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따윈 몰라 Kamyu nante shiranai (2005)

2010.01.29 00:12

DJUNA 조회 수:3044

감독: Mitsuo Yanagimachi 출연: Shuuji Kashiwabara, Ai Maeda, Hinano Yoshikawa, Hideo Nakaizumi, Meisa Kuroki, Tomorowo Taguchi, Hirotaro Honda 다른 제목: Who's Camus Anyway?

야나기마치 미츠오의 [카뮈 따윈 몰라]는 영화의 무대가 되는 대학 캠퍼스와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10분 정도 되는 롱테이크로 시작됩니다. 이 롱테이크는 테크닉이나 내용 면에서 [악의 손길]이나 [플레이어]의 오프닝과 비교할만 하지만 그들처럼 과시적이고 장엄한 서커스는 아닙니다. 훨씬 덤덤하고 기가 죽어 있지요. 마치 노련하지만 다소 맥이 풀려 있는 전직 감독이 학생들을 불러다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롱테이크를 어떻게 다루는지 한 번 보여줄까?"

[카뮈 따윈 몰라]의 주인공들은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입니다. 이들은 거의 15년 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은 지도 교수 나카조 밑에서 80년대에 실제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지루한 살인자]라는 영화를 만들고 있지요.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새로운 주연 배우를 찾고, 리허설을 하고, 원작인 책과 카뮈의 [이방인]을 비교하고, 연애를 하고, 실연을 하고, 울고, 절망하다 막판엔 조금 더 끔찍한 일들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엔 드디어 영화를 찍기 시작하지요.

야나기마치 미츠오가 그리는 젊은이들은 모두 영화라는 장르에 푹 빠져있습니다. 세상 모두를 영화라는 렌즈를 통해 보는 아이들이죠. 이들에게 세상은 인용과 비교의 대상입니다. 이들은 가장 훌륭한 살인장면과 같은 리스트를 짜고, 동네 카페와 장 뤽 고다르가 [여성/남성]에 담은 프랑스의 카페를 비교하고, 감독에게 집착하는 여자친구에게 아델이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야나기마치 미츠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교수 나카조도 여기서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이름 대신 '베니스'나 '에센바흐'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지요. 말이 씨가 된다고 실제로 그는 에센바흐처럼 댄스 클럽 회원인 아름다운 여자 대학생에게 반해 있기도 합니다. 그가 멀리서 그 대학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화 음악은 장난스럽게 말러의 아다지에토의 선율을 슬쩍 흘려넣어요.

이건 영화광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묘사입니다. 문제는 감독의 관점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것인데, 이 영화의 경우는 후자입니다. 그는 현실과 격리되어 매체를 통해서만 세상을 읽어가는 젊은이들이 무척 불만이고, 이들에 의해 만들어질 미래의 영화에 대한 기대도 없습니다. 가부키와 영화를 비교하는 나카조와 동료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는 영화라는 장르가 당장 망해도 크게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면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그리는 살인범 소년의 경로와 겹쳐집니다. 살인범 소년은 순전히 살인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서 처음 보는 할머니를 살해했지요. 언제나 반복될 수 있고 현실의 무게가 없어진 영화라는 예술에 빠진 우리의 영화쟁이들도 점점 그런 분위기에 빠집니다. 영화 속에선 실험삼아 살인을 할 수도 있고 낯 모르는 사람과 키스를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가벼움이 현실 세계 속으로 침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린 이 경박함을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까요? 그 경박함으로 세상과 동료 인간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아무리 음울한 냉소주의자인 감독이 뒤에서 끌끌 혀를 찬다고 해도 [카뮈 따윈 몰라]의 세계는 여전히 역동적이고 조용한 에너지에 넘쳐 있습니다. 경박하고 세상 보는 눈이 없을지는 몰라도 주인공들은 모두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거기에 온 인생을 바치고 있어요. 그들 주변에서 각자의 전공과 취미에 빠져 있는 다른 젊은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이 영화의 대학 캠퍼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주인공들이 없어져도 계속 존재할 분주하고 바쁜 세계지요. 네, 그들은 결국 세상 밖으로 나가 영화를 만들 겁니다. 그 작품들이 야나기마치 미츠오의 마음에 드느냐는 다른 문제죠. (07/04/10)

★★★☆

기타등등

영화의 나카조 교수처럼 야나기마치 미츠오도 10년 동안 영화판을 떠나 학생들을 가르치다 이 영화를 만들었죠. 오래간만에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지 지금 기분이 좋은 모양이더군요. 그 틈을 노려 잽싸게 국내에 불러들였다고 하더군요. 오늘 시사회가 끝난 뒤에 기자 간담회가 있었죠. 며칠 더 머물 예정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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