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안녕하세요, 듀나입니다.

파프리카 안녕하세요, 파프리카입니다.

듀나 우리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사를 나누는 동안 (도대체 누가 우리 목소리를 듣는다고요!) 오늘 우리가 볼 영화 [장화, 홍련]이 시작됐습니다. 이병우의 예쁘장하지만 불길한 음악이 깔리는 동안 크레딧 배경이 되어주는 건 윌리엄 모리스의 벽지입니다. 지금까지 벽지에 붙어 있는 척 하던 CG 꽃들이 서서히 날아가고 있군요.

파프리카 '장미꽃'과 '붉은 연꽃'이라는 원작 주인공의 이름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화는 굉장히 많은 꽃의 모티브를 사용하고 있지요. 재미있는 건 초반에 잠시 나오는 꽈리를 제외하면 이들이 모두 벽지나 옷장의 무늬처럼 인공적인 이미지라는 거예요. 이들은 모두 관찰과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 예술적 산물들이지 진짜 꽃들은 아닙니다. 마치 이 영화의 수연이 진짜 수연이 아니라 수미가 재구성한 환영인 것처럼요.

듀나 어느 쪽이건 한국 고소설에 나오는 두 주인공의 이름이 윌리엄 모리스라는 엉뚱한 이름과 만나는 과정은 흥미진진합니다. 이 영화에는 이런 식의 황당한 문화적 교류의 흔적이 많죠.

많이들 이 영화의 이야기가 그대로 서구권으로 전환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아마 리메이크 판권을 사들인 드림웍스 사람들도 그걸 염두에 두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무대를 옮긴다면 이 영화 고유의 맛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은 영국인들에겐 당연한 환경입니다. 하지만 [장화, 홍련]의 이 집은 문화적 충돌로 가득 찬 이질적이고 낯선 공간입니다. 두 느낌은 전혀 다르지요.

파프리카 그러는 동안 벌써 오프닝 크레딧이 끝났습니다. 물이 담긴 쟁반이 보이네요. 문 소리가 나고 쟁반 안에 담긴 물에서 파문이 일고요.

듀나 참으로 휑한 병원 건물 내부입니다. 하얀 벽에 물이 담긴 쟁반, 탁자 하나와 의자 둘 빼면 아무 것도 없네요. 보통 정신병원은 이보다 더 따뜻해보이는 곳이 아니던가요?

파프리카 의사 선생님이 손을 씻고 있지만 사실 저기서 손을 씻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지 않나요? 김지운은 씻어버리고 싶은 기억에 대한 상징이라지만 의사와 그 상징이 연결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요. 수미가 손을 씻는 장면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는 정갈하고 병원다운 느낌을 추가하는 것 이외엔 별다른 의미가 없는 듯해요.

머리칼로 얼굴이 덮인 수미가 간호사에게 이끌려 들어옵니다. 감독은 수미와 은주를 헛갈리게 하고 싶었다지만 사실 척봐도 수미 역의 임수정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키랑 체격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임수정은 개봉 당시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염정아가 아니란 건 분명합니다. 임수정은 염정아보다 더 작고 훨씬 가냘프잖아요.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해?"라고 의사가 말하네요. 굉장히 노골적인 힌트지요? 인격 분열에 대한 힌트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잖아요. 단지 문제는 이 환자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누구냐입니다. 의사가 사진 속의 계모 은주를 가리키며 "여기 이 사람 누구지?"라고 질문하는 걸 보고 대부분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아, 저 아이가 자신을 계모라고 생각하고 있나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스토리 전개 도중 그걸 까먹겠지만요.

듀나 의사는 "그날 일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하고 묻습니다. 그 충격적인 일은 아마 수연과 엄마의 죽음일 겁니다. 수미가 고개를 드네요. 너무나 분명한 임수정의 실루엣이 보입니다. 물론 눈은 여전히 가려져 있고요. 이후로 수미와 은주의 얼굴은 틈만나면 머리칼로 반쯤 가려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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