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도둑 The Body Snatcher (1945)

2010.02.13 17:21

DJUNA 조회 수:6191

감독: Robert Wise 출연: Boris Karloff, Henry Daniell, Edith Atwater, Bela Lugosi, Russell Wade, Rita Corday, Sharyn Moffett

[시체 도둑]이 발 루튼의 최고 걸작인가?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지요. 경쟁할 만한 영화들이 많고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니까요. 영화사적으로는 [캣 피플]이 더 중요하고, 미모와 스타일을 따진다면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를 능가할 수 없겠죠. 하지만 [시체 도둑]이 루튼의 영화들 중 가장 자기완결성이 뛰어난 드라마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를 대건, 참 잘 만들었고 드라마와 연기도 좋아요. 심심한 이유지만.

영화의 원작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동명 단편. 19세기 스코틀랜드를 무대로 한 무덤도굴꾼과 의사의 이야기지요. 여기서 무덤 도굴꾼은 마부일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존 그레이이고, 의사는 저명한 에딘버러의 의학교수 맥팔레인 박사입니다. 여기에 전형적인 루튼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도널드 페티스라는 의대생이 등장해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보이죠.

[시체 도둑]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선과 악을 주제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경계선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은 유기적으로 얽혀있고 어느 한 캐릭터에 쏠려 있지 않습니다. 맥팔레인 박사는 환자와 건강과 의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진지한 과학자가 아닌가요? 그레이는 시체를 구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악당이지만 병에 걸린 어린 소녀의 건강을 걱정하는 친절한 마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레이의 행동을 어디까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넘쳐나는 수요는 누군가 채워주어야 하는 겁니다. 살인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요.

영화는 작정하고 이 대립되는 두 요소를 하나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 넣습니다. 그 때문에 종종 사악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맺기도 하고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기도 하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 연관 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져서, 결국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관객들이 초반에 기대했던 순수성을 잃고 맙니다.

[시체 도둑]은 관객들을 자극하는 호러 영화는 아닙니다. 적어도 '무서움'을 의도한 영화는 아니죠. 하지만 영화의 싸한 느낌은 엄청나게 힘이 세고 뒷맛도 강합니다. 그건 이 영화가 오히려 자극이나 폭력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영화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친절하며 예의바릅니다. 모두 교회라도 나온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조용한 예절 때문에 협박과 죽음의 올가미는 더 강하게 조여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폭력을 선택해도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죠. 이런 이야기가 발 루튼식 어둠 속으로 한발짝씩 들어가기 시작하면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건 보리스 칼로프의 명연입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그가 협박범으로 나오는 벨라 루고시와 함께 공연하는 시퀀스는 호러 팬들이 보면서 침을 질질 흘릴만 하죠. '두 호러 스타들을 한 자리에 몰아 넣고 그것으로 돈 좀 뽑아보자'라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칼로프의 무르익은 연기 때문에 엄청나게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물론 칼로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를 진정한 배우로 인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훌륭한 캐릭터를 제공해준 루튼이 없었다면 이 모든 건 시작될 수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죠. (06/06/05)

★★★★

기타등등

스코틀랜드가 무대인데도, 스코틀랜드 억양을 시도하는 배우들은 거의 없더군요. 하긴 그 분위기에서 대사들이 모두 사투리로 나왔다면 집중하기 어려웠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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