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모음.zip (2022)

2023.09.04 16:01

DJUNA 조회 수:1774


[신체모음.zip]은 작년 부천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여름이 많이 지나간 저번 주에 개봉했습니다. 호러 장르에서는 흔한 앤솔로지 구성입니다. 6명의 감독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맡고 있어요.

최연경 감독의 [토막]이라는 에피소드가 액자 역할을 해요. 사이비 종교를 취재하기 위해 신도로 위장해 잠입한 막내 기자 시경이 주인공이에요. 시경이 보는 앞에서 신도들은 코, 눈, 혀와 같은 신체부위를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삽입되는 구성이죠. 단지 이게 얼마나 그럴싸한 액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신도들이 바친 신체 부위가 각 에피소드에서 잘려나간 신체부위일 가능성은 없는 거 같습니다. 게다가 '신체부위를 자른다'라는 규칙에 영화가 좋지 않은 방식으로 갇혀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코, 눈, 혀까지는 그럭저럭 형식에 어울리는데 그 뒤는 좀 애매해지기도 해요.

이 안에 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은 앤솔로지답게 편차가 좀 있습니다.

맨 처음 나오는 전병덕 감독의 [악취]는 집에서 발견한 향수를 뿌른 뒤로 세상 모든 것에서 악취를 맡는 여자 이야기인데, 설정 이후엔 결말이 다 보이는 이야기라 좀 실망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전체 영화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고요. 짧은 러닝타임을 고려해도 이 설정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조금 더 있었던 거 같습니다. 신체손상이라는 규칙에 갇히지 않았다면 더 이야기를 잘 풀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그 다음에 나오는 '눈' 에피소드인 이광진 감독의 [귀신 보는 아이]는 제가 정말 싫어하는 집단 폭력으로 시작해서 기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는 괜찮게 풀렸어요. 여기서 괴롭힘 당하는 사람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사원이에요. 그 사원은 그 사람들에게 귀신을 보여주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반전으로 이어지는 전개 과정을 거치는데, 그 반전은 이런 이야기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엄청 놀랍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이야기의 모양을 잘 잡아주죠. 우리가 엄청나게 신기하고 신선한 귀신 이야기만 즐기는 건 아니잖아요. 중간중간의 귀신 묘사도 괜찮아요.

지삼 감독의 [엑소시즘.넷]은 혀 에피소드인데, 악령에게 빙의된 여자아이 이야기입니다. 고전으로는 [엑소시스트]가 있고 최근 한국영화로는 [검은 사제들]이 있어서 경쟁이 어려운데, 영화는 그럴싸한 틈새를 찾아냅니다. 이 영화에서 구마 의식을 벌이는 건 신부가 아니라 빙의된 여자아이의 두 학교 친구입니다. 여자아이의 병실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생중계 되고 있고 두 아이는 온라인으로 악령을 퇴치하려고 해요. 이 스크린라이프 스타일은 꽤 재미있습니다.

김장미 감독의 [전에 살던 사람]도 고전적인 귀신 영화입니다. 새 집으로 이사온 여자에게 '전에 살던 사람'이라는 여자가 꾸준히 찾아와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집에서는 계속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등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요. 아무래도 집에 귀신이 들린 것 같아서 여자는 친구가 알려준 의식을 하는데... 역시 예측이 아주 어렵지 않은 반전이 있는데, 그 예측가능성이 크게 단점이 되지 않는 호러입니다. 오히려 '이거 아니면 저거인데 어느 쪽일까'의 긴장감이 살아있지요. 이야기와 배경을 통해 도시에서 혼자 사는 여자의 공포도 잘 잡아냈고요. 단지 여기서부터 '신체부위를 자른다'는 기본 설정이 약해집니다.

서영우 감독의 [끈]은 전체 영화 중 설정이 가장 튑니다. 주인공인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는데, 목이 금속 케이블로 묶여 있고 그 케이블은 구멍을 통해 옆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거기엔 이웃집 여자가 같은 방식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남자가 앞으로 가면 여자가 끌려오고 그 반대로 마찬가지요. 주인공은 어떻게든 이 제한된 조건 하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데, 장르가 호러이니 당연히 결과는 끔찍합니다. 긴장감이 상당한데, 전 중간중간에 '왜 저 남자는 저 주변의 물건들을 활용하지 않지?'라는 생각을 종종했어요. 영화는 대놓고 논리를 초월한 악몽의 구조인데, 전 조금 더 현실적인 논리를 부여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형식의 영화는 감독의 개성이 드러나는 게 중요한데, 이 영화를 찍은 사람들은 대부분 신인이고 전작이 별로 없어서 이 영화만으로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의미있는 정보는 아마 성비겠지요. [엑소시즘.넷]과 [전에 살던 사람]이 여성감독 작품입니다. 그리고 [엑소시즘.넷]을 감독한 지삼의 경력이 가장 튀어요. 지삼은 배우 안미나의 감독 예명입니다. (23/09/04)

★★☆

기타등등
1. 영등포 CGV에서 보았습니다. 9관에서 본 [조이 라이드]가 마스킹을 안 해줘서 확인하려 봤어요. 일단 안해주긴 했는데, 그건 마스킹 정책과는 상관 없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엑소시즘.넷]이 풀스크린 이고 나머지는 스코프 비율이어서 대부분 레터박스가 뜰 수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저 같으면 그냥 기다렸다가 텔레비전으로 보겠어요. 호러 장르에선 콘트라스트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화질도 더 좋아보일 걸요.

아, 그리고 영등포 CGV가 마스킹 정책을 포기한 건 맞는 거 같습니다. 여의도도 마찬가지인 거 같고, 아마도 명동 씨네 라이브러리도요. 그나마 마스킹을 해주던 CGV 상영관 전체가 게으름을 피우기로 작정한 거 같습니다.

2. [전에 살던 사람]은 여러 모로 전에 본 [타겟]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둘 다 새로 이사 온 여자가 주인공이고 직장 동료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을 해주고 둘 다 임성재 배우가 나옵니다.


감독: 최원경, 전병덕, 이광진, 지삼, 김장미, 서형우, 배우: 김채은, 김민석, 권아름, 혁, 강준규, 김아현, 조우리, 다른 제목: Body Parts

Hancinema https://www.hancinema.net/korean_movie_Body_Parts.php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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