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을 보고 왔습니다. 후렛샤, 김홍태의 [빙의]라는 웹툰이 원작입니다. 원작은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데, 영화도 시리즈 가능성의 문을 열면서 끝이 납니다.

주인공 천박사는 사기꾼 퇴마사입니다. 조수인 인배와 함께 가짜 초자연현상을 조작하며 사기를 치고 다니는데, 사실 이 사람은 당주집 자손으로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유경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1억원의 수임료를 지불하겠다며 사건을 의뢰합니다. 천박사는 이번에도 대충 사기로 일을 마무리지으려 하지만 그게 먹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진짜 초자연현상이고 천박사의 가족사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영화의 장점. 캐릭터는 확실하게 잡았습니다. 웹툰의 캐릭터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동원, 이동휘와 같은 배우들을 잘 써서 묶었어요. 영화는 코미디일 때, 그러니까 두 사람이 능청맞은 사기꾼일 때가 가장 좋고 잘 흘러갑니다. 이솜이 연기한 유경에게도 같은 공이 들어갔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건 아마 어려웠을 겁니다. 이게 다음에 언급할 영화의 단점과 연결되어 있어서요.

그러니까 도입부의 매력 상당부분이 본론에 들어가면서 날아가버리는 영화입니다. 방울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러니까 영화가 초자연세계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영화는 쌓아놓은 캐릭터의 가능성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그 뒤부터는 신령이 되려고 하는 악당 범천을 때려잡느라 너무 바쁘거든요. 여기서부터 천박사는 그냥 평범한 슈퍼히어로입니다. 유경에게 캐릭터를 주기 어려웠던 것도 그냥 여기서부터 유머나 캐릭터가 들어갈 구석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본론을 들어간 뒤에도 '초능력이 없는 사기꾼'의 설정을 최대한 오래 고수했다면 더 아이디어 넘치고 재미있는 액션이 나왔을 것이고 코미디도 많이 살았을 거 같습니다. 쓰기는 어려웠겠지만요.

영화 액션의 또다른 문제점은 이 모든 게 임의적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SFF 장르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언급하는 위험이 있지요. 작가들이 너무나도 쉽게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게 지나치게 편리해진다는 것 말이죠. 이 영화의 많은 액션은 그냥 좀 게임 같습니다. 게임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스타일의 액션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이 악당을 처치하는 과정이 현실에서 많이 벗어난 게임 규칙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규칙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 아니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해못할 이유는 없는데, 그래도 이러면 액션의 체감감도가 떨어지고 카타르시스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액션을 짜니까 드라마가 들어가기가 힘들어집니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무난한 추석 특선 내수용 영화입니다. 지루하지 않고 시간도 잘 갑니다. 하지만 재료의 가능성을 충분히 살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프롤로그가 본론보다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래도 결과가 아쉬울 수밖에 없죠. (23/09/28)

★★☆

기타등등
1. 이 영화에도 김종수가 나옵니다. 그리고 올해 김종수 출연작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2. 박정민과 지수의 카메오가 있습니다. 본론 파트 코미디의 절반 정도는 책임지는 거 같습니다.

3. [기생충]을 본 관객이라면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는 그림으로 시작되는데, 김성식은 [기생충]의 조감독 출신입니다.


감독: 김성식, 배우: 강동원, 이솜, 이동휘, 김종수, 허준호, 박소이, 다른 제목: Dr. Cheon and Lost Talisman,

IMDb https://www.imdb.com/title/tt29005755/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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