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 달리자 (2007)

2010.02.07 11:00

DJUNA 조회 수:2941

감독: 홍동명 출연: 이채은, 이성미, 장문규 다른 제목: Run, Vino

비노가 뭔지도 모르고 영화를 봤습니다. 보고 나서 검색해보니 야마하 스쿠터의 상표명이더군요. 주인공 남희가 타고다니는 게 아마 그건가 봅니다.

[비노, 달리자]의 주인공 남희는 과외교사입니다. 요리사인 남자친구 재영과 5년째 아무 탈 없이 살고 있지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처음엔 강렬했던 감정이 조용한 평화 속에 서서히 꺼져가는 중인지도 모르죠.

남희는 소영이라는 아이의 과외를 맡고 있습니다. 남희는 소영이가 예쁘다고, 막연히 어떤 연예인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영이는 그런 남희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곰인형을 선물로 줍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곰인형은 재영이 자기에게 준 곰인형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곰인형 도플갱어인 겁니다.

남희는 소영에게 그 곰인형을 다시 돌려주려고 합니다. 그냥 무심하게 잊어버려도 될 일인데, 굳이 깨끗하게 정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으니 다소 돌아오기 힘든 길을 가기 시작한 거죠. 하지만 소영은 곰인형을 되돌려 받지 않고, 대신 남자친구라는 아이의 빨간 바이크 뒤에 앉아 남희를 자극하기 시작합니다. 세상 구석마다 꼭 이런 애들이 한둘씩 있습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엉겁결에 남희는 소영의 페이스에 말려듭니다. 깊은 생각 없이 소영의 남자친구와 경주를 시작한 것이죠. 척 봐도 상대가 안 되는 게 뻔한 낡은 비노를 끌고요. 그리고 경쟁상대의 바이크 뒷자리에는 도통 속을 읽을 수가 없는 소영이 앉아 있습니다. 네, 자길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관심있는 여자아이 앞에서 마초적 자존심을 과시하는 아이들이 꼭 있지요. 전 가끔 둘이 쌍으로 제작되는 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바이크 레이싱은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으로 웬만한 할리우드 카 레이스 장면과 비교해도 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종 더 낫지요. 단순히 기계적인 스릴에만 집착하는 일반적인 장르 영화와는 달리, [비노, 달리자]는 이 두 탈것의 대결에 정교한 로맨스와 유혹의 드라마를 심습니다. 레이스가 끝났을 때 주인공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단순히 레이스 결과 때문이 아니죠.

물론 카타르시스의 수명은 짧습니다. 깊은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고등학생 소영과는 달리 남희는 짊어지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것은 현실세계의 규칙이기도 하고 재영과 5년동안 쌓아온 세월이기도 하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남희는 여전히 고민중입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무엇이 될지는 저도 모르죠. (08/10/21)

★★★

기타등등

네이버와 EBS에 모두 올라와 있습니다. 네이버 것은 EBS 것보다 화질이 좀 낫지만 비율보정이 되어 있지 않군요. (아, 수정. 네이버 것은 얼마 전에 계약 종료되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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