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에 대한 박제된 생각들

2010.02.22 13:20

DJUNA 조회 수:2767

0.

히치콕에 대해 뭔가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우선 알아주었으면 좋겠군요. 지금부터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가 안 통하는 경우가 많죠. 이럴 때는 뻔한 이야기라고 해도 반복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1. 히치콕은 인종차별주의자인가?

히치콕의 영화에 흑인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이 아닙니다. [라이프 보트]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은 흑인입니다. 그는 구식의 '과묵한 흑인 남자 스테레오 타입'을 따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인물입니다.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나오는 거죠.

그러나 히치콕이 유색 인종 캐릭터를 그리는 데 무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라이프 보트]의 경우도, 흑인이 들어간 건 순전히 각본가인 존 스타인벡의 고안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히치콕의 이런 무심함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는 인종차별주의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히치콕은 단지 무심했을 뿐이니까요.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인종 이슈가 거의 없었던 영국에서 온 외국인이었습니다. 인종 차별은 결코 마음에 와닿는 이슈도 아니었을 겁니다. 단지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에요.

게다가 그는 메시지 전달용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전공은 개인적인 오락 영화에 있었으며 그의 취향은 상류 사회의 아름다운 사람들에 몰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벗어날 때 그는 휘청거렸습니다. 그의 '진지한' 영화 [오인된 사나이]는 그 대표적인 예였지요.

히치콕이 흑인들을 등장시키지 않았던 것은 당시 그가 즐겨 묘사했던 시스템 안에선 흑인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타들을 즐겨쓰는 그의 캐스팅 방식에도 유색 인종 배우들은 늘 벗어나 있었죠. 그렇다면 꼭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켜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다시 말해 그가 흑인 배우를 쓰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가 히치콕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 히치콕의 영화에서 부도덕한 행동을 한 사람들은 늘 단죄되는가?

가장 잘 언급되는 예는 [이창]과 [사이코]입니다. [이창]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의 캐릭터는 남의 집을 엿본 벌로 멀쩡한 다리마저도 부러집니다. [사이코]에서 자넷 리의 캐릭터는 공금횡령을 한 벌로 살인마에게 살해당합니다.

다른 예도 있을까요? 흠...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그레이스 켈리의 캐릭터가 살인죄로 몰려 고생을 하는 건 바람 피운 대가일지도 모릅니다. [협박]에서 여자 주인공이 협박범에게 쫓겨다니는 것도 살인의 대가이겠고요.

그러나 이 정도로는 좀 부족한 것 같지 않습니까? 히치콕의 '도덕적 단죄'가 그렇게 대단한 이슈가 되기 위해서는 예가 좀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든 예가 대충 전부인 것 같고 또 그 예도 별로 믿을 수 없습니다. [사이코]나 [다이얼 M을 돌려라]는 모두 원작이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공금횡령과 아내의 부정이라는 소재는 원래부터 원작 속에 있었던 것들이죠. 히치콕이 의도적으로 삽입한 것이 아닙니다. 히치콕이 한 일은 그런 내용이 있는 원작을 두 개 정도 고른 것이 전부죠.

그가 과연 그런 '도덕적 단죄'가 우선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골랐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사이코]에서 그보다 더 그의 관심을 끌었던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공금횡령이라는 소재는 다른 덩어리에 끌려왔을 뿐입니다. 게다가 [사이코]의 살인 묘사는 단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살인이 일어난 것은 자넷 리의 캐릭터가 다시 돈을 돌려주겠다고 마음 먹은 뒤니까요.

그가 의식적으로 그런 내용을 '삽입'했다면 위의 주장은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이창]은 그런 예죠. 후반부에서 스튜어트의 캐릭터가 다리를 다치는 내용은 원작엔 없었습니다. 여기서 히치콕의 단죄는 노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입니다. 예가 너무 부족해요. 그리고 어떻게 이런 것들을 헐리웃 기존 영화의 공식적 인과응보에서 가려낼 수 있습니까? [사보타지]나 [버티고]처럼 살인자가 멀쩡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영화는 또 어떻게 하라고요?

3. 히치콕의 여자 주인공들은 늘 금발인가?

히치콕은 금발 여자들을 좋아했습니다. :-) 하지만 예외도 있답니다. [의혹의 그림자]의 테레사 라이트와 [사라진 여인]의 마가렛 록우드는 금발이 아닌 히치콕 여자 배우들입니다. 모두 훌륭했고요.

4. 히치콕 영화에서 여자 캐릭터들은 늘 부수적이고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흠, 이 주장은 히치콕의 영화가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는 데서 안이하게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천만에요. [협박], [사보타지], [사라진 여인], [자마이카 인], [레베카], [의혹], [의혹의 그림자], [라이프 보트], [망각의 여로], [오명], [염소좌 아래서], [무대 공포증], [새], [마니]와 같은 영화들은 모두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리치 앤 스트레인지],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스미스 부부], [나는 비밀을 안다], [패밀리 플롯]와 같이 공평하게 남녀가 역할을 분담하는 영화도 많고요. 심지어 여자 캐릭터들이 보조 주인공으로 나오는 [39계단], [영 앤 이노센트]. [파괴 공작원], [이창], [비밀 공작원]과 같은 영화들도 여성 캐릭터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요새 나오는 [스피드] 같은 영화와 비교해도 그 역할 비중은 상당히 크죠. 그런 영화들에서도 여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도움을 주는 역이거나 구원자의 역할이지 귀찮은 짐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아시겠어요? 여성 캐릭터의 비중으로만 계산한다면 히치콕은 거의 페미니스트로 불리워야 합니다.

히치콕이 페미니스트들의 연구 과제가 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히치콕이 여성 캐릭터를 주변에 두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베리만과 마찬가지로 여성 캐릭터들을 상당히 많이 다루어서 그만큼 연구하고 비판할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죠. 여러분 중 존 포드를 집중적으로 다룬 페미니스트 논문을 읽은 분은 없을 겁니다. 당연하죠. 포드 영화의 여성 캐릭터에 대해서 논문을 쓰자면 아무리 늘려봐야 한 두 페이지로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역시 흑백논리로 판가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히치콕 비평이 재미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버티고]와 같은 영화를 간단히 반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즘 영화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전 지금 히치콕이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반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둘 다 아니니까요. 히치콕은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의 욕구에 대해 아주 솔직한 남자였습니다. 당연히 그 양반의 영화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에서 접근해도 큰 덩어리를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도 이렇게 단순한 소리가 떠돌고 있다는 건, 영화 자체보다 참고서를 더 접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영화 지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 어제 오늘 이야기도 아니지만요.

히치콕의 여성 역할 비중에 대한 이런 루머는 히치콕보다는 히치콕의 페미니스트 비판가들의 지성을 부당하게 모독하는 것입니다. 역할 비중만 따진다면 굳이 히치콕만 집어 비판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오늘의 교훈. 제발 자기 머리로 생각합시다. (9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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