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Birth (2004)

2010.01.31 10:28

DJUNA 조회 수:4838

감독: Jonathan Glazer 출연: Nicole Kidman, Cameron Bright, Danny Huston, Lauren Bacall, Alison Elliott, Arliss Howard, Anne Heche, Peter Stormare, Ted Levine, Cara Seymour

10년 전에 남편을 잃은 주인공 안나는 간신히 마음을 정리하고 새 남자친구 조셉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 괴상한 일이 일어나요. 남편과 같은 이름인 10살박이 소년이 안나를 찾아와 자기가 죽은 남편이니 결혼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남편이 아니면 모를 것 같은 사실들을 조금씩 이야기하면서요.

이 소년의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글쎄요. 이 영화는 나름대로 설명을 하나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설명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괜히 1시간 40분을 끌 이유도 없죠.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 에피소드 하나 분량이면 충분합니다. 솔직히 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영화는 시치미를 뚝 떼고 정공법으로 이 환생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좋은 교육을 받은 부유한 지식인 주인공들이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차분하게 보여주는 거죠. 여기엔 이런 장르의 영화가 종종 택하는 순진무구한 믿음도 없고 불필요한 자극도 없습니다. 영화는 종종 관객들의 인내심을 시험할 정도로 느리고, 보통 영화에서라면 자극을 주거나 아이러니를 흘릴만한 부분에서도 일관적인 차분함과 진지함을 유지합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노출된 결말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까 전 이 영화가 분명한 해답을 준다고 이야기했는데, 관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뭔가 더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 두 번째 해답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1번 해답이 A니까 2번 해답은 B다"가 아닙니다. 1번 해답은 A이고, 2번 해답은... 그런 게 있다면 A가 아닌 어떤 것이겠지..."정도죠. 영화의 이런 태도는 니콜라스 뢰그의 영화 [Don't Look Now]와 여러 모로 비슷합니다. 분석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더 있는 것 같죠.

네, 결국 이 모든 건 분위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엄청 싸고 얄팍한 이야기가 니콜 키드먼과 카메론 브라이트의 차분하고 진지한 연기,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와 리햐르트 바그너의 모호하고 장중한 음악들, 해리스 세이비즈의 담담하고 정갈한 촬영이 적절하게 어우러지자 세기말에 쓰여진 장황한 독일 교향곡의 아다지오 악장을 연상시키는 그럴싸한 분위기를 풍기는 겁니다. (06/11/24)

★★★

기타등등

영화는 개봉 전에 키드먼과 브라이트의 목욕 장면과 키스 신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렸는데, 정작 보면 그렇게 자극적이거나 위험하다는 느낌은 안 듭니다. 결국 말 자체가 실제 대상보다 더 야하고 선정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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