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드디어 학교는 본격적으로 귀신에 들립니다. 중앙현관문은 잠겨 열리지 않습니다. 스피커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요. 삭제 장면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괴상한 일들을 보다 많이 담고 있었습니다. 최종 편집본에서는 교사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거의 다 잘렸지요. 갑작스러운 하혈을 하거나 옥수수를 먹다 이가 빠지거나 하는 것들 말이에요.

파프리카 한동안 기죽어 있던 지원은 이 장면에서 완전히 기가 살았습니다. 자신을 '절벽'이라고 부르는 생물 선생의 작은 키를 대놓고 놀려댄 뒤 당당하게 퇴장하지요. 아마 고형석에게 따귀를 맞은 뒤 좀 컸나 봐요.

듀나 공효진의 그 경멸하는 듯한 표정이 일품이죠. 공효진은 이 영화에서 가장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입니다. 이 영화가 발굴한 가장 재능있는 인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여기선 역이 작다는 게 유리하게 먹히기도 했을 거예요. 지원은 그냥 사실적인 고등학생처럼 굴기만 해도 반은 넘어가는 역이니까요. 심지어 김민희가 연기한 연안만 해도 후반부엔 상당히 멜로드라마틱하게 자신을 과장하는 부분이 있는데, 지원에겐 그런 부분도 없었거든요.

하여간 아까 당당하게 퇴장했던 지원은 다시 중앙홀로 나옵니다. 뒷문도 열리지 않았나봐요.

그러는 동안 고형석은 효신의 물건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가방 구석에 숨어 있는 생리대가 보이나요? 그런데 이 사람 카세트 테이프를 풀어 뭘하는 건가요?

파프리카 여자 얼굴을 그리는 것 같지 않나요?

듀나 아픈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줄 서 있습니다. 이제 학교의 귀신들림은 육체적인 증세로 옮겨갑니다. 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돌고 수도꼭지에서 갑자기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화장실 변기에서는 아까 날아다니던 새의 시체가 뻘건 핏물을 흘리며 떠 있고요.

파프리카 교무실에서 고형석은 자기 얼굴을 쓰다듬는 효신의 유령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정말 소망성취환상이군요.

듀나 다시 체육관입니다. 연안은 이제 내일 추모 공연을 사보타지하려 합니다. 중창단 앞에서 내일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죠.

승연은 연안의 짜증나는 행동을 이들의 단골 무기인 '재수없다'는 말로 맞습니다. 하지만 "왜, 효신이 살아있을 땐 그렇게 괴롭히드니 죽고 나니까 좀 찔리나 부지? 왜 이렇게 폼잡어?"라는 연안의 반격은 짜증나긴해도 맞긴 맞죠. 어떻게 보면 가장 위선적인 사람은 승연이거든요.

파프리카 위선적이라기보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겠지요.

듀나 승연과 연안이 싸우는 동안 갑자기 불이 나갑니다. 그 순간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피아노를 치는 효신의 유령이 나타납니다. 이 장면도 조금 과잉이었어요. 피아노 귀신처럼 장르 안에서 자주 다루어진 재료를 사용할 때는 기존 장르 영화들을 조금 더 연구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이 장면은 너무 거칠고 전형적이에요.

파프리카 다시 영화는 중앙홀로 옮겨갑니다. 중창반 아이들은 달아나고 화분은 떨어지고 수족관 어항은 깨지고... 그러는 동안 일기를 든 민아가 계단으로 내려옵니다. 민아와 지원은 만나고 연안은 완전히 넋이 나갔어요. 시은은 이제 체육관에 들어와 있고요. 그리고 그 위태로운 복도에서 거북이가 걸어다니는군요. 참, 깨지는 어항 앞에서 근사하게 굴러가는 학생은 사실 교복을 입은 스턴트맨 아저씨입니다.

시은은 아래층의 난장판 속에 섞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층 복도에 있던 민아는 그런 시은을 보고 일기장을 든 채 달려오고요. 민아는 연안과 지원을 만나지만 그들을 뿌리치고 시은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러다 군중 속에 쓸려 넘어지고 말아요.

그러는 동안 시은은 중창반 아이들이 빠져나간 체육관으로 들어왔습니다.

듀나 민아는 바닥에 쓰러진 채 멍한 표정으로 탈출한 거북이를 바라봅니다. 그러는 동안 중앙홀은 갑자기 환상 속의 공간으로 바뀝니다. 누구의 환상일까요? 자주 말하게 되지만 그 답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거북 소녀가 생일 케익을 들고 나오고 중앙홀 계단에서 아이들은 효신과 시은에게 박수를 칩니다. 그 안에는 민아와 지원도 포함되어 있고요. 연안은 케익을 가져와 효신과 시은에게 가져가는 척하다가 케익을 던져버리죠. 이 장면은 [캐리]와 아주 비슷해 보이는데, 정작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파프리카 시은은 체육관에 누워 있습니다. 시은의 몸 밑에 악보가 놓여있는 게 보이지요? 그건 [키리에 엘레이손]의 악보인데, 원래 설정에 따르면 효신이 직접 작곡한 곡인가 봅니다. 효신은 그 악보에 맨 앞에 나오는 시를 빨강 펜으로 썼어요.

듀나 비가 내립니다. 민아는 위를 올려다봅니다. 중앙홀에서 패닉 상태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우린 이게 곧 효신의 눈동자에 비친 그림자라는 걸 알게 됩니다. 효신의 커다란 얼굴이 중앙홀의 천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예요. 무정한 신처럼 말이에요. 아이들은 이제 동쪽현관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쪽 문도 막혀있는 건 마찬가지에요.

파프리카 그러는 동안 시은은 오후에 있었던 마지막 만남을 회상합니다. 효신은 울먹이면서 다시 시작하자고 애원했고 시은은 키스하려는 효신을 밀치지요. 효신은 말합니다. "내가 챙피해?" 이 절실한 애원은 자살을 작정하고 학교에 온 아이의 태도 같지는 않군요.

듀나 그렇다고 걔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에 충실했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겠어요? 효신은 아마 자신을 세상과 연결시켜줄 마지막 끈을 확인해본 것이겠지요. 그냥 가볍게요. 그러나 아무리 얘가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고 해도 그게 쉬운 일이었겠어요?

시은은 울먹이면서 효신을 뒤로 하며 옥상에서 내려옵니다. 그 위로 나레이션이 겹쳐져요. "효신아 넌 참 나쁜 애야, 정말 나뻐. 단 한번도 널 미워한 적 없는데 이젠 영원히 미워할 거야. 생일축하해." 딱한 아이 같으니.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던 거예요. 너무 쉽게 말을 뱉었고 너무 늦게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어요.

파프리카 그 순간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중앙현관의 문이 열립니다. 중앙홀을 내려다보던 효신의 얼굴은 천천히 하늘로 사라지고 아이들은 달아납니다. 민규동 감독은 아직도 이 장면의 특수효과가 맘에 안드는 모양이더라고요.

듀나 교무실. 고형석의 자살한 시체가 책상 위에 엎어져 있습니다. 손목 근처엔 피가 괴어 있고요. 피가 조금 더 있어야 그럴싸해 보이는 건데. 하여간 참 약한 남자였어요. 이 험하고 지저분한 세상을 살기엔 너무 순진했던 건지도 모르죠.

파프리카 아이들이 빠져나간 중앙홀에는 민아만이 벤치에 누워있습니다. 민아는 일어나고 텔레파시로 지나가던 시은을 부릅니다. "미안해, 일기 잃어버렸어." "괜찮아, 일기는 다시 쓰면 되니깐." 얘들은 시은과 민아로 대화를 나누는 걸까요, 아니면 시은과 효신으로 대화를 나누는 걸까요, 아니면 시은과 자신을 효신으로 생각하는 민아가 대화를 나누는 걸까요? 이 대화는 시은이 드디어 민아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뜻일까요? 둘에겐 미래의 희망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민아는 여전히 효신의 영매로, 시은은 효신의 죽음으로 끝난 과거에 속해있는 걸까요?

듀나 답이 무엇이건 시은은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시은을 따라 올라간 민아는 옥상 문을 엽니다. 문이 열리자 환한 빛이 새어나옵니다.

원래 영화는 이 뒤에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할 생각이었습니다. 민아는 옥상문을 열면서 다시 양호실에 누워있던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 뒤로 그 날 있었던 일들이 조금씩 변형된 채 반복되지요. 민아는 시은이 떠난 뒤 혼자 남겨진 효신에게 "시은이는 나를 사랑해!"라고 외쳐대기까지 합니다.

이 아이디어도 잘 다듬었다면 나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전 지금의 결말이 더 좋습니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우며 철저하게 해석불가능이지요. 지금까지 우리가 갇혀 있었던 이 혼란스러운 카오스는 아귀가 맞는 어떤 논리적 해석이나 결말도 허용하지 않고 하얀 빛과 함께 사라집니다.

파프리카 남은 건 과거 뿐입니다. 효신은 옥상에 앉아 아래를 응시하다 추락합니다. 그 뒤로 효신이 캠코더에 남긴 "해피 버스데이 투 유"가 들려옵니다. 박예진의 노래 실력은... 여기서도 그렇게까지 좋다고 할 수는 없네요. :-)

듀나 휴우, 드디어 영화가 끝났군요. 효신과 시은의 옥상장면들이 흐르는 동안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답니다.

영화가 끝났지만 과연 우린 무엇을 알게 되었나요? 우린 효신이 왜 자살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린 학교에 정말로 효신의 유령이 찾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우린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도 몰라요. 모든 게 교환일기를 읽다 양호실에서 잠이 든 민아가 꾼 꿈일 수도 있어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무엇을 성취한 영화일까요? 완벽한 작품은 절대로 아니에요. 헛걸음질을 한 부분도 많았고 원래의 의도가 제대로 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제작자나 감독이 기대했던 어떤 완벽한 완성도를 성취했다면 오히려 지금과 같은 맛은 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풋내기 감독들과 배우들이 넘쳐나는 야심과 짧은 경험으로 만들어낸 이 깨어진 듯하고 불안정한 아름다움은 첫사랑처럼 평생 단 한 번만 도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인지도 모르죠. (0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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