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는 할리우드 SF/호러 영화의 전환기였습니다. [스타 워즈]나 [죠스]와 같은 영화들이 지금까지 B급 장르로 여겨져왔던 이 분야를 정상으로 끌어올렸고, 그러는 동안 그때까지 정체되어 왔던 특수 효과 분야도 갑작스러운 성장을 이룩한 것이었지요.


1980년대 초에 [하울링]과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이라는 두 편의 중요한 늑대인간 영화가 연달아 나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늑대인간 영화는 1930년대부터 있었으며, 그 중에는 [울프 맨]이나 [늑대인간의 저주]와 같은 고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 나온 늑대인간 영화들 중 인간이 늑대로 변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작품은 없었습니다. 70년대 말 이후 급속도로 성장한 특수 분장은 바로 그런 공백을 채워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존 랜디스의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 역시 릭 베이커의 분장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특수분장역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지요. 나온 건 [하울링]이 조금 먼저지만 특수 분장의 기가 막힌 비르투오시티는 릭 베이커가 한 수 위였습니다. 그래도 어둠의 힘을 꽤 빌렸던 [하울링]과는 달리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은 환한 전등불이 켜진 런던의 아파트에서 주인공을 늑대로 변신시켰습니다. 당시 사용된 테크닉은 현대 관객들에게는 아주 초보적으로 보일 기계적인 특수 효과였지만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뒤에 나온 이름만 속편인 [파리의 늑대인간]과 비교해보세요. 컴퓨터 그래픽에 비해 동작은 좀 굼뜰지 모르지만 현실감은 속편을 능가합니다.


릭 베이커의 분장은 늑대인간에만 그친 게 아니었습니다. 늑대인간에게 살해당한 유령들, 중간에 삽입되는 주인공의 꿈을 묘사하는 데도 적절하게 쓰였지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당시 첨단 특수 분장의 쇼케이스였습니다.


존 랜디스의 이 영화가 흥미로운 두번째 점은 호러와 코미디를 태평스럽게 뒤섞은 스토리에 있었습니다. 사실 랜디스는 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사람들에게 이 각본의 장점을 설명하는 데 계속 애를 먹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무서우면서도 웃기는 영화'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가 [블루스 브라더스]와 같은 히트작들을 내지 않았다면 그 뒤로도 어려웠겠지요.


[런던의 미국인 늑대인간]의 스토리 자체는 전형적인 비극적인 늑대인간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온 데이빗과 잭은 영국의 무어에서 그만 늑대인간의 습격을 받습니다. 잭은 죽고 데이빗은 런던의 종합병원에서 간신히 깨어나지요. 데이빗은 병원 간호사인 알렉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늑대인간의 저주는 서서히 그를 죄어오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비극적인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랜디스는 이 영화를 아주 코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이 영화가 코미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키들거리면서 웃고 있더군요.


코믹한 장면들은 대부분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공포스러운 장면이나 비극적인 장면들 사이에 삽입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죽은 친구 잭의 유령이 나오는 장면들이죠. 잭의 유령은 두 번 세 번 출연하면서 점점 썩어가는데, 이 장면들은 분장도 좋지만 그 뻔뻔스러운 유머 때문에 기괴하고 썩은 유머를 잔뜩 풍깁니다. 데이빗의 악몽들도 은근히 웃기고요.


이런 랜디스의 접근법은 상당히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늑대인간 자체가 말도 안되는 설정인 걸요. 이야기야 비극적이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 어처구니 없음에 일단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의 비극적 종말이 코미디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지요.


사실 코미디란 지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예의를 차리느라 무시한다고 해도 이런 작은 희극들은 진지한 상황 곳곳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지요. 보름달만 뜨면 늑대가 되는 남자 이야기라면 더욱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01/10/10)


★★★


기타등등

1. 피카딜리 서커스의 난동 장면을 보면 스턴트맨으로 활약하는 존 랜디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 영화 끝에 보면 당시 결혼했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을 축하하는 문구가 나옵니다. 하긴 '엘리자베스 여왕은 남자다! 찰스는 호모다!'라고 고함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니 예의는 차려야했겠지요.


3. 이 영화에 삽입된 노래들이 모두 '달'에 대한 가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아시겠지요? 


감독: John Landis 출연: David Naughton, Griffin Dunne, Jenny Agutter, John Woodvine, Don McKillop, Paul Kember, Anne-Marie Davies 다른 제목: 런던의 늑대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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