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프 카넵스키의 [밖에 아무 것도 없어]는 한무리의 미국 고등학생들이 봄방학을 즐기러 외딴 숲속에 있는 별장으로 놀러가면서 시작됩니다. 중간에 이들은 별장 근처에서 어떤 여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관객들은 프롤로그를 이미 봤기 때문에 이 실종사건에 외계에서 온 초록색 괴물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얘들은 모르고 별일 아니려니하고 넘깁니다. 호러영화팬인 마이크라는 애만 빼고요. 마이크 눈에는 이 실종사건이 앞으로 일어날 파국을 예언하는 전조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별장에서 마이크는 보통 호러영화 캐릭터들이 잘 안하는 행동을 합니다. 바깥 풀밭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조사하는 대신 "내가 그런 것에 넘어갈 줄 아니?"하면서 무시하는 거죠.

영화는 발동이 걸릴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립니다. 공포에 질린 마이크가 '호러영화의 규칙'에 대해 지껄이며 친구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동안, 영화의 빈 자리는 주로 섹스에 굶주린 틴에이저 애들의 묘사가 차지합니다. 틈만 나면 집요하게 여자들의 옷을 벗기려고 하기도 하고. 여기서 추가 정보. [밖에 아무 것도 없어]는 이런 게 당연시되었던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이 각본을 썼던 당시 카넵스키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19살 때 동네 사람들에게 모금을 하고 엄마 아빠 집 모기지를 잡아 남은 돈을 채워 만든 극저예산 영화예요. 80년대 미국 백인 남자애가 이런 선정성에 집착했던 건 징그럽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닙니다.

드디어 외계 괴물이 애들을 습격합니다. 커다란 개구리 얼굴에 긴 꼬리를 가진 이 괴물은 솔직히 너무 작아요. 큰 개 정도? 하지만 애들은 무섭다고 도망다니고 한 명씩 살해당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또 징그러워집니다. 괴물은 남자애들을 죽이지만 여자애들은 번식에 이용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괴물이 눈으로 쏘는 초록 광선을 본 애들은 괴물의 조종을 받습니다.

호러영화 규칙에 대한 마이크의 집착은 여기서부터 빛을 발합니다. 심지어 마이크의 생각은 '우리가 호러영화 안에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어'까지 닿습니다. 그렇다면 호러영화 클리셰를 예측하고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그게 대체로 먹힙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무렵엔 마이크와 함께 살아남은 친구들도 다른 호러영화 주인공들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딱 호러영화 좋아하는 19살 남자애가 만든 아마추어 영화 수준이에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기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르 영화팬들이 재미있어 할 많은 것들을 갖고 있어서, 영화제 같은 곳에서 잘 맞는 관객들을 만난다면 다들 재미있어할 그런 영화입니다. 실제로 영화제 반응 같은 건 괜찮았어요. 좋아해주는 비평가들도 만났고. 하지만 영화제 바깥으로 나가자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0년대 호러영화 붐은 끝나가고 있었고 배급업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으며 개봉 타이밍도 좋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완벽하게 잊혔죠.

이 글을 읽는 동안 여러분의 머릿속엔 아주 유명한 어떤 영화 제목이 계속 빙빙 돌았을 겁니다.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요. [스크림]은 1996년에 나왔습니다. 이 영화는 1991년에 개봉되었고요. 그리고 개봉 이후에도 카넵스키는 자기 영화를 들고 다니며 꾸준히 홍보를 했는데, 호러 컨벤션에서 만난 사람들 중 웨스 크레이븐의 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랬으니 이 사람이 [스크림]에서 자기 영화의 마이크와 거의 똑같이 행동하는 랜디를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지는 제가 말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23/10/07)

★★☆

기타등등
무비에서 봤습니다.


감독: Rolfe Kanefsky, 배우: Craig Peck, Wendy Bednarz, Mark Collver, John Carhart,

IMDb https://www.imdb.com/title/tt0103077/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26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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