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의 가장 큰 이변은 [인생의 아름다워]의 놀랄만한 선전이었습니다. 이 작은 이탈리아 영화는 수많은 메이저 할리우드 영화들을 밀어내고 자그만치 세 개나 되는 상을 가져갔지요.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할리우드가 베니니의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일까요? 점점 미국 영화계가 국제적이 되어 가는 걸까요? 아니면 국제 시장에 대한 아부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진짜 원인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거든요.

[인생은 아름다워]가 정말로 감사를 표해야 할 영화가 있습니다.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아]가 바로 그 영화죠. 감히 말하지만 이 영화가 없었다면 [인생의 아름다워]는 외국어 영화상의 후보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을 겁니다.

왜냐고요? 대충 인과를 더듬어 보죠. 1995년 미라맥스에서는 앨런 페이튼의 고전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아]의 두번째 영화판을 내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 미라맥스의 오스카 겨냥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라맥스의 예상과는 달리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아]는 미적지근한 평 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로는 오스카로 끌고 가기엔 한참 부족했어요.

어째야 할까? 여기서 '인식의 전환'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라맥스는 당시 자사가 배급하던 [일 포스티노]를 외국어 영화상에 밀려 하고 있었는데, 감독이 영국인이라는 이유로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의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는 좌절되고 말았어요.

위기가 쌍으로 겹친 셈이죠. 하지만 미라맥스의 철혈 마케팅 팀은 이 두 위기를 오히려 무기로 삼았습니다. 외국어 영화상 후보 지명이 불가능해진 [일 포스티노]로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아]의 구멍을 메우려고 했던 겁니다.

결과는 놀랄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일 포스티노]는 작품상, 남우 주연상과 같은 굵직한 상의 후보 지명을 받았으니까요. 작품상이 힘들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가 오스카에서 이 만큼의 성과가 가능했던 것도 다 [일 포스티노]가 초석을 깔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일 포스티노]를 위해 미라맥스가 하도 요란하게 홍보를 해대는 통에 할리우드 사람들은 '미라맥스가 배급하는 외국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다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겨버렸던 겁니다.

물론 미라맥스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베니니는 미국의 거의 모든 토크 쇼에 나왔고 유명한 파티엔 다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쉽게 잊을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지요!

몇몇 저널리스트들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성공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교하고 싶어하는 모양입니다. 뭐,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생각하라고 해요. 하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그냥 이겼나요? 천만의 말씀. 뒤에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빽이 버티고 있었어요. 오히려 싸움은 다윗에게 유리했답니다.

마찬가지로 베니니의 뒤에는 미라맥스의 막강 마케팅 부서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라맥스의 공격적 마케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는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지요. 베니니는 시작부터 유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걸 늦게 눈치챘을 뿐입니다.

다시 돌이켜 보면, 베니니의 승리는 거인을 이긴 소년의 승리와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거인과 함께 다른 거인과 싸운 소년의 승리라고 할까요. 결코 이변도 아니었고 또 비할리우드적인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9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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