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도라 Fedora (1978)

2020.05.25 00:05

DJUNA 조회 수:842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빌리 와일더의 1978년작 [페도라]를 지금 무비에서 틀어주고 있어요. 1978년에도 빌리 와일더가 살아있었냐고요? 2002년에 죽었고 1981년까지 활동했습니다. [페도라]는 끝에서 두 번째 작품이에요. 할리우드 영화는 아니고 서독/프랑스 합작이지요.

톰 트라이언이라는 작가가 쓴 동명 중편입니다. 할리우드 황금기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한 네 편의 중편을 엮은 [Crowned Heads]라는 작품집의 첫 번째 작품이죠. 트라이언은 원래 배우였고 1960년대 말까지 긴 경력을 갖고 활동해 왔으니 업계 사정을 잘 알고 있었겠지요. 이 지식이 소설을 쓰는 데에도 활용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코 사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트라이언의 영역은 SF, 호러, 미스터리였고 [페도라]에도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반영되어 있습니다.

제목의 페도라는 주인공 이름입니다. 1930년대부터 활동해왔던 전설적인 할리우드 배우지만 잠시 복귀했다가 지금은 은퇴 상태지요. 영화제작자인 배리 데트와일러는 자기가 제작하는 새 [안나 카레니나] 영화에 페도라를 출연시키기 위해, 이 배우가 머물고 있는 그리스의 외딴 섬을 찾습니다. 페도라는 거기서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로 주변 사람들에게 감금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몇 주 뒤 페도라는 프랑스에서 안나 카레니나처럼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아요.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데트와일러가 그리스에서 겪은 일을 보여주고, 후반부는 페도라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지요.

스포일러 없이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군요. 보실 분들은 이미 뒤로 돌아가셨을 테니, 그냥 계속하지요. 페도라의 비밀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페도라는 성형수술 실패로 아름다운 외모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페도라에게는 자신을 꼭 닮은 안토니아라는 사생아 딸이 있었습니다. 안토니아는 엄마로 변장해 아카데미 공로상을 주러 오는 헨리 폰다를 맞고, 그 뒤로 완벽하게 엄마로 변장해 영화에 출연합니다. 그 동안 페도라는 안토니아의 아빠인 폴란드 귀족의 엄마 노릇을 하고 있고요. 하지만 안토니아가 동료배우 마이클 요크를 짝사랑하게 된 뒤부터 엄마와 충돌하게 됩니다. 정체성 혼란, 마약 중독, 정신질환이 찾아오고 그 결과가 [안나 카레니나] 자살이었던 거죠.

이게 말이 되냐고요? 도대체 누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너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영화는 러닝타임 절반에 걸쳐 이를 말이 되는 것처럼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다고 그게 말이 되는 건 당연히 아니고요. 자잘하게 끊어진 회상과 설명이 연결되어 있는 후반부는 추리물의 매력을 갖고 있는 전반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보입니다. 하지만 없으면 또 말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사실적인 이야기가 절대로 전달할 수 없는 또다른 종류의 진실을 전달하는 영화지요. 나이를 먹으며 점점 자신의 완벽한 미모를 잃어가던 할리우드 전성기 여자배우들의 실제 이야기들을 알고 보면 이게 그렇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요.

많이들 [선셋대로]와 비교하는 영화입니다. 빌리 와일더의 감독작이지요, (늙은) 윌리엄 홀든이 남자주연이지요, 할리우드의 어두운 뒷면을 파헤치는 영화지요, 은퇴한 미친 여자배우가 나오지요. 헨리 폰다와 마이클 요크와 같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 출연하지요. 물론 [선셋대로]와 같은 완벽한 영화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선셋대로]는 딱 그 시대에 그 스타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영화였어요. 하지만 [페도라]는 클래식 할리우드 시절 전성기를 누렸던 늙은 감독이 70년대 말의 재료를 갖고 이전의 자기 스타일로 만든 영화예요. 그것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각본으로요. 당연히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삐걱거리다 이상한 모양으로 끝이 납니다. 엄청나게 시대착오적인 미클로스 로자의 음악을 배경으로 하고요. 이 영화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무비에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실패했던 영화들을 모은 'Perfect Failures'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정말 특정 시기에만 나올 수 있는 이상한 완성도를 갖춘, 특이하게 불완전한 영화입니다. 와일더는 이전에 이미 완벽한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으니 경력 말기에 이런 영화를 만들 자격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요. (20/05/25)

★★★

기타등등
홀든의 캐릭터 데트와일러는 '요새 영화감독들'을 '핸드헬드 카메라와 줌 렌즈를 갖고 노는 수염난 애들'이라고 부르는데, 보면서 많아 웃었습니다. 와일더에겐 그런 식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었던 거예요.


감독: Billy Wilder, 배우: William Holden, Marthe Keller, Hildegard Knef, José Ferrer, Frances Sternhagen, Stephen Collins, Gottfried John, Arlene Francis, Mario Adorf, Michael York, Henry Fonda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77539/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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