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남자 (1970)

2023.10.07 12:20

DJUNA 조회 수:849


1970년 단 한 해에만 30편이 넘는 박노식 주연 영화가 나왔습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절이었어요. 일단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이 영화들 대부분은 거의 완벽하게 잊혔습니다. 그리고 열혈영화광이 아닌 요새 관객 중 박노식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잊힌 영화들이 모두 재미없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잊힌 겁니다. 일단 너무 많기도 하고.

[소문난 남자]는 1970년 11월 13일에 개봉되었습니다. 감독인 김종래는 신상옥의 촬영감독 출신으로, 1970년에 [울긴 왜 울어]라는 영화로 데뷔했지만 흥행에 실패했고, 그 뒤에 선택한 [소문난 남자]가 흥행에 성공해 감독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감독 경력은 70년대 초반에 끝났고 그 뒤로는 KBS에서 다큐멘터리 PD로 활동했다고 해요.

영화의 주인공은 박복남이라는 남자인데, 출세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노모를 전라남도 시골의 집에 남겨놓고 무작정 상경합니다. 당시 박노식 나이가 만으로 40이고 복남이 나이도 그 정도였을 텐데, 왜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영화 초반에서 관객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 서울역 앞에 뚝 떨어진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이나 생생한 로케이션 촬영이 이어져요. 극장에서는 [내일을 향해 쏴라]를 틀어주고 있고요. 사방엔 방공방첩 문구가 걸려 있고요. 당시엔 미니 스커트가 유행이었고요. 복남이는 서울에 산다는 친구 신세를 지려고 하지만 그게 수월하지가 않고 결국 여러 직업을 전전하게 됩니다. 그러다 카우보이 옷을 입고 길거리를 돌아 다니며 제약회사 광고 일을 하게 되는데,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군중은 모두 당대의 수퍼스타 박노식을 알아보고 따라온 시민들입니다.

복남이는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습니다. 일단 가수에 도전했다가 실패해요. 그러다 배우가 되겠다면서 영화사를 찾아가 얼쩡거리는데, 그러다 이전에 레스토랑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무일푼이 된 자신 대신 돈을 내준 스타 배우 윤미경을 만나게 됩니다. 복남이는 영화사에서 스태프로 일하게 되고 그러는 동안 배우가 되겠다면서 윤미경이 빌려준 대본집을 갖고 혼자 연습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1970년대 한국 영화 촬영 현장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단지 이 영화는 코미디니까 어느 정도 과장이 반영되었겠지요. 어느 정도 미화되기도 했을 거예요. 지금의 한국 관객들에겐 이 모든 게 초라하고 조촐해보이는데, 이게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죠.

옛날 한국 코미디의 특징이라고 할 것이 있는데, 그건 이런 영화의 '재미있는 놈'은 지금 보면 위험하고 불쾌한 남자라는 것입니다. 이건 꼭 한국 영화만의 특징만은 아니에요. 그냥 옛날 남자들이 지금보다는 멋대로 굴었던 거죠. 이 영화의 복남이도 지금 같다면 그냥 구박받다가 쫓겨났을 거 같습니다. 일단 게으르고 멋대로예요. 촬영장에서 반사판을 들고 있다가 연기연습을 하겠다며 그냥 나가는 건 무슨 짓이랍니까. 게다가 이 사람은 스타 배우인 윤미경에게 음란한 생각을 품고 있고 계속 추근거립니다. 영화는 심지어 복남이가 윤미경과 섹스하는 꿈을 꾸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 꿈을 꾸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이걸 보여주는 건 많이 징그럽지 않습니까.

이건 옛날 영화이기 때문에 촬영장 사람들은 복남이에게 관대합니다. 심지어 복남이의 노모가 서울에 오자, 감독인 척할 수 있게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데이먼 러니언의 모 단편소설이 연상되기도 하죠. 그러다 결국 복남이에게 주연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유는? 이번 영화는 동시녹음인데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배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문난 남자]는 너무나도 티가 나는 후시녹음 영화입니다. 그리고 동시녹음 영화인 영화 속 [소문난 남자] 촬영 연장 어디에도 붐마이크는 안 보이는 거 같아요. 당시 충무로 사람들은 그냥 동시녹음에 대한 꿈만 꾸었던 거죠.

복남이는 [소문난 남자]로 남우주연상을 탑니다. 그런데 당시는 남우주연상이라는 단어가 굳어지기 전인 거 같아요. 여기서는 남자주연상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에는 곳곳에 옛 어휘의 흔적이 있어요. 중국요리를 청요리라고 한다거나. 이 영화상 수상 장면은 요란한 신파인데, 상받기 몇분 전에 복남이 엄마가 죽었다는 전보가 오기 때문이죠. 그래도 영화는 (복남이 입장에선)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복남이가 그 동안 수작 걸던 윤미경과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윤미경에게 숫처녀냐고 묻는 복남이의 마지막 대사는 크리피함의 끝을 달린다고 할 수밖에. (23/10/07)

★★

기타등등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했고 앞으로 상영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영상도서관에서 VOD로 보실 수도 있어요.


감독: 김종래, 배우: 박노식 , 김지수 , 지계순 , 박시명 , 김지영, 다른 제목: A man who started from scratch, Man with a Reputation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2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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