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잡담

2010.03.05 09:56

DJUNA 조회 수:2840

1. 중계

올해 시상식은 HBO로 중계사를 옮긴 뒤 처음으로 맞는 시상식이었습니다. 강한섭, 방은진 콤비의 진행은 예전과 같았지만 그래도 다른 점이 두 개 있었습니다. 전에는 대충 넘어갔던 오프닝 쇼와 레드 카펫 쇼를 포함시켰고 그 부분 동시 통역은 자막 처리를 했거든요.

하여간 프리 쇼 중계는 반가웠습니다. 우리가 아카데미를 보는 진짜 이유가 뭔데요. 비싼 옷들을 입은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나와 펼치는 구경거리가 아닌가요? 우리의 속물적인 근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런 것들도 보여주어야죠.

더 맘에 들었던 것은 프리 쇼의 자막 중계였습니다. 물론 번역은 엉망이었지만 적어도 자막을 무시하고 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직접 귀를 기울일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요. 이게 본상 시상식까지 이어졌으면 좋았을텐데... 아니더군요. 결국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방송국의 재방송을 봐야할까봐요.

위에서는 자막이 없는 걸 불평했는데, 자막이 있는 걸 불평할 부분도 많았습니다. 특히 인 메모리엄 장면에서 [메모리얼 트리뷰트]라는 자막이 초반 절반 동안 사망자들의 이름을 모조리 가려버린 건 정말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다들 반성하시리라 믿습니다.

2. 길이

올해 쇼는 짧았습니다. 하긴 쇼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수상 소감까지 억지로 줄이려 작정한 해니 그 정도 짧아진 건 당연하겠지요. 다들 스톱워치를 보고 안심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좀 재미가 덜하고 심심하더군요. 스티브 마틴은 좋은 코미디언이고 진행도 잘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시상식이 뼈만 남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왜 그렇게 길이를 걱정하는지 생각하게 돼요. 어차피 1년에 한 번 있는 쇼가 아닙니까? 몇 십 분 쯤 더 보는 게 그렇게 대단한 희생인가요?

3. 수상 결과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참고하실 분들을 위해 수상작 리스트를 여기 올려놓습니다. 가장 위에 있는 부분일수록 나중 수상작입니다.

Best Picture (announced 8:50pm PT) 
Gladiator

Best Director (announced 8:47pm PT) 
Steven Soderbergh - Traffic

Best Original Screenplay (announced 8:41pm PT) 
Almost Famous - Cameron Crowe

Best Adapted Screenplay (announced 8:39pm PT) 
Traffic - Stephen Gaghan

Best Actress (announced 8:27pm PT) 
Julia Roberts - Erin Brockovich

Honorary Academy Award (announced 8:20pm PT) 
Ernest Lehman

Best Actor (announced 8:08pm PT) 
Russell Crowe - Gladiator

Best Original Song (announced 8:03pm PT) 
"Things Have Changed" - Bob Dylan, from Wonder Boys

Best Foreign Film (announced 7:53pm PT)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 Taiwan

Irving Thalberg Award (announced 7:35pm PT) 
Producer Dino De Laurentiis

Best Original Score (announced 7:26pm PT)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 Tan Dun

Best Visual Effects (announced 7:09pm PT) 
Gladiator - John Nelson, Neil Corbould, Tim Burke & Rob Harvey

Best Documentary Feature (announced 7:01pm PT) 
Into the Arms of Strangers

Best Documentary Short (announced 6:59pm PT) 
Big Mama

Honorary Academy Award (announced 6:52pm PT) 
Cinematographer Jack Cardiff

Best Make-up (announced 6:46pm PT) 
Dr. Seuss'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 - Rick Baker & Gail Ryan

Best Cinematography (announced 6:37pm PT)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 Peter Pau

Best Sound Editing (announced 6:30pm PT) 
U-571 - Jon Johnson

Best Sound (announced 6:28pm PT) 
Gladiator - Scott Millan, Bob Beemer & Ken Weston

Best Supporting Actor (announced 6:21pm PT) 
Benicio Del Toro - Traffic

Best Costume Design (announced 6:15pm PT) 
Gladiator - Janty Yates

Best Animated Short Film (announced 6:03pm PT) 
Father and Daughter

Best Live Action Short Film (announced 6:02pm PT) 
Quiero Ser (I want to be)

Best Film Editing (announced 5:58pm PT) 
Traffic - Stephen Mirrione

Best Supporting Actress (announced 5:52pm PT) 
Marcia Gay Harden - Pollock

Best Art/Set Direction (announced 5:48pm PT)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 Tim Yip

보시면 아시겠지만 [초콜렛]을 제외한 다른 네 편의 작품상 후보들이 골고루 상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글래디에이터]가 5개 부분을 수상했고 [와호장룡]과 [트래픽]이 4개 부분을 수상했으며, [에린 브로코비치]는 알짜배기 상 중 하나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글래디에이터]가 작품상을, [트래픽]이 감독상을, [와호장룡]이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으니, 큰 상도 참 사이 좋게 나누어 가진 셈이지요. [초콜렛]은 아무 상도 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를 위해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수상하지 못할 건 당연했으니까요.

작품상 후보가 아니었던 작품 중에는 [폴록]과 [올모스트 페이머스]가 돋보였습니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각본상 수상은 당연했지만, [폴록]에서 마샤 게이 하든이 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것에는 모두 놀랐을 겁니다. 저 역시 놀랐지만 좋아하는 배우라 괜히 기분이 좋군요. 영화를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요.

특별히 이 수상결과를 놓고 불만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들 아카데미의 기준 안에서 자기 값어치를 한 것이지요. 그래도 조금 재미있는 결과를 볼 수 있는데... 스티븐 소더버그의 감독상 수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선 올해처럼 감독상과 작품상에 대한 예측이 극단적으로 달라진 해는 없었죠. 다들 [글래디에이터]가 상을 탈 거라고 예측했으면서도 리들리 스코트가 감독상을 탈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더욱 재미있는 건 소더버그가 두 개의 영화로 감독상 후보에 올라서 하나를 챙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카데미 상의 매커니즘을 대충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소더버그에게 쏟아진 찬사와 두 개의 영화로 동시에 후보로 오른 것 때문에 하나도 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그리고 [에린 브로코비치]가 [트래픽]보다 훨씬 떨어지는 영화라는 점이 교묘하게 작용한 결과일 겁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조금 더 연구해봐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4. 아카데미 상의 범위

올해 가장 관심을 모은 영화는 [와호장룡]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엔 지나치게 외국 영화였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와호장룡]만큼 수상 가능성이 높았던 영화도 없었죠. 자막을 읽어야 하는 영화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는지 결국 작품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선전이기는 했어요.

여기서 우린 재미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1. 왜 우리는 아카데미상이라는 국내 영화상에 그렇게 매료되는 걸까요? 2. 아카데미라는 국내 영화상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1번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습니다. 칸느 영화제를 예로 들어보죠. 매년 마다 칸느에서는 수많은 영화들이 몰려오고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과 같은 굵직한 상들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화에 대해 과연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나요? 거의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할리우드 주도의 영화 취향 속에서는 들어올 영화가 많지도 않고요.

하지만 우리는 할리우드 영화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 상이 시상될 무렵에는 그 중 상당수 영화들을 본 상태입니다. 올해만도 그래요.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섯 작품들이 시상식 이전에 모두 개봉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우린 후보작들의 리스트를 직접 검토하면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겁니다.

결국 아카데미가 아무리 국내상이라고 해도 그 국내 영화들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고 친숙해 있는 영화들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사방에서 날아온 알지도 못하는 영화들이 경쟁하는 영화제보다 아카데미에 더 쏠리는 건 당연하지요.

아카데미가 최근들어 점점 '국제적'이 되어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상의 국제적인 영향이 커지자 해외 영화의 영향이 역으로 들어오는 것이지요. [와호장룡]의 성공은 중국어권 영화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 국내 영화의 국제적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0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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