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살 생일을 맞은 억만장자 움베르토 수아레스는 죽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멋지게 세상에 남기고 싶습니다. 여러 아이디어를 굴리다가 영화를 하나 제작하자고 결정해요. 물론 움베르토는 영화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싼 물건을 쇼핑하듯 노벨상 수상작가가 쓴 소설 판권을 구입하고 잘 나가는 감독 롤라 쿠에바스와 저명한 배우인 이반 토레스와 펠릭스 리베로를 고용합니다. 전 이게 좀 뻘짓 같았습니다. 누가 제작자 이름을 기억하나요. 제작자가 유명해지려면 한 편만으로는 모자랍니다. 수십 편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죠. 소피아 로렌과 결혼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건 좀 늦었죠.

마리아노 콘과 가스통 뒤프라가 공동감독한 [크레이지 컴페티션]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영화 촬영 이전의 리허설입니다. 괴짜이고 타협을 모르는 롤라는 온갖 괴상한 방법으로 배우들을 괴롭힙니다. 예술성과 메소드 연기에 집착하는 이반과 인기스타인 펠릭스는 당연히 사이가 안 좋고요. 이 두 남자가 그나마 공유하는 건 두 사람 모두 롤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갈등은 리허설이 끝난 뒤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무지 얄팍한 영화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표면만 있는 영화예요. 캐릭터 발전이나 주제의 깊이 같은 건 없습니다. 끊임 없이 소동이 벌어지지만 그것들이 누적되어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는 생각도 안 듭니다. 이 영화의 농담 상당 부분은 거의 [개그 콘서트] 콩트처럼 뻔뻔하고 유치합니다.

그런데 그게 단점이거나 실패인 건 아닙니다. 원래 그렇게 설계된 영화예요. 모든 게 표면적이어서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일반적인 영화의 설정을 성전환한 구조가 특별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두 남자들은 모두 자기보다 한참 젊은 여자가 감독이 되어 군림하는 걸 진저리치고 그들 앞에서 롤라는 웬만한 괴짜 명감독 뺨치는 진상질로 일관하는데 정말 보고 있으면 장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페넬로페 크루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오스카르 마르티네스의 시치미 뚝 뗀 명연이 없었다면 이 장관은 나올 수 없었겠죠. 다들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상관 없어요. 어차피 다들 스크린 저편에 있으니까요. (22/12/31)

★★★

기타등등
영화 속 영화의 원작이 되는 [라이벌]이라는 소설 자체가 농담입니다. 콘과 뒤프라는 2016년에 [우등시민]이라는, 허구의 노벨상 수상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었고, [라이벌]은 바로 그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반을 연기한 오스카르 마르티네스가 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고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탔어요.


감독: Mariano Cohn, Gastón Duprat, 배우: Penélope Cruz, Antonio Banderas, Oscar Martínez, José Luis Gómez, Irene Escolar, Manolo Solo, Nagore Aranburu, Pilar Castro, Koldo Olabarri, 다른 제목: Official Competition

IMDb https://www.imdb.com/title/tt1170026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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