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잡담

2010.03.05 09:40

DJUNA 조회 수:1933

1. 길이

자눅 부부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시상식의 길이였습니다. 작년 시상식이 4시간 5분이라는 최장 기록을 세우며 사람들의 원성을 샀으니 그럴만도 했지요. 그 때문에 타이트한 진행에 가장 신경을 썼다느니 길이 때문에 춤도 없앴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파다했죠. 빌리 크리스탈 역시 시상식 길이를 가지고 끝도 없는 농담을 했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번에도 쇼는 길어지겠지..."운운의 가사로 [투나잇]을 부르더니 끝날 때는 "21세기의 가장 짧은 시상식"이라는 말로 농담을 맺었지요.

결과는? 이번 시상식은 작년 시상식의 최장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4시간 8분이었다는군요!

왜 이렇게 시상식이 이렇게 계속 길어지는 것일까요? 상도 줄었고 (저번까지만 해도 잠시 분리되어 있었던 작곡상은 다시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춤도 없고 주제가 상도 한꺼번에 불렀고 과학기술상 수상자도 한 명밖에 없었는데?

글쎄요. 아마 역대 주제가상 수상작들을 메들리로 않았다면 4시간 미만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허전해했겠지요. (아마 이것 때문에 댄스를 없앤 게 아닌가 싶어요.) 올해는 탈버그 상 부분이 있었고 워렌 베이티의 연설도 꽤 길었으니 그 사람 잘못도 있었겠고요.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죽은 사람들이 꽤 많았으니 그 양반들 책임도 돌려야겠죠.

그러나 이 길이에 왜 그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1년에 한 번 있는 쇼입니다. 4시간 정도는 나쁘지 않잖아요? 게다가 그 수많은 기술부분 상들을 다 주려면 그 정도 길이는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 사람들 모두 당연히 주연 배우만큼이나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고요. 게다가 그런 느릿한 진행이 오히려 '주요 부분 수상'의 서스펜스를 강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2. 천박함과 고상함

이번 시상식은 괜찮았습니다. 빌리 크리스탈의 진행은 빠르고 유쾌했고 그의 농담 역시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번의 덜컥거렸던 우피 골드버그의 진행에 비하면 훨씬 나았지요. 그리고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원더풀 나잇 포 오스카]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사실 이번 시상식은 작년 만큼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빠르게 보였으니까요.

단지 아카데미가 원래의 요란하고 싸구려인 느낌까지 지워버린 건 유감스러웠습니다. 아카데미 상은 원래 그렇게 고상한 쇼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우린 그 천박함을 즐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상식은 너무 품위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전형적인 '아카데미 패션'도 별로 없었으니 배우들 옷을 보고 놀려대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도 좀 심심했을 거예요. 심지어 셰어의 옷까지도 얌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셰어의 옷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고상한 선택은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예전에는 재미라도 있었죠.

([사우스 파크] 팀이 있지 않았냐고요? 글쎄요. 그 사람들은 아카데미 보다는 MTV에 가까웠지요.)

3. 월 스트리트 저널

이번 오스카는 참 수난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투표 용지가 분실되고, 다음에는 트로피가 사라지고... 그러나 그중 가장 큰 수난은 월 스트리트 저널이 아카데미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금요일에 수상 예상자를 발표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었죠. 예상 리스트가 맞으면 시상식이 재미없어질 것이고, 틀리면 망신이니 누구도 이길 게 없다는 것이었죠.

글쎄요. 하지만 결과를 보면 이번 한 번 정도는 괜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스트는 거의 정확했어요. 남우주연상이 틀렸지만, 통계학적으로 볼 때 그 부분은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들 자신도 인정했고요. 재미를 떨어뜨렸다고 했지만, 아직 월 스트리트 저널의 결과에 대한 믿음이 서지 않은 올해에는 서스펜스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월 스트리트 저널이 맞을까 틀릴까에 대한 궁금증이 서스펜스를 추가했을 수도 있죠.

게다가 이번 조사는 아카데미 상의 매커니즘에 대해 재미있는 정보를 하나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여우 주연상이 바로 그 문제의 부분이었습니다. 설문 조사에 응모한 아카데미 회원들은 대부분 아네트 베닝이 상을 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베닝에게 투표한 사람은 힐러리 스웽크한테 투표한 사람의 절반밖에 안되었지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카데미 회원들은 꽤 자신에게 정직했고 하이프에 끌려가는 경우도 적었다는 말이 됩니다.

다시 말해 월 스트리트 저널의 조사는 생각만큼 재앙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에도 또 한다면 문제가 심각하겠지요. 단발성으로 그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4. 후보작

올해는 몰표가 강한 해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묘한 공란들이 보였습니다. 올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중 세 편이나 단 한 개의 상도 수상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지요. 상을 탄 영화는 [아메리칸 뷰티]와 [사이더 하우스 룰즈]밖에 없었습니다. 연기상의 반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영화에 돌아갔고 기술상이나 미술 부분 상 역시 다른 영화들한테 흘러갔습니다.

이걸 트집잡고 뭐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작품상 후보들 중 '때깔 고운' 영화나 특수 효과로 범벅이가 된 영화는 별로 없었으니 그런 부분에서 상을 받지 못했던 건 당연했고, 배우들은 아주 주목받지 못한 영화에서도 강할 수 있으니까 그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후보작의 안배가 보다 고르게 배정되었다면 이런 빈 공간이 그렇게 이상해보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비평가들한테 무척 인기가 있었던 [톱시 터비]와 같은 영화가 작품상 후보가 되었다면 시상식의 모양이 더 잘 살지 않았겠어요? 이번 시상식은 후보작 선정을 외면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5. 기타 등등

올해는 흑인 배우가 두 명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타지는 못했습니다. 마이클 클라크 덩컨에겐 후보 지명만 해도 좋은 홍보 효과였을테니 손해 본 건 없었겠지만 댄젤 워싱턴은 좀 아쉬웠을 겁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진 것 같으니까요.

반대로 상당히 많은 동성애자들이 상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정말 게이 잔치처럼 보였어요. [아메리칸 뷰티]의 작가 앨런 볼, [레드 바이올린]의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모두 동성애자들이었습니다. 늘 자기가 양성애자라고 주장하고 다니는 안젤리나 졸리까지 포함하면 세 명 반인가요? 게다가 여성 연기상 모두가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 캐릭터에게 돌아갔으니 잔치 분위기일 수밖에. 모두들 참 즐거워하고 있을 겁니다.

자신의 관대함을 가장 멋지게 과시했던 수상자는 마이클 케인이었습니다. 가장 지루한 연설을 한 사람은 워렌 베이티였고요. 최고의 패션에 대해서는 모두 힐러리 스웽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 (0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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