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안녕하세요, 듀나입니다.

파프리카 안녕하세요, 파프리카입니다.

듀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성냥불이 켜지고, 성냥불은 초에 붙고, 촛불은 천 조각에 옮겨붙습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정성껏 교환일기를 장식하는 한 소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 사람은 이 영화의 세 주인공들 중 한 명이고 모든 사건들의 시작인 효신입니다.

그 위로 "첫째 날, 한 아이가 죽었다. 머리가 텅 비어진 채, 아마도 진실을 기억해 냈나 보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효신의 시가 들립니다. 어딘지 모르게 에드워드 고리의 [The Gashlycrumb Tinies]와 이상의 [오감도]를 섞은 듯하죠? 하여간 거의 수학적이기까지 한 차가운 법칙에 의해 눈이 뽑히고 다리와 팔이 잘린 채 살해되는 아이들의 이미지는 굉장히 섬뜩합니다. 삭제된 장면에 따르면 이 시는 효신의 악보에 빨강 글씨로 씌여져있던 것인데, 실제로 이 시는 그 잘려나간 장면에서 정말 호러 효과를 주기 위해 사용되었죠.

시는 "일곱째 날, 한 아이가 죽는다. 아마도...."로 끝이 납니다. 여기서 갑자기 이 무서운 자장가의 법칙이 바뀝니다. 여섯 번째 아이들까지는 시스템(그것이 무엇이건)의 규칙에 의해 매정하게 '살해'당했지만, 일곱 번째 아이는 다릅니다. '아마도'라는 막연한 단어와 그 뒤에 이어지는 간단한 말줄임표는 그 일곱 번째 아이에게 불분명한 자유의지를 줍니다.

파프리카 처음에 나레이션은 효신의 목소리로만 시작되지만 곧 돌림노래처럼 두번째 목소리가 따라붙지요. 이런 겹쳐진 목소리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교환일기'의 성격을 상징하기도 하고 앞으로 이 영화가 다루는, 진실과 허상이 교차하는 모호한 세계를 미리 경고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하는 동반자살의 장면이 앞에서부터 조금씩 인서트되다가 본격적으로 이어집니다. 붉은 끈으로 발목을 함께 묶은 효신과 시은이 물 속으로 뛰어들지만 겁에 질린 시은은 끈을 풀고 효신의 어깨를 밟으며 헤엄쳐 올라가고 효신은 원망의 눈길로 그런 시은을 바라보며 가라앉습니다.

듀나 고난도 장면은 수중발레 대표선수들이 스턴트를 했다고 하더군요. 이영진은 수영을 못해서 이 장면을 찍는 게 무척 힘들었다고 하고요.

파프리카 수영복을 입은 시은이 수영장 물에서 올라오는 것과 함께 영화는 다시 현실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도대체 이 환상은 누구의 것인가요? 효신? 시은? 아니면 감독?

듀나 왜 꼭 누군가의 것이어야하지요?

억지로 답해야 한다면, 그건 영화에 속해 있겠지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반쯤 몽롱한 꿈과 같은 영화로, 경계가 분명한 이야기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 이 영화는 교환일기와도 닮아있기도 해요. 교환일기에는 복수의 일인칭 독백들과 대화들이 등장하지만 한 명의 화자가 그 일기장을 독점하는 건 아니지요. 필체와 같은 추가적인 정보들을 제외하면 특정 문장들은 어떤 사람에게도 속해있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때부터 그 문장은 독자들의 것이 되지요.

동반자살의 상징적인 이미지도 효신과 시은 양쪽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누구의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상황을 상징하느냐겠지요.

파프리카 다음 장면에서 시은은 운동장을 달리고 있습니다. 한참 달리다가 멈추어선 시은의 귀 속으로 카메라가 빨려 들어갑니다. 물론 우리는 청각장애를 앓는 시은의 귀가 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라는 걸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삭제된 후반 장면에 따르면 효신은 그런 시은을 뒤에서 말없이 바라보며 말을 걸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결국 포기하고 일기장을 수돗가에 올려놓은 채 사라지지만요.

듀나 프랑스판 DVD에 실린 삭제 장면들은 그것만 모아도 영화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많죠. 이 삭제 장면들은 종종 본편 장면들과 함께 재편집되어 팬들 앞에서 상영되곤 했어요. 이 비공식 '확장판'은 3시간을 훌쩍 넘기는 '대작'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몇 개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건 극장판이, 두 감독들의 의도가 완벽하게 반영된 작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에 속해있는 다른 작품들처럼,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시간에 쫓기면서 급하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촬영은 각본이 미완성인 단계에서 시작되었고 결말이나 스토리 라인도 중간중간에 많이 바뀌었지요. 최종편집 역시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진행되었고요. 물론 [여고괴담]의 전통을 따르는 호러 영화를 시장에 내놓으려는 제작진의 요구에 굴복한 부분도 많았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동안 '노컷필름'으로 불렸던 '확장판'이 최종 버전이라고 우길 필요도 없습니다. 삭제 장면들이 잘려나간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니까요. 극장판이 가장 이상적인 버전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 각본들과 삭제 장면들로 유추할 수 있는 '다른 버전'들에 비하면 낫거든요.

여기에서 우린 조금 재미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삭제 장면들에서 얻은 정보를 극장판을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도 되는 걸까요? 삭제판을 위해 찍힌 장면들은 '정말로 일어난 일들인가요?' :-)

파프리카 드디어 타이틀이 떴습니다. 검은 바탕에 붉은 글씨로, 왼쪽엔 [메멘토 모리]라는 라틴어 제목이, 오른쪽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라는 우리말 제목이 쓰여져 있네요. 전 이 타이틀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산만하잖아요.

듀나 감독들은 원래 [메멘토 모리]라는 제목을 밀었습니다. 하지만 제작진에서는 [여고괴담]의 속편이라는 걸 더 강조하고 싶어했지요. 이 타이틀은 그 두 주장을 모두 살리기 위한 일종의 타협입니다. 이해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메멘토 모리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까지는 허락해주어도 되었을 걸 그랬어요.

파프리카 그래도 이 영화는 해외에서 [메멘토 모리]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 않나요?

듀나 감독들도 [메멘토 모리]라는 제목을 더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심지어 저번에 제가 이 영화의 항목을 IMDb에 올렸을 때, 민규동 감독한테서 제목을 [Yeogo goedam II]에서 [Memento Mori]로 바꾸어 줄 수 있겠냐는 메일을 받기도 했거든요. 전 제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답장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파프리카 [Yeogo goedam II]를 [Yeogo goedam du beonjjae iyagi]로 고쳐야 정확하지 않나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도 1편인 [여고괴담]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힘겹게 쟁취한 제목이잖아요.

듀나 그러게요. 하지만 지금 그러면 혼란을 야기할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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