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달 (2021)

2022.10.30 22:16

DJUNA 조회 수:1665


이영아의 [낮과 달]은 굉장히 직설적인 은유로 만들어진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극중인물에 의해 친절하게 설명되지요. 달은 낮에도 뜨지만 (많은 경우)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낮에 뜨는 달처럼 살아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저에겐 이게 좀 오싹하게 느껴지는데 이 영화 속 여자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죽은 사람은 주인공 민희의 소방관 남편입니다. 화재 현장이 아닌 바닷가에서 죽었는데 그 상황은 그렇게 자세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고일 수도 있고 자살일 수도 있지요. 민희는 모든 걸 정리하고 남편의 고향 제주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이웃 목하가 남편의 첫사랑이고 아들 태경이 남편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정말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은 남편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여자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요. 영화 중반엔 정말 그런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민화와 목하의 관계도 훨씬 자극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방향이 어디건 간에요.

하지만 [낮과 달]은 그 중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위험한 전개가 없다는 건 아니에요. 진상을 알게 된 민희는 성이 잔뜩 나서 만나는 사람 아무나 들이받고 다니니까요. 그러지 않을 때 하는 행동도 종종 오싹하거나 위험해 보입니다. 태경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특히 그렇죠. 하지만 영화는 대체로 이야기와 캐릭터의 관계를 안전하게 정리하는 편입니다. 감독이 자기가 만든 캐릭터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고 이들이 영화가 끝날 무렵 좋은 관계를 맺길 바라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야기가 아주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처음부터 차단되어 있어요.

이 자체는 나쁜 게 아닙니다. 자극적인 것이 꼭 좋은 무언가는 아니니까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영화는 유머있고 엉뚱하고 종종 많이 귀엽습니다. 누군가에겐 힐링되는 경험일 것이고요. 그런데 [낮과 달]은 이야기를 충분히 재미있게 풀어가면서도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부분에서 멈춥니다. 거기서 멈추어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해도 되긴 하는데, 뭔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란 말이죠. 두 주인공을 연기한 유다인과 조은지의 연기합이 좋아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22/10/30)

★★★

기타등등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20년 가까이 자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여자에게 양육비도 안 주었던 남자를 그렇게 애잔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요.


감독: 이영아, 배우: 유다인, 조은지, 하경, 정영섭, 다른 제목: The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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