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잡담

2010.03.06 11:17

DJUNA 조회 수:3832

1. 수상 결과

수상작 리스트입니다. AP에서 가져왔습니다.

Best Motion Picture: "The Departed"

Lead Actor: Forest Whitaker, "The Last King of Scotland"

Lead Actress: Helen Mirren, "The Queen"

Supporting Actor: Alan Arkin, "Little Miss Sunshine"

Supporting Actress: Jennifer Hudson, "Dreamgirls"

Directing: Martin Scorsese, "The Departed"

Foreign Language Film: "The Lives of Others," Germany

Adapted Screenplay: William Monahan, "The Departed"

Original Screenplay: Michael Arndt, "Little Miss Sunshine"

Animated Feature Film: "Happy Feet"

Art Direction: "Pan's Labyrinth"

Cinematography: "Pan's Labyrinth"

Sound Mixing: "Dreamgirls"

Sound Editing: "Letters From Iwo Jima"

Original Score: "Babel," Gustavo Santaolalla

Original Song: "I Need to Wake Up" from "An Inconvenient Truth," Melissa Etheridge

Costume: "Marie Antoinette"

Documentary Feature: "An Inconvenient Truth"

Documentary Short Subject: "The Blood of Yingzhou District"

Film Editing: "The Departed"

Makeup: "Pan's Labyrinth"

Animated Short Film: "The Danish Poet"

Live Action Short Film: " West Bank Story"

Visual Effects: "Pirates of the Caribbean: Dead Man's Chest"

Jean Hersholt Award (Oscar statuette): Sherry Lansing.

Honorary Academy Award (Oscar statuette): Ennio Morricone.

정리하면 [디파티드]가 4개, [판의 미로]가 3개, [드림걸즈], [미스 리틀 선샤인], [불편한 진실]이 2개,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 [해피 피트], [마리 앙트와네트],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바벨], [더 퀸], [라스트 킹 오브 스코틀랜드]가 1개씩 받아갔습니다. [디파티드]가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을 수상해 알짜배기 승자로 군림했지만, 올해는 비교적 나누어 갖기 의 분위기가 강했죠. 기술부분상을 독점할만한 대작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처음부터 예상 가능했던 것입니다.

가장 뜻밖의 결과는 처음부터 부분상을 세 개나 쓸어갔던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을 밀어내고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수상이 유력했던 에디 머피를 밀어내고 앨런 아킨이 수상한 것도 조금은 의외일 수 있었고요. [바벨]의 음악상의 수상 결과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편이더군요. 나머지는 대부분 예측 가능했고 또 결과도 만족스러운 편이었습니다. 아킨의 수상이 뜻밖이었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언젠가는 상을 받아야 할 훌륭한 배우였고 이번 영화에서도 연기는 훌륭했죠.

2. 시상식

엘렌 드제너러스는 편안하고 안전했습니다. 전세계 4억 시청자들이 노려보는 국제적 행사인데도, 마치 자기 토크쇼의 한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이끌었죠. 너무 편안해서 가끔은 밋밋하고 심심해 보이기도 했어요. 물론 그건 전략이었을 겁니다. 아직도 LGBT 커뮤니티의 대표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니 일상성과 편안함으로 일반 시청자들에게 접근하는 건 꼭 필요했겠죠. 어찌되었건 전 스필버그에게 디카를 들려 주고 이스트우드와 마이 스페이스용 사진을 찍는 그 편안함과 은근슬쩍 실수나 즉석 농담을 위장하며 자연스럽게 사전 계획 속으로 말려드는 느물거림이 좋았던 겁니다.

오늘은 눈물을 글썽이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할리 베리'식 수상소감은 없었습니다. 제니퍼 허드슨이 그 비슷한 단계까지는 갔지만 그래도 할리 베리보다는 자신을 추스릴 줄 알았죠. 대부분 연설 준비를 철저하게 했고 몇몇 사람들은 원고를 꺼내들고 그냥 읽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수상자들은 포레스트 위테이커나 헬렌 미렌처럼 상을 받는 순간에도 노련한 프로페셔널처럼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상자들 중 가장 재미있었던 사람은 에밀리 블런트와 앤 해서웨이였습니다. 이들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캐릭터를 적절하게 반영하며 메릴 스트립과 조용한 농담 따먹기를 할 때는 정말 귀여웠지요. 막판에 마틴 스콜세지에게 감독상을 주러 나온 코폴라, 루카스, 스필버그 삼총사의 농담 따먹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마추어 티가 좀 나긴 했지만 알 고어의 출마 농담도 괜찮았고요.

인상적인 공연이나 이벤트는? 일단 전 에롤 모리스가 감독한 후보자들의 인터뷰 몽타쥬가 좋았습니다. 피터 오툴을 세워다 놓고 "왜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상을 받지 못했어요?"라고 묻는 뻔뻔스러움도 좋았고, 인터뷰 대상의 매력과 재치를 은은하게 살려주는 그 자상함과 적절한 타이밍도 좋았죠. 필로볼러스 무용단이 드디어 할리우드에 진출해 근사한 그림자극을 선보였던 것도 팬으로서 흐뭇했고요. 저번에 근사한 '넌 지루해' 이중창을 선보였던 윌 패럴과 잭 블랙은 존 C. 라일리와 합세해서 '코미디언들의 역습'이라고 할 만한 3중창을 선보였는데 조금 길긴 했지만 이 역시 꽤 좋았습니다. 아카펠라 음향 효과 합창도 좋았고요.

3. 중계

OCN 중계는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동시 통역이 빠졌고 진행자들의 말도 조금은 줄어들었거든요. 다시 말해 아카데미 중계는 진행자들이 입을 닥치고 있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좋아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자들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못하겠습니다. 말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그게 유일한 장점이었어요. 그리고 완전히 줄이지도 못했죠. 처음부터 음악 들으라고 끼워넣은 엔니오 모리코네 공연에서도 그렇게 수다를 떨며 아는 척을 해야 합니까? 그 아는 척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고유 명사 몇 개를 나열하는 것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가끔 정보를 주겠다고 하는 나서는 부분에서도 코웃음이 나옵니다. 2년 전에는 헬렌 미렌이 누군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시상식 며칠 전에 인터넷을 뒤져 얻은 정보를 우쭐거리며 '[백야]에 헬렌 미렌이 나왔던 거 알아요?" 라고 으스대는 건 정말 볼썽 사나웠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 섹션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했던 통역을 트집잡은 이무영의 멘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힐 지경이었고요. 이번 중계에서 가장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했던 건 이스트우드옹의 통역이 아니라 'th' 발음에 대한 이무영의 처절한 집착과 끝도 없이 삽입되는 그의 '허허' 웃음이었단 말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를 증명하고 싶다면 소음 대신 정보로 하란 말입니다.

4. 스콜세지와 [디파티드]

스콜세지에게 감독상을 준 이번 아카데미의 결정은 만족스러우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영화보다 영화 외적인 면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지요.

일단 스콜세지는 자격이 없는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디파티드]는 그의 최고 걸작은 아니었지만 에너지와 기교가 넘치는 거장의 작품이었습니다. 후보에 오른 다른 감독들에게 특별히 뒤질 게 없었죠. 우리나라에서는 원작 [무간도]와 비교되어 저평가 되고 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죠. 둘은 목적과 수단이 전혀 다른 영화들이니까요. [디파티드]에서 원작에 있던 '싸나이들의 고독과 우수'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건 의미없는 일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문제는 외적인 데에 있습니다. 일단 최근 몇 년 동안 스콜세지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주어야 한다는 내외적 압박이 존재해왔습니다. 미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인 그가 지금까지 아카데미 감독상을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건 정말 괴상한 기록으로, 언젠가 반드시 깨지긴 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 기록이 드디어 깨진 올해의 아카데미에서는 그 기록을 깨야 한다는 강박증이 정작 작품보다 더 잘 보였다는 거죠.

다른 문제는 오리지널리티에 있습니다. [디파티드]는 리메이크 영화죠. 미국 최고의 감독에게 상을 주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 하필이면 홍콩 영화의 리메이크인 것입니다. 아무리 원작과 다른 영화라고 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원작에서 가져온 그 아슬아슬한 거울상의 대립구도라는 걸 생각해보면, 축하 분위기가 좀 식습니다.

5. 국제적인 오스카

올해 아카데미는 유별나게 국제적인 분위기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멕시코에서 건너온 삼총사인 기예르모 델 토로, 알폰소 쿠아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모두 이번에 후보작들을 올렸고 평도 좋았습니다. [바벨]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처럼 일본 배우들이 일본어로 연기를 한 작품들도 있었고요. 결정적으로 작품상을 수상한 [디파티드]는 홍콩 영화의 리메이크였습니다. 일본과 멕시코세가 주목을 받긴 했지만 가장 실속있는 성과를 거둔 건 로이 리와 그의 패거리들이었던 거죠. 지금까지 다들 놀려대던 아시아 영화 판권장사로 아카데미상까지 탔으니 이제 누가 뭐라겠습니까.

이 다국적 경향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그건 미국과 할리우드가 더 이상 문화적으로 하나의 순수한 나라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카데미상이 할리우드 업계 사람들의 자화자찬상이라고 해도 점점 더 국제화되어가고 다민족/다언어적이 되어가는 환경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할리우드 영화라는 딱지가 꼭 미국 영화라는 걸 의미하지 않는 날이 올 겁니다. (0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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