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켓의 규칙과 범위

2010.02.22 13:25

DJUNA 조회 수:2095

1.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허풍스러운 자화자찬을 목에 걸고 마치 우리가 최고의 문명인 쯤 되는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한국인들은 그렇게 예절바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어느 기준으로 보아도 지극히 무례한 사람들이죠.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근처 시내에만 나가봐도 알 수 있죠. 우리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식당 안에서 아이들을 오줌 누이는 엄마에서부터 공항에서 고스톱 판을 벌이는 아저씨들까지 다양한 예들이 '나 봅쇼'하고 널려 있습니다.

우린 원래부터 이렇게 무심한 종족들이었던 걸까요?

글쎄요. '예'에 목숨을 걸었던 조선 시대 양반들은 분명 자기 나름대로 '예절바른'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락한 것일까요?

어림없는 소리. 내기 걸어도 좋지만, 17세기 조선 시대의 양반들이 현대 도시에 와서 돌아다닌다면 그 사람들은 지독하게 무례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냐고요? 당시 사람들이 '예절'이라고 믿었던 것은 엄격한 계급 사회 안에서 상하 관계를 고정하는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 집 앞에 서서 "이리오너라!"를 외쳐대던 그 사람들의 행동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거만하고 공중도덕을 모르며 무례한가요?

현대의 예절은 그것과 거리가 멉니다. 현대의 예절은 우리가 불특정 개인이나 다수와 1대1로 맺는 관계를 조절하는 규칙입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시대의 규칙입니다. 현대식 예절이 보편화되려면 민주적인 생각이 우리 행동철학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례한 민족이 된 이유는 이로써 명백해집니다. 우리는 조선 시대 예절의 형태를 버림으로써 현대인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나마 먹히던 예절의 기능적인 면을 버렸을 뿐, 그 옛날의 지배와 복종이라는 틀은 그대로 물려받고 있습니다. 결국 우린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는 지배와 굴종의 사도매저키즘적 행위를 주고받고 공공장소에서는 야만인처럼 구는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2.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왜 기타등등란이 아닌 영화낙서란에서 하냐고요?

그건 영화관이란 곳이 공공 예절이라는 기본적인 규약에 의해서만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영화관에서 체험한 불쾌한 경험들이 다 어디서 나왔는지.

형편없는 시설이라고요? 물론 시설도 한 몫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시설에 신경을 쓸 만큼 예민한 관객이라면 애당초부터 그런 극장에는 가지도 않을 겁니다. 진짜 짜증을 유발하는 것은 영화관 안의 무례한 사람들과 무례한 극장의 태도입니다.

끝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에서부터 옆 사람은 생각도 안하고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 커플, 플라스틱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감자칩을 씹어대는 아줌마, 뻣뻣하게 목을 세우고 뒷 사람의 시야 절반을 가로막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는 파렴치한까지 영화관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전세계적인 분노를 사고 있는 핸드폰의 경우엔 차라리 쉽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게 형편없는 매너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극장 안에서 핸드폰이 작동되지 않도록 막는 하드웨어도 개발되었어요. 좀 있다 보면 그런 기기들도 의무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보다 경계가 불분명한 행동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린 극장 안에서 수도승처럼 조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뒤척이고 기침을 해대고 가끔 웃거나 울기도 합니다. 사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관객들과 영화를 본다는 것도 꽤 심심할 겁니다. 비명소리가 나지 않는 극장에서 호러 영화를 보거나 웃음 소리가 나지 않는 극장에서 코미디를 본다면 우린 뭔가 손해보는 셈이겠죠.

마찬가지로 극장 안에서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 요구도 지나치게 청교도적일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여가를 보내러 왔습니다. 영화가 종교가 아닌 이상 간단한 음식 정도는 용납해야지요.

목을 뻣뻣하게 세우는 아저씨를 무작정 나무라기도 좀 뭣합니다. 우리 나라 극장 중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어 있는 곳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으니까요. 확보가 제대로 되었다고 치더라도 원래부터 키가 큰 사람이라면 어쩌란 말입니까?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칙을 만들려면 규제받는 행동의 경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극장 안의 불쾌한 행동들에는 그런 분명한 경계가 없습니다. 모두 그 자체로 나쁜 행동은 아닙니다. 정도가 지나쳤을 때 나쁜 행동들이죠.

게다가 결정적으로 '불쾌함'에 대한 사람들의 기준은 모두 다릅니다. 극장 안에서 떠드는 사람들에게 제발 좀 조용해달라고 부탁하면 대충 이런 답변이 돌아오죠. "우리가 뭘 떠들었다는 거예요?" 더 심한 사람들은 부탁을 싹 무시하면서 옆 사람에게 이런답니다. "글쎄, 우리가 떠들었대."

정말, 살의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 자신도 다른 예민한 사람의 신경을 긁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 그래도 잡다한 소음에는 관대해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그 관대함을 자신에게도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에티켓'에 대한 대중의 기준을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준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분포도도 좁아집니다.

간단하죠? 하지만 말로 하기는 원래 쉬운 법이랍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철학의 문제이지 표면적인 예절의 테크닉 문제가 아닙니다. 한 국민을 현대인처럼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네들의 사고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습니까?

3.

에티켓은 게임과 같습니다. 규칙을 아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규칙이 무엇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입니다.

흠, 무엇을 예로 들어야 할까요? 전 스포츠는 영 서툴기 짝이 없지만 축구를 예로 들어 보기로 하죠. 만약 우리가 축구가 발로 공을 다루는 게임이라는 것을 안다면 손으로 공을 만져서는 안된다는 규칙은 쉽게 연역해 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 에티켓은 자동적으로 지켜질 수 있습니다. 이건 윤리적 게임입니다. 중요한 것은 규칙인 '에티켓'이 아니라 그 바탕이 되어야 할 윤리학입니다.

만약 서울 극장 직원 아저씨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라는 제1원칙에서 스스로 규칙을 연역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스피커로 '다음 영화 보실 분은 몇 번 문으로 앞으로 나오세요'를 외쳐대는 짓은 하지도 않을 겁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영화 관련 방송국 사람들이 '영화가 우선'이라는 원칙에 대해 생각이나 해보았다면 그렇게 뻔뻔스럽게 스포일러를 날려대지는 않을 겁니다. '모두가 영화를 만족스럽게 감상하기'라는 원칙을 머리 속에 염두에 두기만 한다면 영화관의 그 시끄러운 사람들도 자신의 무심함에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겠지요.

유감스럽게도 우린 이런 데 매우 서툽니다. 우린 생각없이 규칙을 암기하기만 했습니다.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우린 능동적인 '윤리적 존재'가 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기기만적 플레전트빌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면 지금부터 그런 존재가 되면 됩니다. 방법도 간단합니다. 색을 찾으세요!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됩니다! (9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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