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7 22:18
아마 여러분은 [댄서의 순정]을 문근영이 주연한 또다른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하긴 이 영화의 설정은 거의 완벽한 로맨틱 코미디용이니까요. 언니 이름을 빌려 대신 서울에 온 연변아가씨가 잘 나가던 댄서와 파트너가 되어 사랑도 나누고 춤도 추고...
그러나 [댄서의 순정]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닙니다. 당장이라도 김지미가 나와 성우 목소리로 흐느낄 법한 60년대식 신파물이지요. 이 신파적인 설정이 [댄싱 히어로]류의 댄스 무비 장르와 결합한 겁니다. 모범적인 해피 엔딩을 기대하지 마세요. [댄서의 순정]은 좌절과 희생에 대한 영화입니다.
두 장르를 하나로 엮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댄서의 순정]에서는 그게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신파물과 댄스 무비는 서로를 물어 뜯고 잡아먹습니다. 댄스 무비는 신파물의 정서가 흐르지 못하게 가로 막고 신파물의 설정 덕택에 클라이맥스여야 할 댄스 장면은 힘이 쭉 빠집니다. 어딘가에서 계산이 심각하게 어긋난 것입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거칩니다. 아마 60년대식 신파 영화라면 대충 투박해도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60년대 충무로 신파 영화들은 그냥 투박한 작품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타겟이 되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 세련되게 조작된 작품들이었지요. 하지만 [댄서의 순정]은 어느 쪽으로만 봐도 그냥 투박하기만 합니다. 특히 되지도 않는 코미디는 왜 넣었는지 모르겠어요. 자신 없으면 그냥 하지 말란 말입니다. 핵심이 되어야 할 댄스 장면 역시 충분한 테크닉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댄스 경연대회 장면에 힘이 없는 건 신파가 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춤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건 문근영의 스타 파워입니다. 문근영은 이 영화에서 춤을 추고 연변 사투리와 중국어도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무척 귀엽습니다. 여러분이 문근영의 열성팬이라면 내용과 상관없이 이 배우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겁니다. 배우 자신도 참 열심히 하고요. 이 영화의 연기 질은 영화 자체보다 높습니다. 문근영도 그렇고 남자 상대역인 박건형도 그렇고요.
그러나 이 스타 파워가 영화에 과연 도움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문근영은 영화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얻은 주연배우의 귀여움과 예쁨에 빠져 종종 자기네들이 드라마를 다루고 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는 거죠. 장채린이라는 캐릭터가 지나칠 정도로 문근영이라는 스타에 복종하는 통에 충분히 탐사 가능했던 멜로드라마의 영역이 막혀버리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아마 [댄서의 순정]이 흥행에 성공을 거둔다면 그건 전적으로 문근영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슬슬 이 배우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귀여움만 팔면서 전국민의 여동생 노릇을 할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이미지 망치는 걸 각오하고 자신의 한계를 실험할 때입니다. (05/04/19)
★★☆
기타등등
이 영화에 나오는 연변이나 연변 사람들은 실제 지리적 공간이나 사람들보다는 수퍼마켓에서 파는 청정야채에 더 가깝더군요. 이 역시 일종의 이미지 착취라면 착취겠죠.
감독: 박영훈 출연: 문근영, 박건형, 윤찬, 박원상, 김기수 다른 제목: Dancing Princess, Innocent St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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