지 않나요?

효신은 시은네 교실의 문을 엽니다. 쉬는 시간이지만 아직 생물 선생은 수업 중입니다. 참 난처한 상황이네요. 효신은 시은을 바라보고 시은은 효신을 외면합니다. 당황한 효신은 "꼴통같은 년"이라는 생물 선생의 놀림을 받으며 달아나지요.

민아와 연안 역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민아는 여기서 효신을 처음 봤지요. 아마 효신이 자살했을 때 우유 팩을 들고온 효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도 그 때 기억 때문인지도 몰라요.

듀나 효신은 계단을 내려옵니다. 우유팩 하나가 손에서 떨어지고 발에 밟혀 터집니다. 효신은 그 우유팩을 바라보다 자기가 들고 있던 우유팩을 바닥에 집어던집니다.

파프리카 이 영화에서는 우유팩이 참 바쁘지요? 어떤 때는 공격무기였다가 어떤 때는 사랑과 실연의 상징이었다가...

듀나 교실로 돌아온 효신을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너는 나를 보고 고개를 돌렸어. 너는 나를 보고..." 시은은 효신의 뒤를 따라들어옵니다. 아마 사연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겐 이 아이들의 절실하기 짝이 없는 대사들이 정말 어처구니없게 들렸을 거예요.

효신: 그냥 우유 주러 갔었어. 우유만 주구 오려구 했어. 
시은: 나 이제 우유 안 먹어. 일기 줘!

시은과 효신은 일기장을 두고 싸웁니다. 막 교실 앞에 온 고형석은 문 너머에서 둘을 바라보고 있지요. 시은은 간신히 일기장에서 몇 페이지를 찢어내 던져올립니다.

파프리카 다시 현재의 음악실입니다. 시은은 울고 있어요. 시은이 읽는 일기엔 그날의 상흔처럼 찢겨진 페이지가 남아 있습니다.

배경에서 아파 신음하고 있던 민아가 간신히 일어납니다.

그리고 종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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