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의 대표작 [신비의 섬]은 19세기 기준에서 보면 [로빈슨 크루소] 장르의 절정에 있는 작품입니다. 남북전쟁 때 기구를 타고 탈출했다가 외딴 섬에 떨어진 베른의 주인공들이 겪는 이야기를 보면 정말 감탄사가 나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었다면 이 사람들은 맨손으로 섬에 맨해튼만한 대도시도 하나쯤 지었을 거예요.

이건 멋진 19세기 모험담이지만,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이라고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영화가 베른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라갔을 리가 없습니다. 그거야 전편만 봐도 알 수 있죠. 이 시리즈의 기본 아이디어는 세상엔 쥘 베른이 쓴 소설이 몽땅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믿는 버니언이라는 미치광이들이 있고, 알고 봤더니 그 버니언들이 맞다는 것입니다. 1편의 주인공들은 이 설정에 따라 베른이 [지저여행]에서 그렸던 땅 속 세계를 다녀왔지요.

하지만 [신비의 섬]이 이 설정에 맞나요? 당연히 아니죠. 쥘 베른의 원작을 충실하게 따른다면 소설에 나오는 링컨 섬을 지도에서 찾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찾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가능성이 없고요. 우린 지금 구글 어스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베른의 모험담은 21세기와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아요.

그래도 영화는 핑계를 몇 개 만들어 냅니다. 팔라우 근처에 있다는 실제 '신비의 섬'은 베른의 [신비의 섬]과 조나단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그린 섬들, 로버트 스티븐슨이 [보물섬]의 무대로 삼았다는 섬을 합친 곳이며 알고 봤더니 아틀란티스의 일부라는 거죠. 이렇게 해서 말이 되나? 여전히 말이 안 됩니다. 물론 베른의 세계와도 안 맞고요. 베른은 아틀란티스를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기는 짓 따위는 안 했어요. [해저 2만리]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일. 하지만 이 영화에서 논리 같은 걸 따지면 곤란합니다.

영화는 1편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숀 앤더슨이 아마도 실종된 할아버지가 보낸 것 같은 모스 부호 신호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는 새 아빠 행크와 함께 신호가 날아오는 '신비의 섬'을 찾아나선 숀은 팔라우에서 만난 헬기 조종사 가바토와 그의 딸 카일라니와 함께 신비의 섬 해안에 불시착합니다. 할아버지를 만난 주인공들은 이곳이 140년 주기로 침몰했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신비의 섬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아쉽게도 이 섬은 일정보다 몇 년 빨리 침몰할 운명입니다. 이들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작을 읽으신 분들은 아실 특정 인물이 남긴 유산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논리 따위를 따지면 곤란하다고 했지만, 이 영화에서 쥘 베른스러움을 찾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신비의 섬]의 많은 부분이 남아 있고 활용되는 건 사실입니다. 고로 영화 보기 전에 한 번 읽고 가세요. 하지만 '버니언'이라는 무리가 나오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텍스트는 멋대로 무시되거나 개조되고, 이성으로 무장한 19세기 유럽인이 자연과 정면 대결한다는 베른의 주제도 그냥 사라졌어요.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괴물들입니다. 네, 베른의 소설에서는 그런 괴물 따윈 나온 적 없었죠. 이 사람들이 여기서 '원작'으로 삼은 건 베른의 책이 아닙니다. 레이 해리하우젠이 쥘 베른의 원작을 각색한 [신비의 섬]이죠. 이해는 해주려고 하지만 그래도 너무 노골적이라 싱겁죠.

싸구려 패스트푸드 같은 영화입니다. 특수효과의 질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닙니다. 드라마나 논리는 그냥 엉망이고 코미디는(특히 루이스 구즈만 캐릭터가 나오는 부분은) 한심하지요. 하지만 이국적인 배경에서 온갖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동안 주인공들이 모험도 하고 연애도 하고 코미디도 좀 하는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겐 아낌 없이 주는 영화죠. 수준은 전혀 높지 않고,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되지만, 결코 게으르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제공하는 시각적 쾌락은 아이맥스 3D 환경에서 극대화됩니다. 다른 포맷으로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12/01/14) 

★★☆


기타등등

보도자료에는 [신비의 섬]과 [해저 2만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지만, 그렇게 말하면 섭하죠. [신비의 섬]은 [해저 2만리]의 '속편'이잖습니까.   


감독: Brad Peyton, 출연: Josh Hutcherson, Dwayne Johnson, Vanessa Hudgens, Michael Caine, Kristin Davis, Luis Guzmán


IMDb http://www.imdb.com/title/tt139751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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