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스노비즘

2010.02.22 13:33

DJUNA 조회 수:3013

'시네 스노비즘 Cine Snobbism'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심각한 의미가 있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시네 스노비즘'이라는 지독하게 스노비시한 (심지어 '스노비시한'도 스노비시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선택할 만한 다른 표현이 없습니다) 표현은 단지 우리가 이 땅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쉽게 접하게 되고 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어떤 요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그 요소를 잠시 '영화'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기 위해 도입한 임시명칭일 뿐입니다. 사실 벌써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들면서 이 명칭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을 제가 벌써 해버렸으니 이 표현을 더 쓸 이유도 없습니다. 고로 '시네'는 잽싸게 빼버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하죠. 도대체 '스노비즘'이 뭡니까?

제가 여기에서 '스노비즘은 ...이다' 어쩌구의 간단한 정의를 내놓는다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땀빼며 고생하고 있을 사전 편찬가들의 전문성과 노고를 무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이나 이 단어는 다양하게 또 애매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포기하더라도 그 비슷한 것을 임시방편용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습니다.

Snob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한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라틴어 sine(영어로 without)과 nobilitate(영어로 nobility)가 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Snob라는 단어의 공식적인 명명자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William Makepeace Thackeray는 이 무시무시한 말을 19세기 초 영국 상류 계층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은어로부터 끄집어냈다고 합니다. 케임브리지의 한 학생은 자기 계층에 속할 만한 체면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나, 특히, 당시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면서 은근히 좋아하고 그것을 흉내내려는 불쌍한 부르조아 학생들을 스노브로 취급했다고 합니다. 물론 새커리의 정의는 그것보다 훨씬 넓어서 결국 그네들을 놀려대던 잘난 학생까지 스노브의 무리 안에 들어 가버리고 말았지만요.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참고 자료로 쓰고 있는 필립 뒤 퓌 드 클랭샹 Philippe du Puy de Clinchamps의 책에서는 몇 가지 예를 더 들고 있는데, 대충 무시하고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합시다(솔직히 말해 책의 표현 일부가 저한텐 애매하기 짝이 없어서 잘못 인용할까봐 겁이 납니다.)

저는 아직도 스노브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스노브의 특성을 언급하면서 여러분에게 이 단어의 뉘앙스를 짐작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 특성이란, 과시성, '척' 하는 태도, 자기만족성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린 '잘난 척',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을 야유하기 위해 이 스노브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종종 번역어로 사용되는 '속물'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리코더가 피리가 아닌 것처럼 스노브는 속물이 아닙니다. 이런 무책임한 역어는 오히려 언어의 혼란을 일으킬 뿐입니다.)

아까 저는 스노비즘이 우리가 이 땅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쉽게 접하게 되고 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요소라고 말했습니다(사실 그래야,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이 영화 낙서 섹션에 편입되어야 할 당위성을 얻게 되겠지요.) 물론 어느 나라의, 어느 시대의 문화 향유자들 사이에서도 스노비즘은 일상적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곳의 영화 문화 속에서 특히 더 번식력이 강합니다.

이유는 흐르는 물처럼 당연합니다. 사실 '흐르는 물'은 단순한 비유 이상의 것입니다. 둘은 같은 물리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고지대에 A 저수지가 있고 저지대에 물이 마른 B 저수지가 있다고 칩시다. 둘을 연결하면 A 저수지의 물이 B 저수지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물만 내려올까요? 아뇨, 에너지가 생깁니다(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고로 근처에 영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수로에 물방아간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떡이라도 찧을 겁니다.

여기서 물은 최신 유행, 지식, 문화 상품,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어떤 것이든 다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노브들은 언제나 수로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 자체 (또는 유행, 지식, 문화상품)가 아닌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물 비유를 집어던지기 전에 한 번만 더 써먹겠습니다. 물방아간의 효율성은 수로의 너비에 따라 달라집니다. 수로가 좁을수록 수압이 높아서 효율성도 따라 높아지죠. 물론 아주아주 좁아서 물이 찔찔 새어나올 정도라도 쓸모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요.

그렇다면 스노브들이 가장 잘 번성하는 조건이 나옵니다. 본체의 유입은 힘들지만 적어도 그 이름 정도는 들어와 욕구를 조성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이게 바로 우리의 몇 년 전 상황이 아닙니까? 쉬크해지기 위해 봐야 할 영화는 대부분 외국 영화고, 그런 영화에 대한 정보도 구하기 쉽지 않고, 구하려고 해도 언어갭이 있고, 게다가 책을 읽었다고 쳐도 정작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적고... 스노브들이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겁니다!

한국판 [프리미어] 98년 4월호를 넘기다가 편집장이 모 영화 평론가한테서 들었다는 흥미진진한 고백을 읽었습니다. 한 번 인용해보기로 하겠어요.

"이젠 영화에 있어서는 전문가나 매니아가 없어진 것 같지 않소? 왜, 예전에는 누가 영화에 대한 정보를 빨리 얻는가에 따라 그런 층이 존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보 공유 시대가 되었잖우. 인터넷에 들어가면 지금 촬영중인 세계 영화가 한눈에 쫙 들어오지, 게다가 이리저리 얽어서 부대정보까지 주지--이젠 누구나 영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소 그려, 특히나 매니아라고 자처하던 층에서는 이런 현상에 당혹감마저 느끼는 것 같소, 참."

이 분의 솔직한 고백을 좀 더 읽기 쉽게 번역하면, 지금까지 평론 또는 매니아 현상이라고 여겨졌던 것들 중 상당수가 스노비즘에 불과했다는 말이 됩니다. 매니아란 자의식이 대상에 대한 애착보다 크면 그건 스노비즘이니까요(웃! 그만 정의를 해버렸군요!)

고급 스노브들은 상당히 위험한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입니다. 정보의 독점은 그들의 가치를 상승시키지만 그 독점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보급해야 하니까요. 따라서 그들이 정보를 보급하면서도 독점을 잃지 않으려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 동안 기묘한 스트립쇼들이 탄생합니다. 구체적인 예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여러 번 경험해서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그 결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스트립쇼들을 통과하는 동안 정보들은 단지 정보로만 남고 정보공유를 통한 다음 단계의 발전은 끝없이 유보됩니다. 생각해보세요. 이 나라 문화계에 페미니즘 열풍이 그렇게 요란하게 일었으니 지금쯤은 뭔가 의미 있는 결실이 나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오히려 반대죠. 우리가 수입한 건 주로 겉껍질이었고, 페미니즘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죽어라 폼을 잡아대느라 정작 생산성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거든요. 진짜 투쟁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그 똥폼 안에 묻혀 버렸습니다.

게다가 계급갈등까지 발생합니다. 종종 통신망 게시판을 통해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평론가나 매니아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반감도 그들이 그네들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들의 자존심이 긁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현상이지만 좋은 현상도 아니죠

(언젠가 [키노]에서, '우리는 영화를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에 비난받는다'라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슬프게도 그네들은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고 있습니다. [키노]를 욕하는 사람들은 키노가 영화를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에 욕하는 게 아닙니다. 그네들의 현학적인 말투가 맘에 안드는 것 뿐입니다. 그건 영화 사랑의 정도나 주장의 당위성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순전히 정치적 수완과 설득력의 문제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순수한 스노브를 찾아 헤매거나 누군가를 순수한 스노브라고 낙인찍는 것은 바보스럽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철저한 스노브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순수한 이기주의'만큼이나 현실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적어도 여러분의 친구들 중 한 명이 세르게이 에이젠슈쩨인 Sergei Eisenstein이나 듀상 마카베예프 Dusan Makavejev같은 사람들의 이름을 주절거리며 아는 척을 한다면, 그건 그 친구가 스노브라는 말도 되지만 그 사람이 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고 좋아한다는 말도 됩니다.

자신의 스노비즘을 부인하거나 스노비즘을 무시하는 것도 그만큼이나 바보스러운 일입니다. 스노비즘의 뿌리는 인간의 역사보다 오래되었습니다. 군함새의 부풀린 목만큼이나 오래 되었죠. 그것은 똥폼의 일부거나 똥폼의 친척입니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해 못하시는 분이 있다고 우기면서 외쳐보기로 하죠. 스노비즘은 생존전략입니다! 자신을 부풀리지 않으면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스노브들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알맹이가 있다면 '척'할 필요도 없겠지만, 모두에게 알맹이를 쌓으라고 하는 주장은 알맹이 있는 운 좋은 사람들의 거만한 자기 과시에 불과합니다. 저희처럼 운 없는 사람들은 주어지지도 않는 알맹이 대신 허세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노브들이 유해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저 자신 역시 상당한 골수 스노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스노브 예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스노브 존재 옹호론을 끌어들여 동족들의 존재가치를 주장하는 데 일조하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일단 스노브들은 우리네 삶의 질을 확장시킵니다. 대부분의 고급 스노브들은 정보와 문화의 첨단, 또는 그 근처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거의 보편적인 인권운동으로 자리잡은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봅시다. 게이 인권운동가들이 기본적인 양식과 지식만으로 싸워왔다면 그게 지금 수준까지 올라왔을 것 같습니까? 어림없습니다. 그건 다 지금까지 우리 같은 스노브들이 [셀룰로이드 클로젯 The Celluloid Closet] 같은 뻔한 책 한 권 달랑 읽은 것을 밑천 삼아, 지금까지 죽어라 아는 척을 해대며 바람을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쉬크해보이는 것은 공정성과 정의보다 몇 배나 더 보급에 중요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제대로 일하고 있을 때에는 정보 보급이 빨라집니다. 스트립 쇼에 실력이 없는 스노브들은 밑천이 떨어지면 잽싸게 새 유행을 수입하고 퍼트리는 데 앞장서니까요.

재즈 열풍이 그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이미 그 열풍은 지나갔지만, 그 결과 수많은 재즈팬들이 생겼고 기존 재즈팬들에게도 훨씬 만족스러운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나요?

영화에 대한 예를 들어보라고 한다면 예전에 [키노]에 실려 한동안 많은 사람들을 들뜨게 했던 공포 영화 리스트가 있습니다. 그 리스트의 방대한 내용에 감동한 공포 영화팬들은 허겁지겁 비디오를 구해 비디오를 보거나 상영회를 열었는데, 그 결과 그들은 그 리스트의 내용 중 상당수가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자료를 그냥 베낀 것이며 그 결과 발생한 수두룩한 오류가 분단위로 떨어진다는 걸 알고 열받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들이 식견을 늘리고 자기 생각을 쌓아올린 것 역시 그 스노비시한 리스트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결국 아무도 손해본 사람은 없었던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직 남았습니다. 스노브들은 예술가들을 먹여 살립니다. 스노브들이 없었다면 수많은 아트 영화 제작자들은 파산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아트 영화의 스매시 히트도 스노브들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희생]을 보았다는 10만 관객들이 다 타르코프스키 Andrei Tarkowsky가 좋아서 왔겠습니까? 스노브들은 개인적인 예술가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돕고 그 결과 우리의 예술 환경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물론 그네들이 다 그 작품들을 이해하고 좋아해 주기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그건 너무 사치스러운 기대입니다.

그렇다면 대충 이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대충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자신이 스노브라는 것을 인정하면 스노브들의 허세는 줄어들고 생산성은 높아집니다. 우리가 다른 스노브들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우리의 자존심이 긁힐 가능성도 낮아집니다. 결국 공존과 자기 인정이 일차적인 해답입니다. (9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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