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일티 Frailty (2001)

2010.02.01 07:12

DJUNA 조회 수:4201

감독: Bill Paxton 출연: Bill Paxton, Matthew McConaughey, Powers Boothe, Matthew O'Leary, Luke Askew, Jeremy Sumpter

상처하고 혼자 아들 둘을 키운 평범한 가장이 어느 날 자기가 신에게서 세상의 악마들을 처단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믿게 됩니다. 그는 계시에 따라 사람들을 한 명씩 잡아와, 그가 신이 내리신 무기라고 믿는 도끼로 살해합니다.

끔찍하다고요? 물론이죠.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그는 자신이 부여받은 '성스러운 임무'를 자기 아이들과 함께 하려 합니다. 한마디로 애들을 살인 공범자로 만들려는 거죠.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그냥 훌러덩 넘어가버리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굵은 큰 아들에겐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졸지에 미치광이 살인마가 된 아버지와 큰아들의 길고 섬뜩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프레일티]는 20여년 뒤, 연쇄 살인범을 알고 있다는 남자가 텍사스의 FBI 지국에 찾아와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액자 구조를 취한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화자는 몇 가지 숨기는 구석이 있습니다. 영화 후반에 위치한 몇 차례 반전도 그런 화술 트릭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놀랍거나 한 결말은 아니에요. 이런 식의 구성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겁니다.

반전이 어떻건, 영화의 핵심은 1979년에 일어난 그 끔찍한 사건에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부분은 살인마인 아버지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는 자신이 성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착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단순하고 끔찍한 믿음이 그 착하고 단순한 남자를 끌고간 결과는 어떤가요?

영화는 종종 섬뜩한 블랙 유머로 이 아이러니를 강조합니다.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자신의 살인 임무에 대해 가르치는 장면들은 대부분 구식 기독교식 가족 영화의 온화한 분위기를 차분하게 흉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성경 구절을 가르치는 것처럼 연쇄 살인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네, [프레일티]는 광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선량한 사람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만으로도 [프레일티]는 훌륭한 공포 영화가 될 자격이 있죠.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넘어선 또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는 79년도의 이야기를 끌고가는 현대의 이야기에 섞여있는데, 세상에 광신자들이 존재한다는 것보다 조금 더 무섭습니다. 그건 우리가 세상에 대한 소박한 믿음이나 상식만으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알 수 없고, 따라서 그런 식의 광신적 행동을 이성으로 제재할 방법 역시 없다는 것입니다. 종종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하고 정체불명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 빌 팩스턴은 그렇게 무리수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합니다. 덕택에 영화는 조금 우직하고 단순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 영화에서는 바로 그 우직함이 장점이 됩니다. 핵심이 되는 사건 자체가 바로 그 복잡한 생각을 못하는 단순한 남자의 우직한 행동이니까요.

그러나 종종 그런 우직함은 훨씬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막기도 합니다. 그건 이 영화가 공식적인 데뷔작인 각본가 브렌트 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장르 공식에 맞춘 결말로 끝을 내려는 시도는 영화의 원래 힘을 상당히 빼놓습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 애매함을 남겨두는 편이 작품을 위해 좋았을 거예요. 그랬다면 훨씬 불쾌한 영화가 되었겠지만 적어도 주제와는 더 잘 맞았을 겁니다. 결말도 덜 뻔해보였을 거고요.

[프레일티]는 적극적으로 좋아할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나중에 DVD가 나오면 사들고 와 책장에 꽂아두고 반복해서 볼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프레일티]는 여전히 좋은 호러 영화이고 생각할 구석도 많으며 불쾌하지만 절실한 메시지를 당의없이 전달할 수 있는 배짱도 지니고 있습니다. 더 나아질 수도 있었지만 완성된 결과만 해도 상당히 인상적이군요. 예상치도 못했던 배우의 상당히 괜찮은 감독 데뷔작입니다. (02/07/16)

★★★

기타등등

팩스턴은 이 영화를 겨우 37일만에 찍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건 제임스 카메론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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