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일뿐일까?

2010.02.22 13:42

DJUNA 조회 수:2806

저번 주말에 개봉된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인사이더]는 모두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그것도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은 사건들이지요. 다들 십년도 채 되지 않았어요. 이 두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살아있고 또 영화의 묘사에 항의를 할 입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두 영화는 다양한 소송과 항의, 공격에 휩싸였습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경우는 벌써 두 개의 소송에 말려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전 [인사이더]의 실존인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돈도 많고 권력도 있는 '큰 사람'들입니다. 영화가 그들을 어떻게 그리건, 그들은 그런 걸 참을 의무가 있습니다. 게다가 전 담배 회사 이사들의 인권이 어떻게 파괴되었느냐 따위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어요.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다릅니다. [인사이더]의 당사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우연히 끔찍한 살인 사건에 말려든 보통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권은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지만, 사실 그들의 권리는 [인사이더] 사람들의 권리보다 '더' 존중되어야 마땅하죠. 그들에게 사태에 맞설 힘이 별로 없는 것은 분명하니, 그래야 공평합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묘사에 가장 화를 내는 사람은 주인공 브랜든 티나의 여자 친구였던 라나 티스델입니다. 이미 한 아이의 엄마이고 곧 결혼을 앞둔 티스델은 이 영화가 자신을 '게으르고 동성애자이며 브랜든의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항의했습니다. 요새는 좀 주춤한 모양이고 그 사람이 제기한 소송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도 모릅니다만, 몹시 기분이 상했을 거예요.

감독이자 공동 작가인 킴벌리 피어스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라나를 그렇게 그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진리를 보기 마련입니다. 라나가 그런 인물로 묘사된 것은 그게 이 영화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로서 킴벌리 피어스는 양심에 꿀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예술품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상품이기도 하고, 경제적 투자 대상이기도 하며, 소송 대상이기도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순수하게 예술작품으로만 남아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런 것은 판타지에 불과합니다. 만약 [소년은 울지 않는다]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예술가의 편을 듭니다. 표현의 자유니, 예술가의 권리니 하는 그럴싸한 말들을 주워 섬기면서요. 하지만 그건 습관적인 반응일 뿐, 깊이있는 사고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닙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은 원래 이런 식의 예술가 옹호에 익숙해져 있거든요. 그건 기계적인 반응일뿐입니다.

역사도 보통 예술가들의 편을 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승자의 역사입니다. 훌륭한 예술품들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습니다. 당사자가 뭐라고 떠들어대건 그들은 언젠가 지겨워지거나 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좋은 예술작품은 몇 백년이 지나도 멀쩡하죠. 라나 티스델이 죽어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진 뒤에도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라나는 여전히 살아남아 미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곧 영화 속의 라나는 실제의 라나를 눌러버리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의 권리를 무조건 옹호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정복했다고 해서 로마가 카르타고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합니까? 그건 아니지 않아요? 아무리 예술 작품이 개입되었다고 해도 인권문제는 언제나 인권문제입니다.

제가 라나 티스델이었다면 영화의 묘사에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표시하지 않았을 겁니다. 영화 속의 라나는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거든요. 실제의 라나 티스델이 불평하며 내세웠던 그 모든 것들은 영화 속의 라나를 더 아름다운 캐릭터로 만드는 데 공헌했습니다. 전 실제 라나가 영화 속의 라나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클로에 세비니라는 근사한 배우가 그 캐릭터를 너무나 멋있게 연기하지 않았나요? 저 같았다면 오히려 황송해했을 거예요.

그러나 네브라스카에 사는 노동자 계급의 평범한 여성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 사람에겐 좀 과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의 라나를 버리기도 싫고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는 영화일뿐'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제대로 먹힌다면 모두가 이깁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사람들에게 먹힐까요? 정말 영화는 영화일뿐일까요? (0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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