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잡담

2010.03.06 11:12

DJUNA 조회 수:3911

1. 중계

올해 OCN 시상식 중계는 그냥 그랬습니다. 작년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고 할까요. 무의미한 동시 통역은 여전히 존재해서 내용 전달을 막았고 진행자들의 실수도 잦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전 그냥 무성의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어권 배우들 중 한 명인 헬렌 미렌을 불러다놓고 '왕년에 배우일을 좀 했던 테일러 헥포드의 부인'으로 소개하는 장면에선 정말 '억' 소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아메나바르가 자기 영화 주연배우인 하비에르 바르뎀에 대해 떠들고 있는데 폴 자마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심했고요. 로빈 윌리엄스의 농담 부분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동시 통역이 제대로 이해도 못한 걸 반쯤 추스리는 동안 그걸 또 진행자가 떠들며 가로막았으니 기가 찰 수밖에요. 페넬로페 크루스와 셀마 하이엑의 악센트를 빈정거리는 농담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무지에 바탕을 둔) 심각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번 중계에서 가장 좋았던 건 진행자들의 침묵이었습니다. 크리스 록의 오프닝 조크나 인 메모리엄 때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건 정말 좋았습니다. 다음 중계 때는 될 수 있는 한 시상식 중간엔 말을 마시길. 어차피 이야기할 시간은 중간중간에 많습니다. 그리고 제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동시 통역은 빼주세요!

2. 수상 결과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참고하실 분들을 위해 수상작 리스트를 여기 올려놓습니다. 알파벳 순입니다.

ACTOR IN A LEADING ROLE 
Jamie Foxx 
RAY 

ACTOR IN A SUPPORTING ROLE 
Morgan Freeman 
MILLION DOLLAR BABY 

ACTRESS IN A LEADING ROLE 
Hilary Swank 
MILLION DOLLAR BABY 

ACTRESS IN A SUPPORTING ROLE 
Cate Blanchett 
THE AVIATOR 

ANIMATED FEATURE FILM 
THE INCREDIBLES 
Brad Bird 

ART DIRECTION 
THE AVIATOR 
Dante Ferretti (Art Direction); Francesca Lo Schiavo (Set Decoration) 

BEST PICTURE 
MILLION DOLLAR BABY 
Clint Eastwood, Albert S. Ruddy and Tom Rosenberg 

CINEMATOGRAPHY 
THE AVIATOR 
Robert Richardson 

COSTUME DESIGN 
THE AVIATOR 
Sandy Powell 

DIRECTING 
MILLION DOLLAR BABY 
Clint Eastwood 

DOCUMENTARY FEATURE 
BORN INTO BROTHELS 
Ross Kauffman and Zana Briski 

DOCUMENTARY SHORT SUBJECT 
MIGHTY TIMES: THE CHILDREN'S MARCH 
Robert Hudson and Bobby Houston 

FILM EDITING 
THE AVIATOR 
Thelma Schoonmaker 

FOREIGN LANGUAGE FILM 
THE SEA INSIDE 
Spain 
Directed by Alejandro Amenábar 

HONORARY AWARD 
Roger Mayer 

HONORARY AWARD 
Sidney Lumet 

MAKEUP 
LEMONY SNICKET'S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 
Valli O'Reilly and Bill Corso 

MUSIC (SCORE) 
FINDING NEVERLAND 
Jan A.P. Kaczmarek 

MUSIC (SONG) 
THE MOTORCYCLE DIARIES 
"Al Otro Lado Del Río" 
Music and Lyric by Jorge Drexler 

WRITING (ADAPTED SCREENPLAY) 
SIDEWAYS 
Screenplay by Alexander Payne & Jim Taylor 

WRITING (ORIGINAL SCREENPLAY)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Screenplay by Charlie Kaufman; Story by Charlie Kaufman & Michel Gondry & Pierre Bismuth 

SHORT FILM (ANIMATED) 
RYAN 
Chris Landreth 

SHORT FILM (LIVE ACTION) 
WASP 
Andrea Arnold 

SOUND EDITING 
THE INCREDIBLES 
Michael Silvers and Randy Thom 

SOUND MIXING 
RAY 
Scott Millan, Greg Orloff, Bob Beemer and Steve Cantamessa 

VISUAL EFFECTS 
SPIDER-MAN 2 
John Dykstra, Scott Stokdyk, Anthony LaMolinara and John Frazier

정리하면 [에비에이터]가 다섯 개, [밀리언달러 베이비]가 네 개, [레이]가 두 개, [인크레더블]이 두 개, [사이드웨이], [파인딩 네버랜드], [이터널 선샤인],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위험한 대결], [스파이더맨 2]가 각각 하나씩 가져갔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몰아주기 해와 나눠주기 해로 구분한다면 올해는 나눠주기쪽에 가까웠지요. 그렇다고 그에 특별한 의도에 따른 건 아닙니다. 대부분 몰아주기가 강한 해는 기술부분의 무게가 강한 대작이 인기를 끌 때인데 올해는 그런 편이 아니었거든요. [에비에이터]를 제외한 작품상 후보들은 할리우드 기준으로 보면 소품 정도였습니다. 모두 각자 장점이 분명한 영화들이었고요. 따라서 그 영화들이 자기들만의 장점이 비교적 잘 산 부분상들을 나누어 가지고 간 건 당연했습니다.

올해는 [밀리언달러 베이비]와 [에비에이터]의 대결구도였습니다. 초반부엔 기술상을 꽤 많이 가져가던 [에비에이터] 쪽이 유리해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승자는 [밀리언달러 베이비]였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여우조연상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술부분에 상이 쏠려 있던 [에비에이터]와는 달리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알짜배기 상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만 싹 가지고 갔습니다.

올해 수상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노장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미술상 수상자인 단테 페레티, 감독상 수상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모건 프리먼, 편집상 수상자인 텔마 스쿤메이커, 시각효과상 수상자인 존 다익스트라는 모두 할리우드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들입니다. 이번 시상식은 계속 상을 받지 못한 후보자들을 위로하는 성격이 강하기도 했습니다. 페레티와 프리먼은 첫 수상이었습니다. 늘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지만 계속 아슬아슬하게 아카데미를 비껴갔던 케이트 블란쳇도 올해는 상을 받았고요.

노장과 단골 낙방생들의 잔치라는 올해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마틴 스콜세지의 수상 가능성도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카데미는 스콜세지에게 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본인에겐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입니다. [에비에이터]는 흥미진진한 영화였고 훌륭한 기술적 성취이기도 했지만 일반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만한 정서적 측면이 비교적 부족했으니까요.

올해 아카데미는 노장들말고 막 기를 펴는 젊은 신진 세력들에게 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찰리 카우프먼과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 [인크레더블]의 브래드 버드는 모두 그들의 능력에 걸맞는 상을 받아갔습니다.

아넷 베닝은 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우주연상을 놓고 힐러리 스웽크와 경쟁하다가 또 패배했습니다. 잔인한 농담처럼 보이지만 이런 농담의 희생자가 베닝만은 아닙니다. 이번에도 배우출신 감독에게 상을 빼앗긴 마틴 스콜세지도 있으니까요.

3. 시상식

올해 시상식은 짧았습니다. 본 시상식만 따진다면 3시간을 살짝 넘는 정도였지요. 어떻게든 러닝타임을 줄이려 기를 쓴 때문인지 잔재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나마 쇼다운 부분은 각 주제가상 후보작들이 소개될 때였는데, 그것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즐겁게 봤던 건 [인크레더블]의 에드나가 피어스 브로스넌과 함께 의상상을 수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로빈 윌리엄즈의 조크에 대해서는 평가 못하겠습니다. 동시 통역과 눈치없는 진행자가 원천봉쇄를 했으니 말이죠.

시상식 소감은 모두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힐러리 스웽크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름을 들먹이며 주어진 시간을 늘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상자들은 음악 방해 없이 45초 간에 할 말을 마쳤습니다. 프로듀서인 길 케이츠가 후보자들을 모아놓고 한바탕 교육을 한 모양이더군요.

화제를 모았던 크리스 록의 진행은 아주 나쁜 편도 아니었고 아주 좋은 편도 아니었습니다. 록 특유의 무차별 농담은 많이 절제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오스카상 특유의 유연한 분위기를 넉넉하게 살리지도 못했던 거죠. 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직되어 있었고 공격적이었습니다. 호스트보다는 시상자 쪽이 더 어울려보였어요.

올해 시상식의 가장 특이한 점은 기술부분 후보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오거나 아니면 시상자가 직접 그들이 모인 곳에 내려와 시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단점 모두 있는 선택이었죠. 장점은 일단 보통 때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 시청자들과 카메라의 시선을 받을 수 있고 단조로운 비주얼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수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 잔인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후보자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사자들만 좋다면 전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전체적으로 짧았지만 밍밍하고 지루한 시상식이었습니다. 작년에도 말했지만 짧은 러닝타임에 대한 집착은 시상식의 재미를 떨어뜨립니다. 까짓거 길어져봐야 얼마나 더 길어진다고요. (0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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